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헤이안시대 역사편;
요시츠네 교토를 빠져 나가다
분지 원년(1185년) 11월 3일, 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교토에서 빠져 나갔습니다.
한때는 타이라 토벌을 결의했던 형제는 동생이 지나치게 많은 전공을 세우고, 고시라카와 법황에서 관직을 멋대로 받으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단노우라 전투(단노우라 전투)의 개선이 막혀, 교토로 들어가 있던 그에게 형 요리토모는 호리카와 야습(호리카와 야습)을 통해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실패하고, 요리토모는 신부 마사코의 아버지인 호조 도키마사(北条時政)가 총대장이 되어 요시츠네 토벌군이 가마쿠라를 출발했습니다. 이 소식은 교토에 넓게 퍼집니다.
그런 가운데, 11월 1일에 요시츠네는은 고시라카와 법황에게 '시코쿠와 큐슈를 맡겨달라'고 신청합니다. 단노우라에서 타이라를 정벌한 공적이 있는 요시츠네이기에, 이치에는 맞지만 그의 형인 요리토모의 분노역시 무서웠습니다. 결국 조정에서는 애매한 결정을 내립니다.「요시츠네기(義経記)」에는 '조정에서 큐슈와 시고쿠를 맡겼다'라고 합니다만, 실제로는 편지를 써서 요시츠네에게 협조를 요청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왼쪽부터 시즈카 고젠, 요시츠네, 벤케이
11월 3일 요시츠네는 큐슈와 시고쿠를 손에 넣어, 형 요리토모와 결전을 준비하려 교토를 출발했습니다. 일행은, 육로로 서쪽으로 나아가, 이윽고 오오모노 항구(大物浦)에서 배를 타고 시코쿠를 목표로 합니다. 처음에는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었으나 하리마국의 쇼샤산(書写山)이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 갑자기 먹구름이 나타나고 강한 바람이 불어 옵니다. 벤케이(弁慶) 1가 '저것은 타이라의 원령이 틀림없다'고, 먹장구름에 향해 화살을 발사하자 먹구름은 사라져, 일단은 온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한번 폭풍우가 덮쳐 왔습니다. 이 바람은 더 강해, 돛을 내리려고 했습니다. 어떻게든 배는 전복을 면합니다만, 큰 물결에 흔들려 나뭇잎과 같이 흔들렸습니다.
이 배에는 요시츠네가 미야코에서 데려 온 여성이 수십명 타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사이가 나쁜 여성들도 있었지만 배가 요동치자 서로 얼싸안고 격려했다고 합니다. 배는 전복되지는 않고 어떻게든 해안까지 갔습니다만,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지나가던 노인에게 물어보자 '여기는 이시야입니다.'라고 해 일행은 아연실색합니다. 이시야는 처음 출발한 오오모노 항구가 있는 곳입니다. 다시 배를 띄우기에는 배의 파손이 심했고, 그들의 앞으로는 요리토모의 토벌군이 다가오는데다가 숙부 미나모토노 유키이에(源行家)는 실종된 상태입니다.
요시츠네는 어쩔 수 없이 셋츠, 다이와를 넘고 요시노로 향합니다. 자신을 따라온 수십명의 여인들을 매정하게 뿌리친 채로 이동했습니다. 결국, 이 일주일 후11월 11일에는 고시라카와 법황이 요리토모에게 '요시츠네 추토의 선지」를 내려, 정식으로 요리토모는 관군, 요시츠네는 역도가 되었습니다.
- 헤이안 시대의 중으로 요시츠네의 심복, 괴력으로 유명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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