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헤이안시대 역사편;
요시츠네, 오슈의 히데히라에게 도망치다
분지 3년(1187년) 2월 10일, 형 요시토모에게 쫓겨난 요시츠네가 오슈 히라이즈미(平泉)의 후지와라노 히데히라(藤原秀衡)에게로 도망쳤습니다.
후지와라노 히데히라
헤이안 시대 오슈를 지배한 후지와라 가문은 중앙 정계의 혼란과는 상관없이 그 기반을 철저히 다지고 있었습니다. 3대의 후지와라노 히데히라는 36세로 가독을 상속합니다. 토호쿠의 지배자가 된 그는 조정에서 무츠노카미(陸奥守)로 제수되었긴 하지만 조정과는 구별된 존재였습니다. 풍부한 산물이 아닌 오슈에다 여러 교역으로 인해 부를 쌓아올린 히데히라는 오슈 17만기라고 하는 군사력과 교토와 비견할 만한 수도를 쌓아 올려, 독립국가와 같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쇼안 4년(1174년), 황금으로 재산을 쌓은 상인 금팔이(金売り) 키치지(吉次)가 데려온 젊은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를 맞아들이고는 있었습니다. 이는 타이라의 세상인 당시 일본에, '오슈의 후지와라는 굴하지 않았다!'는 것을 표명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쇼 4년(1180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군사를 일으키자(요리토모 발기) 요시츠네는 형에게 달려가버립니다. 여러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요시츠네이지만, 토사구팽당하고 시고쿠로 도주하려는 시도는 풍량때문에 실패하자 자신을 길러줬던 히데히라에게로 도망칩니다.
후 삼년의 역
분지 3년(1187년) 2월 10일, 감기로 드러누워 있던 히데히라는 요시츠네를 마중나가 극진하 맞아 들입니다. 어째서 힘이 없는 요시츠네를 맞아들인 것일까요? 사실 오슈는 요리토모의 선조가 지배하던 토지로 후 삼년의 역(後三年の役)에서 후지와라에게 빼앗긴 영지입니다. 그는 내심 오슈를 다시 찾기를 원했습니다. 게다가 타이라도 토벌된 마당에, 이제 남은 강자 후지와라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어짜피 목표가 될 것이라면, 요시츠네의 남은 세력도 결집하려는 계산에서 받아들인 것입니다.
오슈 17만기라고는 하나, 대다수는 반사반농입니다. 요리토모는 이를 노려 수확기에 쳐들어 갔고, 이에 후지와라의 실질적 군사는 1만여기, 하지만 지리적으로 혜택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훌륭히 요리토모의 군세를 격퇴해 나갑니다. 이때, 그의 아래에 도착한 것이 요시츠네입니다. 병법에 정통한 요시츠네는 그에게 꼭 필요한 인재이기도 했습니다. 히데히라는 요시츠네가 도착한 뒤 8개월 후 천수를 다합니다. 그는 유언에서 '요시츠네공을 대장군에 임명하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리토모와의 결전 전에 요시츠네는 하늘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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