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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겐페이 쟁란/역사편

일본 헤이안 시대 역사편; 야시마 전투(1)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야시마 출항

일본 헤이안 시대 역사편;

야시마 전투(1)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야시마 출항




 분지 원년(1185년) 2월 16일 미나모토군의 대장에 복귀해, 타이라 토벌을 목표로 하는 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불과 하룻밤에 배로 바다를 건너, 타이라가 진을 치는 야시마로 향했습니다.



야시마 전투 개요도



  히요도리고에 기습(히요도리고에 기습)을 성공시켜, 승리를 거둔 미나모토노 요시츠네(源義経) 교토에 개선 한 것은, 전투로부터 2일 후의 캰라쿠 3년(1184년) 2월 9일의 일이었습니다. 이미 교토에서는 이치죠다니 전투의 결과가 도착해 있었는지 교토에서 들어온 키소노 요시나카가 영화가 다한 타이라에 승리했을 때의 대환성에 이은 환성이 울려 퍼집니다. 이 때, 요시츠네은 아직 26세입니다. 자신을 우러러보는 교토 백성들에게 우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고시라카와 법황은 그해 8월 그를 게비이시사에몬 쇼우죠우(検非違使左衛門少尉)[각주:1]에 제수합니다.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그의 형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무가들을 통솔하는 겐지의 동량이기에, 조직의 견고함을 위해 자신의 허락 없이 관위를 받거나 승진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고시라카와 법황은 그와 상의를 하지 않고 독단으로 관위를 제수하고, 요시츠네가 그것을 받았기에 갈등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동생이라고 봐주면 기강이 헤이해 지지요. 즉시 요리토모는 요시츠네를 토벌군의 대장에서 제외해 다른 동생인 노리요리(範頼)를 서쪽으로 향하게 합니다. 한편, 타이라 가문은 이치죠다니에서 패배해 시고쿠의 야시마로 도망쳐, 제 81대 안토쿠덴노(安徳天皇)를 즉위시킵니다. 9월에는 고토바덴노(後鳥羽天皇)가 즉위해 연호는 칸랴쿠로 바뀝니다. 하지만 덴노의 증표는 안토쿠덴노가 가져가고 있었기에, 정통성이 없었습니다. 이를 탈환하는 것이 미나모토 가문의 제일 과제가 된 것입니다.


 타이라 가문은 아와, 사누키에 세력을 자랑하고 있던 아와 시게요리(阿波重能)를 아군으로 끌어들여 사기가 오른 타이라성을 가문은 고토바덴노의 즉위 이후 곧, 타이라노 스케모리(平資盛 )를 총대장으로, 비젠으로 쳐들어갑니다. 이에 맞아 싸우는 것은, 요리토모에게서 타이라 토벌의 모든 것을 맡은 노리요리입니다. 그러나, 그가 인솔하는 미나모토의 군세는 수군을 지니지 않고, 해전에 불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상륙해 오는 타이라군을 맞아 싸워서 우세를 점하면 타이라군은 바다로 도망쳐 버립니다. 얕은 여울을 찾아내고, 말로 바다를 달려도, 한층 더 바다로 이동해 버리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노리요리의 미나모토 군은 상대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 못한 채, 지루하게 소규모 전투만을 반복합니다. 그 만큼이라면 괜찮았을 것입니다. 길어지는 전투의 휴식이라 칭하고, 근처의 유녀를 불러 연회를 개최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전황에 요리토모는 초조해집니다. 이대로 있으면 타이락 가문이 재기할 거라 느낀 그는 간신히 동생 요시츠네를 재등장시킵니다. 요리토모의 허가를 얻고, 고시라카와 법황의 선지도 받은 그는, 셋츠에서 배의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최초로 출병을 예정하고 있던 날은 예상 이상의 악천후였습니다. 게다가, 배들이 그 물결에 휩싸여 붕괴해 버려, 급히 작전을 바꾸려 군의에 들어갑니다. 



카지와라 카게토키



 미나모토의 수군이 약하고 타이라의 수군이 강한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입니다. 지지부진하게 논의가 계속되는 와중에 가마쿠라에서 요리토모의 대역으로 메츠케(目付)로 파견되고 있던 것이 카지와라 카게토키(梶原景時)입니다. 


"정확히, 배도 수리된 무렵입니다. 이 기회에 배에 사카로(逆櫓)[각주:2]를 붙이면 어떨까요? 이를 하면 말을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것과 같이 배도 후퇴할 수 있게 됩니다."


"전투에 나가기 전에 후퇴할 생각을 하다니, 바보인가! 너의 배에는 사카로 라는 것을 몇개를 달아도 좋다! 하지만 나의 배에는 달 수 없다!"


"흥! 총재당님은 진군할때 진군하고, 퇴각할때 퇴각해야 하는 것을 모르는가? 단순한 멧돼지에 지나지 않는구나!"


"멧돼지인가, 사슴인가 확인해 보겠는가! 그런 시시한 일을 말하려면 당장 돌아가라!"


 카지와라 카게토키는 미나모토의 동량인 요리토모의 대리인데다, 나이도 요시츠네보다 훨씬 많았기에 매우 분노한 것입니다. 그날밤, 사공들에게 술을 한잔씩 돌린 요리토모는 한밤중에 태풍을 뚫고 야시마로 향하려 합니다. 이런 태풍을 뚫고 적이 올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또한번 화려한 기습을 시도한 것입니다. 하지만 태풍에 무서워한 사공들이 움직이려 하지 않자, 비무장인 사공들에게 화살을 소려 합니다. 이에 출발을 하긴 하지만 이때의 미나모토군은 요리토모의 군이지, 절대 요시츠네의 군대가 아니기에 모든 병사가 명령을 들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200척의 배 중 출발한 것은 단 5척에 불과했습니다.



기습에 성공한 요시츠네 군



 분지 원년(1185년) 2월 16일 오전 2시 뱃머리에 선 요시츠네는 자신의 배 이외의 모든 등불을 꺼서, 시코쿠를 목표로 기습작전을 세웁니다. 본래, 밤을 지새워 달려 계속해도, 3일은 걸리는 뱃길을 요시츠네 일행은 단 4시간 만에 이동합니다. 새벽 6시에 아와의 카츠우라에 도착했다고 「아즈마카가미(吾妻鏡)」써져 있습니다. 날이 밝아 이를 보게된 타이라의 군세는 깜짝 놀라 활을 쏘며 전투를 준비합니다. 요시츠네는 50기의 기병을 뛰어내리게해 적을 급습해 적군을 격퇴합니다.


 여기서 요시츠네는 그 자리에서 잠깐 휴식하고, 이세 사부로 요시모리(伊勢三郎義盛)에 명해, 누군가 이 쪽편에 붙을 인물이 있을지, 속을 떠봅니다. 그는 잠시 뒤 콘도로쿠 치카이에(近藤六親家)라고 하는 인물을 데려 왔습니다. 콘도로쿠의 군도 더해져, 사기 오르는 요스츠네의 군대게 치카이에는 현재 타이라의 본대 3,000여기가 이요에 있어 야시마는 허술하다는 것을 밝힙니다. 이들은 몰래 기습을 하기 위해 60 km 떨어진 결전의 땅 야시마로 이동합니다.

  1. 현재의 경찰청 장관 [본문으로]
  2. 이물과 고물 양쪽에 노를 달아 배를 돌리지 않고도 앞뒤로 갈 수 있게 한 노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