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헤이안시대 역사편;
야시마 전투(3) 부채의 목표 이야기
분지 원년(칸랴쿠 4년 1185년) 2월 19일은, 겐페이 쟁란 굴지의 전투 '야시마 전투'가 있던 날입니다.
야시마 전투 개요도
「타이라 가문 이야기(平家物語)」의 모두에서도 '기온조샤(祇園精舎)의 종 소리~'라 시작해, '알맞게 조금 멀리 퍼져 나가면...'이라고 시작하며 이 야시마 전투에서도 최대의 명장면, '부채의 목표(扇の的)'의 부분을 써 두고 있습니다. 형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무가들을 통솔하는 겐지의 동량이기에, 조직의 견고함을 위해 자신의 허락 없이 관위를 받거나 승진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시라카와 법황은 그와 상의를 하지 않고 독단으로 요시츠네에게 관위를 제수해 갈등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동생이라고 봐주면 기강이 헤이해 지지요. 즉시 요리토모는 요시츠네를 토벌군의 대장에서 제외해 다른 동생인 노리요리(範頼)를 서쪽으로 향하게 합니다. 한편, 타이라 가문은 이치죠다니에서 패배해 시고쿠의 야시마로 도망쳐, 제 81대 안토쿠덴노(安徳天皇)를 즉위시킵니다. 9월에는 고토바덴노(後鳥羽天皇)가 즉위해 연호는 칸랴쿠로 바뀝니다. 하지만 덴노의 증표는 안토쿠덴노가 가져가고 있었기에, 정통성이 없었습니다. 이를 탈환하는 것이 미나모토 가문의 제일 과제가 된 것입니다. 이에 요시츠네는 새벽에 폭풍우를 뚫고 야시마에 상륙합니다.(야시마 전투) 그리고 적을 기만해 사토 츠구노부를 죽였습니다.(사토 츠구노부 전사)
활을 쏘는 요이치 무네타카
그리고, 저녁때 해도 기울기 시작해 양군이 이제 군사를 퇴각시키기 시작했을 무렵, 아름답게 장식된 작은 배가 한 척, 타이라 측에서 해변의 미나모토 측으로 가까워져 옵니다. 작은 배에는 아리따운 궁녀가 한 명 있어, 붉은 바탕에 금박의 원이 붙은 부채를 배의 끝에 내겁니다. 그리고, 물가에서 오십리 정도에서, 배를 옆으로 향해 정박했습니다. 고토 미노루기(後藤実基)는 바로 '저것을 쏘아맞추어 보라고 도발하는 것이다!'라 간파합니다. 궁녀가 매우 미인인 까닭에 집중에 화살을 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하타케야마 시게타다(畠山重忠)는 병을 이유로 거절하고, 나스 다메타카(那須為高)도 병을 핑계로 거절해, 세번째로 요이치 무네타카(与一宗高)가 맡아 활을 쏘게 됩니다. 배를 타고 있는 것은 당대 최고의 미녀인 타마무시노 마에(玉虫の前)였습니다. 그는 그녀를 의식하지 않고 바다까지 말을 몰고 나가, 활을 발사해 훌륭히 명중시킵니다.
鏑は海へ入りければ、扇は空へと上がりける
화살촉이 바닷속에 들어가는 듯 하더니, 부채가 하늘로 올라가니
春風に一もみ二もみもまれて、海へさつとぞつたりける
봄바람에 한번, 두번 휩쓸리고 바다에 흩트려져 가나니
배를 타고 있던 타무시노 마에도 싯구를 남겼습니다.
ときならぬ 花や紅葉を 見つるかな
뜻밖의 단풍같은 꽃을 볼까나
芳野初瀬の ふもとならねど
요시노하츠세의 기슭도 아닌데
이 광경에 감동한 타이라 측의 50세 정도 되는 남자가, 흥이 돋아 배 위에서 축하의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본 요시츠네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요이치에게 '저것도 쏘아 맞혀라!'고 명합니다. 그렇게 되어서 다시 발사된 화살은 훌륭히 그의 목을 꿰뚫고, 완화되었던 양군의 분위기는 일순간에 긴장되어 다시 전투가 시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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