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호조 다카토키 할복, 가마쿠라막부 멸망
겐코 3년(1333년) 5월 22일, 닛타군의 공격에 의해 카마쿠라가 불타 호조 다카토키(北条高時)등이 할복해 호조 가문이 멸망했습니다.
호조 다카토키
고다이고덴노가 아쿠도우(悪党) 1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의 조력을 얻어 가사기산에서 군사를 일으켜 겐코의 변을 발발시키는 것도 실패에 끝나(겐코의 변), 겐코 원년(1331년) 아카사카성(赤坂城)에서 분전 하고 있던 마사시게가 성을 탈출하고, 고다이고덴노가 오키로 도망친 것이 겐코2년(1332년)의 일입니다. 8개월 후 겐코의 변 때 가사기산에서 탈출하고 있던 고다이고덴노의 황태자 모리요시 친왕(護良親王)이 재기를 도모하고 요시노산에 들어가, 전국을 향해 막부 토벌의 영지를 발하자, 행방을 감추고 있던 마사시게가 아카사카성을 탈환하고, 겐코 3년(1333년)의 1월에, 텐노지 전투(天王寺の戦い)로 로쿠하라탄다이에 승리하고, 마사시게가 농성하는 치하야성에 쳐들어 갑니다.(치하야성 공방전)
그 윤 2월의 하순에는, 고다이고덴노가 오키에서 탈출해 호키 센죠우산에서 농성해, 막부에서 집권한 호조 다카토키(北条高時)가, 그 토벌군으로 아시카가 타카우지(足利高氏)를 파견합니다. 그러나, 4월 16일에 교토에 들어간 타카우지는 여기서 고다이고덴노측에 붙어, 반대로 로쿠하라탄다이를 공격합니다.(로쿠하라탄다이 공격) 5월 9일에는, 로쿠하라 탄다이의 북방을 맡고 있던 호조 나카토키(北条仲時) 등이 할복 해, 가마쿠라막부의 로쿠하라탄다이는 소멸합니다.(로쿠하라탄다이 멸망) 그리고 치하야성 공략을 실패한 막부군은 철수합니다. 그리고 닛타 요시사다가 군사를 일으켜, 이네무사가사키에서 군사를 일으켜 가마쿠라를 공격합니다.(이네무사가사키 기습결의)
이렇게 해 가마쿠라에 돌입한 닛타군에 대항하는 막부군은 이미 지휘 계통이 혼란에 빠져 항복하는 사람, 격전의 끝에 전사 하는 사람, 할복 하는 사람까지 혼잡한 중에, 관 근처에 불길이 다가온 일을 알게 된 제14대로 집권한 호조 다카토키가, 호조의 보다이지(菩提寺) 2인 카사이케타니(葛西ケ谷) 도쇼지(東勝寺)로 물러났으므로, 살아있는 사람들은 도쇼지로 모여, 경내는 막부측의 장병으로 흘러넘쳤습니다. 막부군의 맹장 오사라기 사다나오(大仏貞直)는, 할복 한 가신의 애도를 하기 위해, 요시사다의 남동생 와키야 요시스케(脇屋義助)의 대군을 향해 돌진해, 장렬히 전사 했습니다. 가네자와 사다마사(金沢貞将)는, 부상당한 몸으로 다카토키를 문병해, 이미 어떤 권위도 없는 로쿠하라탄다이에 임명받은 뒤 정장에 뛰어들어 전사했습니다.
로쿠하라탄다이의 북방을 맡고 있던 아들 나카토시의 할복(로쿠하라탄다이 멸망)을 이미 듣고 있던 아버지 호조 모토토키(北条基時)는 아들을 생각하며 사세구를 절의 기둥에 스스로의 피로 쓰고 할복했습니다.
まてしばし 死出の山辺の 旅の道
잠시 기다리는 저승으로 향하는 산 옆의 여행의 길
おなじく越えて うき世語らむ
함께 넘어가며 이야기를 나누세
또, 요시사다와 인척관계에 있던 안도우 요우슈(安東容秀)는 적에 가담한 친척이 보낸 가마쿠라 탈출을 권유하는 편지를 '무사의 수치이다!'라고 한 뒤, 그 편지를 칼에 감아 할복 했습니다. 한편, 충신으로 여겨지던 무장이, 주군 부자가 할복 한 순간 그 투구와 갑옷을 벗기고 보물도 빼앗아 허둥지둥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다카토키의 최후
호조 다카토키의 맹장 나가사키 타카시게(長崎高重)는 이때까지 다카토키의 오른팔이 되어 활약한 인물입니다. 이번 닛타군과의 전투에서도, 최초부터 몇십회 출진해 항상 선진이 되어 격전을 빠져 나온 사람입니다. 그는 다카토키에게 말합니다."지금부터 일기토로 요시사다의 목을 잘라 오겠습니다!" 하지만 분전해 적을 헤쳐나간 그도 결국 요시사다에게까지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이렇게 돌아온 그는 말을 시작합니다.
"요시사다녀석의 목을 베려고 했지만, 어디로 내뱄는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병졸이야 200이나 300을 베어 버릴 수 있지만, 대장과의 약속시간이 다가와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하하! 그야말로 타카시게 답구나!"
"주군, 이 타카시게가 먼저 모범을 보일테니, 뒤를 따라와 주십시오."
그는 옆에 있던 잔에 술을 마시고, 3번 기울인 뒤, 셋츠 도준(摂津道準)의 앞에 잔을 두고, 할복한뒤 '술안주로 하십시오!' 라며 내장을 손으로 꺼내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이것을 받은 도준은 미소지으며 말했습니다.
"이 술안주를 주면, 술을 마시지 않는 녀석이라도 술을 잘 마실 수 있겠네."
그는 남은 술의 반을 마시고 이번에는 스와 지키쇼우(諏訪直性)의 앞에 잔을 두고 할복했습니다. 역시 술을 마신 그도 세번 술을 기울인 뒤에 그 잔을 타카토키의 앞에 두고 조용히 입을 떼었습니다.
"하하, 젊은 사람이 멋진 것을 보여주는구만! 이거 참, 이 노인이라도 뒤를 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를 안주로 해 계속 술을 마셔주게."
여기서 나가사키 신에몬(長崎新右衛門)은 앞으로 나와 '선조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자식의 효행입니다. 신도 알아주실 것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조부 나가사키 엔키(長崎円喜)의 배를 두번 정도 찌르고, 스스로도, 그 칼로 할복 했습니다. 이 신에몬은 불과 15세의 소년이었습니다. 이 젊은 무사의 훌륭한 할복을 본 다카토키는 곧바로 그 뒤를 이어, 할복했습니다. 그리고, 이 광경을 눈앞으로 한 여러 장군은 차례차례로 할복합니다. 그 수는 곁에 있던 사람만 283명이었습니다. 이윽고, 모두 물러나 관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 맹렬한 불길은 점차 커져, 연기는 하늘을 가렸다고 합니다. 결국, 사망자의 수는 도쇼지 전체에서 870명이나 되었습니다. 가마쿠라에서는 6,000에 달하는 사상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여기서 실질적으로 호조의 가마쿠라 막부는 멸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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