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헤이안시대 역사편;
겐페이 전투(18) 아츠하지산 전투
분지 5년(1189년) 8월 10일,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의 오슈 원정군이 아츠하지산 전투(阿津賀志山の戦い)에서 후지와라노 야스히라(藤原泰衡)군을 격파했습니다.
분지 3년(1187년) 히데히라가 죽어 오슈 후지와라가 쇠락해 가자, 분지 4년(1188년) 2월 21일 재차 요리토모에게 '요시츠네 추토의 선지'를 요구했습니다. 이에 선지가 내려져 오슈 후지와라 가문은 갈등에 휩싸입니다. 구심점이 없어져 쇠락한 오슈 후지와라 가문은 '계속 요시츠네를 보호하자'라는 파와 '덴노의 명을 받아 요시츠네를 토벌하자는 파'가 나뉘었습니다. 결국 히데히라를 이은 야스히라는 반대파인 남동생을 죽이고 요시츠네 토벌의 선지를 받들어 코모로가와 근처의 그의 집에서 요시츠네를 죽입니다.(코모로가와 전투)
아츠하지산 전투
이 후지와라노 야스히라의 인물상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째는 무식한 암군이여서,자신의 거취를 판단하지 못하고 실정을 반복해 오슈 후지와라 가문을 몰락시켰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중한 성격으로, 자신의 국력과 요리토모의 국력을 비교해 신중히 판단을 한 훌륭한 군주였지만,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코모로가와의 요시츠네관을 습격했을 때도, 첫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측에서는 야스히라의 결의가 아닌, 가신이 독단으로 행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요리토모는 요스츠네의 목을 확인한 불과 8일 후인 6월 25일, 조정에 '야스히라 추토의 선지'를 내립니다.(야스히라 추토의 선지) 이렇게 해서, 분지 5년(1189년) 7월 19일 요리토모가 인솔하는 오슈 원정군은 가마쿠라를 출발합니다. 이 때, 원정군은 3개의 루트로 나누어져 진군 합니다. 요리토모 스스로와 하타케야마 시게타다(畠山重忠)와 함께 인솔하는 본대는 한가운데의 루트로 진군합니다. 치바 츠네타네(千葉常胤)가 인솔하는 별동대는 아래쪽으로 오슈를 향합니다. 히키 요시카즈(比企能員)가 인솔하는 별동대는 동해쪽에서 오슈로 향합니다.
요리토모의 오슈 정벌로
야스히라는 아츠하지산에 성벽을 쌓아 올려, 요충지를 지키려합니다. 그리고 그 후방 칸다군에도 성을 쌓아 올리고 스스로는 무치노다테(国分原鞭楯)에 진을 칩니다. 그러나 분지 5년(1189년) 8월 8일부터 3일간에 걸치는 격전이 전개되어 10일에는 대장이며 야스히라의 친척인 니시키 쿠니히라(西木戸国衡)가 와다 요시모리(和田義盛)에게 토벌되어 부장인 콘코우 히데츠나(金剛秀綱)는 오야마 토모미치(小山朝光)에 토벌됩니다. 이 철벽의 방어선은 요리토모 군에 돌파되었습니다. 이 마지노선은 깨질 경우 오슈의 운명이 결정되는 최종 방어선이었습니다. 오슈 17만기라 하나, 대부분 반농반사의 병력, 당시는 수확기로 실제로는 1~2만의 군세뿐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리토모의 군세는 24만 4천기 물론 과장이 있었겠지만 월등히 많았던 것은 확실합니다.
후지와라노 야스히라가 쌓은 방어선
이 큰 병력차에 야스히라는 방어에 치중하게 됩니다. 하지만 방어선은 찣어지고, 한층 더 북쪽으로 도망쳐 쿠리야가와노사쿠(厨川柵)에서 재기를 도모하다 카와다 지로우(河田次郎)에게 살해되어 오슈 후지와라는 멸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기록은 「이즈마카가미(吾妻鏡)」의 기술로, 이 기록은 모두 가마쿠라의 요리토모의 기록이기 때문에 실제로 야스히라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일설에는 요시츠네를 죽인 척하고 숨겨두어, 그와 쿠리야가와노사쿠에서 합류해, 농번기 이후 움직일 수 있을 오슈 17만기를 소집하려 했다고 합니다. 만약 그가 가신에게 살해 당하지 않았다면, 요리토모와 명승부를 보여주었을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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