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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본 전국시대; 이쓰쿠시마 전투(1) 이쓰쿠시마 전투의 서막 일본 전국시대;이쓰쿠시마 전투(1) 이쓰쿠시마 전투의 서막 코우지 원년(1555년) 스에 하루카타(陶晴賢)측의 카미료쥬(神領衆)들이 아키 오가타, 오오타케에서 작은 배 7~80척에 나눠 타고 모리 모토나리측의 이쓰쿠시마(厳島)를 공격했습니다. 전국시대 스오우의 오오우치가와 이즈모의 아마고가가 격전을 벌이고 있던 츄고쿠 지방에 모리 모토나리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오우치가의 중신인 스에 하루카타가 모반을 일으켜 실권을 잡습니다. 이 때 스에측에 서서 함께 오오우치가를 공격해 세력을 확대한 모토나리였지만 실은 고쿠진이었던 자신을 등용해준 요시타카에 약간이나마 은의를 느끼고 있어 마음 속에서는 이 모반을 기분 좋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재빨리 오오우치가의 가신단을 장악 하고 모반을 결행한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후세 전투 일본 전국시대;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후세 전투 텐몬 22년(1553년) 사이강을 건너 후세(布施)에 포진 하고 있던 우에스기 겐신의 군이, 다케다 신겐군의 선봉군을 격퇴했으니, 이것이 바로 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의 후세 전투 입니다. 겐신과 신겐은 최고의 라이벌 답게 치열한 가와나카지마 전투를 벌였는데, 이 가와나카지마는 총 5회에 걸쳐 벌어지지만, 제일 치열하고 1:1 대결마저 있는 제 4차 전투를 일반적으로 가와나카지마전투로 간주합니다. 아무튼 제1차와 제2차의 전투 사이에 이번에 다룰 후세 전투가 일어났습니다.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당시는 나가오 가게토라)을 의지한 요시키요는 카츠라오성을 탈환합니다. 이것이 제1차 가와나카지마의 전투의 서막, 사라시나 야와타 전투입니다. 겐신의 개입을 안 신..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의 전초전 시라시나 야와타 전투 일본 전국시대;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의 전초전시라시나 야와타 전투 텐몬 22년(1553년) 다케다 신겐에게 카츠라오성을 빼앗긴 무라카미 요시키요가 신겐의 진을 습격한 사라시나 야와타 전투(更級八幡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이를 일반적으로 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로 간주하는 듯 합니다. 에치고의 수호인 우에스기가 부하 수호대 나가오 다메카게가 하극상으로 우에스기의 실권을 빼앗아 에치고의 지배에 나서지요. 다메카게의 사후 형제 사이 상속자 분쟁이 일어나고, 거기서 승리해 카스가야마성(春日山城)에 들어온 것이 바로 나가오 가게토라, 후의 우에스기 겐신입니다. 그러나 겐신이 상속한 무렵 아직 에치고의 북쪽에는 아가키타슈(揚北衆)라고 불리는 고쿠진들이 독자적으로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분 상태가 계속 되고 있어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어째서일까? 히라테 마사히데의 할복 일본 전국시대; 어째서일까? 히라테 마사히데의 할복 텐몬 22년(1553년) 오와리의 오다 노부히데, 노부나가의 부자 2대를 시중든 중신 히라테 마사히데(平手政秀)가 할복 했습니다. 전국시대의 주인공, 오다 노부나가는 텐몬 3년(1534년)에 태어납니다. 그 무렵 노부나가의 아버지 노부히데는 오와리의 수호 시바(斯波)가를 시중드는 수호대의 오다 집안의 한 분파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다가 내의 내분을 이용해 오와리의 대부분을 손에 넣고 오히려 본가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 갔습니다. 그런 노부히데의 후계인 노부나가의 모리야꾸(傅役・교육계)였던 것이, 노부히데의 가신중에서도 두번째로 꼽히는 히라테 마사히데입니다. 그는 옛 가곡에 통달하고 다도를 즐겨 풍류를 즐기는 문화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노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오오우치가 몰락의 서막, 다이네이지의 변 일본 전국시대;오오우치가 몰락의 서막, 다이네이지의 변 텐몬 20년(1551년) 스오우의 전국 다이묘 오오우치 요시타카의 중신 스에 타카후사(陶隆房)가 군사를 일으키니, 이것이 바로 다이네이지(大寧寺)의 변으로 불리는 전투 입니다. 오오우치가는 백제의 임성태자(琳聖太子)의 자손입니다. 스오우의 '오오우치'를 본거지로 했기 때문에, 오오우치라고 자칭하게 됩니다. 메이토쿠 2년(1391년) 경에는 서쪽으로 세력을 늘려 대대로 오오우치가의 당주가 스오우의 수호를 맡게 됩니다. 제29대 당주인 오오우치 마사히로는 오닌의 난에서 활약하고, 제30대 당주인 오오우치 요시오키는 관령 호소카와가의 싸움에 관여하는 등 중앙에서도 경의를 표해지는 가문이 되어 갔습니다. 