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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쵸쇼카베 모토치카 시고쿠를 통일하다 이요 평정 일본 전국시대;쵸쇼카베 모토치카 시고쿠를 통일하다이요 평정 덴쇼 12년(1584년) 쵸쇼카 베모토치카의 부하 히사타케 치카나오(久武親直)가 사이온지 긴히로(西園寺公広)의 쿠로세성(黒瀬城)을 점령해 모토치카가 남 이요를 평정 했습니다. 피부가 희고 전투에도 잘 나오지 않아, 공주님이라고 까지 불렸던 쵸소카베 모토치카, 그는 에이로쿠 3년(1560년), 첫 출진을 장식한 나가하마효우 전투에서 단번에 '토사의 걸물'로 불립니다. 에이로쿠 11년(1568년)에 라이벌이었던 모토야마를 넘어 토사 중앙부를 평정, 토사 동부를 지배하는 아키 쿠니토라(安芸国虎)를 넘어뜨려 결국 시만토가와 전투에도 승리해 토사를 통일합니다. 그 뒤에도 모토치카는 아와를 평정해 냅니다.(쇼우즈이성 공방전) 이즈음 모토치카는 아와와 사누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시즈가타케 전투(6) 가쓰이에와 오이치노가타의 죽음 일본 전국시대;시즈가타케 전투(6) 가쓰이에와 오이치노가타의 죽음 덴쇼 11년(1583년)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패배한 시바타 가쓰이에가 들어간 키타노쇼성을, 마에다 토시이에를 선봉으로 하는 하시바 히데요시가 포위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사후 삼남의 간베 노부타카를 지지한 오다가 중신 시바타 가쓰이에와 장손 산포시를 지지한 하시바토 히데요시에 의한 사실상의 노부나가의 후계자 분쟁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패배한 가쓰이에는 본거지인 에츠젠 기타노쇼로 퇴각했습니다. 전원 합쳐도 약 3,000 정도 뿐이었던 가쓰이에는 키타노쇼성의 객실에 가신을 모아 '내가 전장에서 돌아온 것은 죽는 것이 무섭기에 도망친 것이 아니라, 전황에 휩쓸렸을 뿐이다. 내가 겁장이라 불리는 것은 괜찮지만 너희까지 매도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쵸쇼카베 모토치카, 하시바 군을 물리치다 사누키 평정 일본 전국시대;쵸쇼카베 모토치카, 하시바 군을 물리치다사누키 평정 덴쇼 11년(1583년) 쵸쇼카베 모토치카가 사누키 히키다효(引田表)에서 하시바 히데요시 측의 센고쿠 히데히사(仙石秀久)를 물리쳤습니다. 덴쇼(연호) 11년(1583년) 4월 21일은 시바타 가쓰이에와 하시바 히데요시의 사이에 행해진 시즈가타케 전투(시즈가타케 전투)가 있었지요. 이 때 그날, 시고쿠의 히키다효에서는 다른 전투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덴쇼 3년(1575년) 7월의 시만토가와 전투에 승리해, 토사를 통일한 쵸쇼카베 모토치카는 나머지 시고쿠의 영주들이 모리와 동맹을 맺고 있었기에,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으려 합니다. 노부나가의 측근 중 한명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가신 사이토 토시미쯔(斉藤利三)의 여동생과 모토치카가 결혼을 하기도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시즈가타케 전투(3) 히데요시, 가쓰이에를 꺾다 일본 전국시대;시즈가타케 전투(3)히데요시, 가쓰이에를 꺾다 덴쇼 11년(1583년), 시바타 가쓰이에와 하시바 히데요시의 사이에 발발한 오다가내 분쟁 시즈가타케 전투가 있었습니다. 혼노지에 쓰러진 오다 노부나가 사후(혼노지의 변) 미쓰히데와의 야마자키 전투(야마자키 전투)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넘어뜨린 하시바 히데요시는 오다의 계승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키요스 회의)에서 노부나가의 장손 산포시를 추천하고 스스로 후견인이 되어 노부나가의 장례까지 본인이 맡습니다. 이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노부나가의 삼남 코베 노부타카를 후계자로 추천하고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노카타(お市の方)를 아내로 맞이해 히데요시에 대항합니다. 그리고 겨울을 맞이해 에츠젠에서 움직일 수 없음을 간파한 히데요시가 반대세력을 짖누르는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시즈가타케 전투(2) 사쿠마 모리마사, 하시바군을 기습하다 일본 전국시대;시즈가타케 전투(2) 사쿠마 모리마사, 하시바군을 기습하다 덴쇼 11년(1583년), 비와호의 북동쪽 기슭에서, 1개월에 걸쳐 대치하고 있던 시바타 가쓰이에군과 하시바 히데요시군사이에, 히데요시의 부재중을 확인한 가쓰이에가 사쿠마 모리마사를 시켜 히데요시의 성채를 급습하여 시즈가타케 전투가 발발했습니다. 혼노지에 쓰러진 오다 노부나가 사후(혼노지의 변) 미쓰히데와의 야마자키 전투(야마자키 전투)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넘어뜨린 하시바 히데요시는 오다의 계승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키요스 회의)에서 노부나가의 장손 산포시를 추천하고 스스로 후견인이 되어 노부나가의 장례까지 본인이 맡습니다. 