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직업편;
전국시대의 기술은 내가 맡는다! 대장장이
전국시대에 있어 어쩌면 가장 중요했던 이들이 바로 대장장이 입니다. 전쟁이 계속되며 무기와 방어구의 수요는 폭증했기에 특히 더 이들이 중요했습니다. 대장간은 무기뿐만 아니라 농기구 등도 생산했기에 마을마다 있던 일반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철등의 광석의 분포는 일반적이지 않지요. 그리고 상업의 중심지에 공업자들이 모이기에, 마을에 따라 대장간의 규모나 수가 당연히 달랐던것 같습니다. 대장간이 발달했던 것은 미노의 세키(関)와 비젠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광석이 채굴되었기에, 많은 대장장이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장간 에서 무기를 전문으로 만들던 사람을 '도공'이라고 합니다. 보통 날카롭다고 생각하는 일본도는 접촉 단면이 매우 얇은데, 이것을 작성하는 것은 큰 기술이 있어야 했습니다. 또한 높은 강도와 내구성을 지닌 철도 필요하지요. 이런 도공 중에서 유명했던 사람들은 '도장'이라고 불렸습니다. 도장은 매우 이름높아, 만들어진 도는 도장의 이름을 따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명품 브랜드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전국시대에 특히 유명했던 브랜드는 '마사무네(正宗)', '요시히로(義弘)', '요시미츠(吉光)'였습니다. 이들은 삼작(三作)이라 불리며 전국에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마사무네는 전국의 도공들의 비전을 모아 후에 일본의 대장장이들의 기초를 확립했다고 합니다. 그의 도는 바위도 자를 정도였다네요.(물론 뻥이겠지요) 요시히로는 마사무네의 제자로 그에게서 기술을 계승해 다양한 도를 만들었습니다. 한편, 요시미츠는 무로마치 시대 초기의 사람으로 단도만을 만들고 있었다고 하네요. 전국시대에는 요시미츠의 작품들이 애용되어 마사무네의 도보다 비싸게 팔렸습니다. 쇼군도 요시미츠 코쯔지키(吉光骨食)라는 도를 애용했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런 도공들의 작품은 외교나 무장에게의 포상으로도 활용되었습니다.
마사무네(正宗)
요시미츠(吉光)
전국시대의 유명한 도공으로는 세키의 '마고로쿠(孫六)', '가네사다(兼定)' 그리고 '무라마사(村正)'가 있었습니다. 마고로쿠의 도는 '접히거나 구부려지지 않고 잘 벤다'라며 실용성을 인정받아 이곳 저곳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가네사다는 실용성과 품질을 인정받아 관직까지 받었다고 합니다. 한편, 비젠의 도는 '지나치지 않는 도'라고 불렸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특징은 없으나 품질만은 우수했다고 합니다.
무라마사(村正)
무라마사는 역시 세키에서 기술을 배웠으나 전국을 떠돌다 이가의 센코(千子)라는 마을에 정착해 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센코 무라마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의 도는 날카롭기로 유명해 바람에 날리던 나뭇잎이 그의 도에 닿아 반으로 나뉘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따라서 전국시대의 무장들은 무라마사의 도를 가지기를 원했지요. 이야에스의 아버지는 가신에게 이 도로 베이지고, 그의 아들인 노부야쓰는 무라마사로 할복했으며, 이야에스 본인은 사나다 유키무라에게 오사카 여름의 진(大阪夏の陣)에서 베어졌다고 해서 '도쿠가와의 원수'라고 불려 에도막부에서 무라마사 금지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리한 도를 버리기 아까워한 사무라이들은 이름 부분을 깍아 내어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일에다가 에도시대에 유행한 소설로 '요도 무라마사'의 이미지가 강해집니다.
타네가시마
한편 전국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꾼 총역시 대장간에서 생산되었습니다. 총의 전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전국시대의 로망, 총의 전래), 보통 가고시마의 타네가시마에 전래되었다고 하기에, 총을 '타네가시마'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개발에는 난항을 겪었다고 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영주가 포르투갈인에게 딸을 주어서 설계도를 얻었다고도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얻어진 노하우는 여기저기 전래되어 남 큐슈의 야사카 키요사다(八坂清定)나 기이반도 남부의 직공 용병 집단 사이가, 네고로중, 오미의 대장장이 두령 쿠니토모 젠베이(国友善兵衛) 등에 의해 연구되어 독자적인 총이 양산됩니다. 총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화약에는 남만과의 무역이 필수였다고 하네요. 아무튼 총의 제법은 대장장이 가문의 비전이었습니다.
전국시대가 끝나자, 무기의 수요는 사라졌으나 상술했듯이 대장장이는 생필품도 만들었기에, 만드는 제품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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