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헤이안시대 역사편;
겐페이 전투(17) 코모로가와 전투
분지 5년(1189년) 4월 30일,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의 요청을 받은 후지와라노 야스히라(藤原泰衡)가 미나모토노 요시츠네(源義経)의 코로모가와(衣川) 저택을 덮쳐, 요시츠네를 할복시킨 '코모로가와 전투(衣川の合戦)'가 있었습니다.
코모로가와관 사적지
수많은 무공을 세워 단노우라 전투에서 타이라 가문을 물리쳤던 것도 잠시(단노우라 전투), 형 요시토모와의 불화로 쫓기는 몸이 된 요시츠네는 시고쿠와 큐슈를 지배에 넣어 형과 맞서려 하나 태풍을 만나 실패하고 맙니다.(요시츠네 교토 탈출) 이에 그는 분지 3년(1187년) 2월 10일 오슈 히라이즈미(平泉)의 후지와라노 히데히라(藤原秀衡)에게로 도망쳤습니다.(히데히라에게 의탁하다) 하지만 8개월 뒤 히데히라가 죽어 오슈 후지와라는 쇠락하기 시작합니다. 히데히라의 뒤를 이은 야스히라(泰衡)는 요리토모의 재삼의 요청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요시츠네가 머무르는 코로모가와 저택을 덮치려 합니다.
결국 분지 5년(1189년) 4월 30일 공격하는 야스히라의 후지와라군은 2만여기, 이에 대해 코모로가와 저택을 지키는 요시츠네 주종은 단 10명 이었습니다. 만약 야스히라가 직접 온다면 앞서서 맞서 싸우려 했던 요시츠네는 가신들이 온 것을 알고 관 안으로 들어와 무념으로 경을 읽기 시작합니다. 그를 지키는 것은 무사시 보우벤케이(武蔵坊弁慶), 카타오카 하치로우 도코하루(片岡八郎常春), 스즈키 사부로우 시게이에(鈴木三郎重家), 카메이 료쿠로우 시게키요(亀井六郎重清), 마시오우 시부로우(増尾十郎), 이세 사부로우 요시모리(伊勢三郎義盛), 히젠 헤이시로(備前平四郎)라고 하는 8명의 수하 무장과 그의 정실 사토고젠(郷御前), 수비역을 맡은 곤노카미 카네후사(十郎権頭兼房)와 키산다(喜三太)였습니다.
쿠모로가와 전투의 모습
히타치보우 카이손(常陸坊海尊)을 시작으로 하는 그 외의 하인들은 '가까운 산사 참배에 간다'라고 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적이 가까워지는 기색을 느낀 키산다와 카네후사는 재빠르게 지붕 위에 올라, 화살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벤케이는 노란 나비를 2, 3마리 그린 흑가죽 갑옷을 입고, 나기나타를 들어 당당히 섰습니다. 그리고 시게이에, 시게키요 형제에게 소리칩니다.
"어이, 형제들 노래라도 해 봐라! 이래뵈도 내가 젊은 무렵 히에이잔에서 떵떵거리며 있었던 사람이야. 동국의 바보들에게 이몸의 화려한 춤사위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좋네, 우리가 한 수 읊겠네."
"うれしや滝の水。鳴るは滝の水。日は照るとも、東の奴原が..."
"기뻐하는 폭포의 물, 올부짖는 폭포우 물, 해가 비친다해도, 동쪽의 놈들인가..."
"하하하 봤느냐! 너희(후지와라의 군세)같은 것들은 히에이잔 제경마(祭競馬)만 못한 놈들이다! 수만 많아봤자지!"
이 말을 남긴 그는 칼을 들고 돌진합니다. 시게이에, 시게키요 형제도 이를 뒤따랐습니다. 이에 놀란 후지와라군은 깜짝 놀라 퇴각합니다. 세명이 오히려 일만 명을 추격하는 중, 시게이에는 한 무장을 보고 이름을 자칭하라 소리칩니다. 그는 테루이 타로우 타가하루(照井太郎高治)였습니다. 시게이에가 그의 주군을 욕하며 도발하자, 맞서 싸우려 합니다. 하지만 시게이에의 무위에 곧바로 오른쪽 어깨가 베어져 쓰러집니다. 하지만 적은 1만, 3명은 곧 많은 군사에 둘러싸여 버립니다. 시게이에는 좌측으로 2명, 우측으로 3명을 베어 버린 뒤에 중상을 입자 스스로 할복해 버립니다. 그의 옆에서 싸우던 시게키요는 6명을 벤 뒤, 형에 이어 할복합니다. 홀로 남은 벤케이는 목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적을 마구 베어 오히려 적병은 무서워 감히 접근하지 못합니다.
벤케이의 분전
그 사이에 마스오 쥬우로우가 전사 하고, 비젠 타이라 시로우도 무념하게 할복했습니다. 카타오카 하치로우와 와시오 사부로우는 서로 몸을 의지해 싸웁니다만, 사부로우는 전사했습니다. 그 사이에 하치로우는 적을 피했습니다. 이윽고, 이세 사부로우가 6명을 죽이고 3명에게 상처를 입힌뒤, 스스로도 부상을 입어, 지불당에서 경을 읽는 요시츠네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나와 할복 했습니다. 지나친 형상에 적이 다가가지 않게 된 벤케이는 일단 요시츠네에게 갑니다.
"어떻게 되어 가느냐?"
"저와 하치로우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가..."
"요시츠네님이 먼저 돌아간다면, 저승길의 산에게 기다려 주십시오. 이 벤케이가 먼저 죽으면 삼도천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알겠네. 이 경을 다 읽을 때까지 잠시 시간을 줄 수 있겠는가?"
"맡겨 주십시오!"
서서 죽은 벤케이
둘은 분전했으나 결국 하치로우가 죽고, 결국 벤케이만이 남게 됩니다. 벤케이는 '아군은 방해만 된다! 혼자가 되니 좋구나!'라며 나기나타를 종횡으로 휘두르며 베어 버립니다. 결국 후지와라군은 멀리서 화살을 발사합니다. 화살 투성이인채로 가만히 서있는 그에게 다가워지면, 그는 다시 종횡무진으로 나기나타를 휘둘러 사람들을 죽입니다. 이에 다시 화살을 발사하자, 고심도치와 같이 화살에 둘러싸인 그는 다시 가만히 서있게 됩니다. 이에 다시 가까워지면 다시 나기나타로 적을 베어 버렸습니다. 결국 화살만 쏘고 아무도 가까워 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한 명이 힘을 내어 다가갑니다. 그는 이때야 곧곧이 선채로 장렬히 전사한 것입니다.
요시츠네 할복
밖의 전투가 결착이 붙은 일을 깨달은 요시츠네는 카네후사의 눈앞에서 스스로의 호신용 단도로 할복해, 호신용 단도의 피를, 소매로 닦고 칼집에 넣은 뒤 사방침(脇息)에 몸을 기대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 최후를 지켜본 카네후사는, 사토고젠과 외동딸을 찌른 뒤, 스스로의 역할을 끝냈는 듯이 갑옷을 벗어 던지고 관에 불을 질렀습니다. 불타오르는 관에서 후지와라군을 이끈 나가사키 타로우(長崎太郎)가 자칭하며 달려들자 카네후사는 그를 절반으로 베어 버렸습니다. 그의 동생 지로우가 도우러 옵니다. 카네후사는 그를 끌어안고 불길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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