이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노부나가의 삼남 코베 노부타카를 후계자로 추천하고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노카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시즈가타케 전투(1) 누가 천하를 쥘 것인가? 일본 전국시대;시즈가타케 전투(1) 누가 천하를 쥘 것인가? 덴쇼 11년(1583년) 봄 시바타 가쓰이에의 키타노쇼 출진을 들은 하시바 히데요시가 결전을 대비해 오미 사와야마성(佐和山城)에 들어가 시즈가타케 전투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덴쇼 10년(1582년) 6월 2일, 천하를 눈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혼노지의 변)에서 죽은 뒤에, 야마자키 전투(야마자키 전투)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토벌해 주군이 원수를 갚은 하시바 히데요시는 그 뒤에 열린 오다의 계승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키요스 회의)를 유리하게 진행시켜 후계자를 본인이 추천하는 노부나가의 손자 산포시로 결정하고 후견인이 됩니다. 물론 이에 오다의 가로 시바타 가쓰이에, 칸베 노부타카 그리고 다키가와 가즈마스는 큰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쵸소카베 모토치카의 아와 평정 쇼우즈이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쵸소카베 모토치카의 아와 평정쇼우즈이성 공방전 덴쇼 10년(1582년), 쵸쇼카베 모토치카가 소고 마사야쓰(十河存保)의 쇼우즈이성(勝瑞城)을 점령해 아와를 평정 했습니다. 덴쇼 3년(1575년) 7월의 시만토가와 전투에 승리해, 토사를 통일해 기분이 좋던 쵸쇼카베 모토치카(長宗我部元親)는 3개월 전의 나가시노의 전투에서 다케다 가쓰요리에게 승리해 역시 기분이 좋았던 오다 노부나가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노부나가에게 모토치카는 시고쿠 통일의 허가를 얻어 냅니다. 그는 조속히 아와에 진공을 개시하고, 동시에 사누키에도 출병해 서서히 그 세력범위를 넓혀 갔습니다. 그런데, 노부나가가는 갑자기 말을 바꾸어 사누키와 아와의 북쪽은 미요시 야스나가(三好康長)에 주려고 한다며 초소카..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키요스 회의로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다 일본 전국시대;키요스 회의로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다 덴쇼 10년(1582년) 6월 27일 죽은 오다 노부나가의 후계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에서 장손 산포시(三法師)가 상속자로 결정되었습니다. 아케치 미쓰히데가 일으킨 혼노지의 변(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죽은 것이 덴쇼 10년(1582년) 6월 2일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주군의 죽음을 복수하려 하시바 히데요시가 미쓰히데를 야마자키의 전투(야마자키 전투)에서 무찌른 것이 6월 13일의 일이었습니다. 노부나가가 생전에 뒤를 잇게한 장남 노부타다가 노부나가와 함께 죽어버렸기 때문에 오다군은 시급히 주군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키요스 회의가 열립니다. 이 회의를 소집한 것은 오다가의 필두 가로인 시바타 가쓰이에였습니다. 그리고 회의에 출석한 인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가즈마스, 패퇴하다 간나가와 전투 일본 전국시대;가즈마스, 패퇴하다 간나가와 전투 덴쇼 10년(1582년) 6월 18일, 주군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을 알아 상경을 시도하는 다키가와 가즈마스와 이 기회에 우에노를 강탈하려고 하는 호조 우지마사가 간나가와(神流川)에서 격돌했습니다. 덴쇼 10년의 3월에 다케다 가쓰요리를 할복시킨 오다 노부나가(다케다가 멸망하다) 노부나가는 우에노 우마야바시성(厩橋城)을 다키가와 가즈마스에게 지키게 해 구 다케다의 영지를 맡깁니다. 고슈(甲州)의 위협이 없어진 노부나가는 이제 에치고의 우에스기의 세력권내에 있는 호쿠리쿠 제패를 향해서 힘을 쏟습니다. 선대의 우에스기 겐신의 죽음으로 인해 일어난 후계자 분쟁 오타테의 란(오타테의 란)으로 인한 혼란을 틈타, 서서히 북으로 진공하여 간 오다군 호쿠리쿠 정벌군의 시..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노부나가의 거성, 아즈치성 불타다 일본 전국시대;노부나가의 거성, 아즈치성 불타다 덴쇼 10년(1582년) 오다 노부나가의 거성인 아즈치성이 불타 올랐습니다. 혼노지의 변(혼노지의 변)으로 츄고쿠대귀환(츄코쿠 대귀환)을 실시해 기나이로 돌아와 미쓰히데를 덴노산에서 무찌른 하시바 히데요시(야마자키 전투)가 주군의 복수를 갚았다고 한 이틀 뒤, 오미 사카모토성()으로 귀환한 미쓰히데의 사위 아케치 히데미쓰(明智秀満)는 성으로 진군하는 오다군을 보고, 성내에 있던 미쓰히데의 재보를 빼닌 뒤 일족과 함께 할복 했습니다. 실은, 「다이코키(太閤記)」에서는 이 히데미쓰가 아즈치성에 방화했다고 합니다. 야마자키의 전투 당시 아즈치성에 있던 히데미쓰가 아케치측의 패배를 알고 사카모토성으로 향할 때에 방화했다고합니다. 이 히데미쓰는 사카모토성으로 향하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