교로쿠 원년(1528년)에, 그 요시오키에 이어 오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모리 모토나리의 도약, 킷카와, 코바카야 탈취 일본 전국시대;모리 모토나리의 도약, 킷카와, 코바카야 탈취 텐몬 19년(1550년) 모리 모토나리가 킷카와 부자를 살해했습니다. 관서의 대영웅 모리가도 모리 모토나리가 상속했을 무렵은 일개 고쿠진(반사 반농의 재야의 무사)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북쪽엔 아마고가, 서쪽엔 오오우치가, 남쪽에는 오오토모가의 사이에 낀 약소세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리가가 엄청난 대국의 주인이 된 것은 전적으로 모토나리의 모략의 산물입니다. 모토나리는 뛰어난 장수라기 보다는 위대한 참모스타일 이었습니다. 치밀한 정보 활동에서 모략, 계략을 만들어 적에게 패배를 안겨주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지요. 강대국에 둘러쌓인 약소국의 전략으로선 바람직한 것이었습니다. 모토나리가 크게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된 것은 차남 모토하루..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다케다군의 뼈아픈 패배 토이시 괴멸 일본 전국시대;다케다군의 뼈아픈 패배 토이시 괴멸 텐몬 19년(1550년) 가이의 다케다 신겐이 적대하고 있던 무라카미 요시키요(村上義清)의 거점 토이시성(戸石城)에 총공격을 실시했습니다. 시나노의 스와를 정복한 신겐은 시나노 동부도 그 손아귀에 넣기 위해서 텐몬 17년(1548년)에 그 근처 일대를 영지로 둔 카츠라오성의 성주 무라카미 요시키요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우에타바루의 전투 뒤에 중신 이타가키 노부가타나 아마리 토라야스를 잃는다고 하는 충격을 받아 시나노 동부 평정은 당분간 휴지됩니다. 이윽고 텐몬 19년(1550년) 신겐에게 패주 한 나가토키(長時)가, 그 무라카미 요시키요를 의지한 뒤로, 신겐과 요시키요의 갈등이 다시 표면화합니다. 그해 8월 요시키요의 거점 성, 토이시성를 포위한 신겐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오오토모 후계자 분쟁, 오오토모 2층의 참변 일본 전국시대;오오토모 후계자 분쟁, 오오토모 2층의 참변 텐몬19년(1550년) 분고(豊後)의 전국 다이묘 오오토모가의 20대 당주 오오토모 요시아키(大友義鑑)의 후계자를 둘러싼 분쟁이 발발했으니, 이것이 '오오토모 2층의 참변(大友二階崩れの変)'입니다. 분고의 전국 다이묘인 오오토모가의 제20대 당주 오오토모 요시아키에게는 정실이 낳은 요시시게(義鎮)라는 21세 장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측실이 낳은 삼남 시오이치마루(塩市丸)을 후계자로 하고 싶어서 했습니다. 장남 요시시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가신을 손으로 때리거나 검술의 연습인데도 상대를 무참히 치는등 천성이 난폭했다는 설, 요시시게가 병약했었기 때문에 당주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설, 요시시게의 어머니가 스오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안쇼우성 전투 일본 전국시대;안쇼우성 전투 텐몬 18년(1549년) 스루가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부하 타이겐 셋사이(太原雪斎)가 미카와 안쇼우성을 공격해 성주 오다 노부히로(織田信広)를 납치한 안쇼우성 전투가 있었습니다. 텐몬9년(1540년), 오와리의 오다 노부히데가 스루가의 이마가와가에 속하고 있던 미카와의 오카자키 성주 마쓰다이라 히로타다(松平広忠)가 지키는 안쇼우성을 빼앗고 나서 오와리와 미카와의 분쟁은 잠잠했습니다. 이때의 노부히데는, 또 하나의 이웃나라인 미노의 사이토도산과 전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텐몬 18년(1549년)하극상의 전국시대답게 마쓰다이라 히로타다가 가신에게 참살된다고 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은, 미카와의 마츠다이라의 주군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많이 당황하게 합니다. 이전부터 오다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남만신교의 전파 일본 전국시대;남만신교의 전파 텐몬 18년(1549년), 에스파니아의 그리스도교 선교사, 프란시스코 자비에르가 가고시마에 왔습니다. 2년전의 1547년, 말레이 반도의 마락카에 체재하고 있던 자비에르에게, 안지로우라고 하는 일본인 청년이 찾아 왔습니다. 고향, 가고시마에서 살인을 범해 도망치고 있던 안지로우는 죄의 무게에 괴로워하다 자비에르에게 구제를 요구했지요. 자비에르의 한마디 한마디에 감명을 받아 치유된 안지로우였지만, 그이상으로 감명을 받은 것은 다름아닌 자비에르 였습니다. 안지로우가 이야기하는 고향 가고시마의 일, 일본인의 일을 들은 자비에르는 마음 먹고 일본에 선교할 결의를 합니다. 예수회 고스메 데 토레스 신부, 후안 페르난데스 수도사, 마누엘이라고 하는 중국인, 아마도르라고 하는 인도인,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