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사카 겨울의 진(5)
바쿠로우가후치, 노다, 후쿠시마 전투
게이쵸 19년(1614년) 11월 29일, 오오사카동의 진의 야전, 바쿠로우가후치(伯労淵), 노다(野田), 후쿠시마(福島) 전투가 있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기부한 호코지 종명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트집을 잡은 것이 게이쵸 19년(1614년) 7월 21일(호코지 종명사건) 이야에스가 무리한 조건을 내고 도요토미 측에 최후 통고를 낸 것이 8월 20일(기타기리 가쓰모토, 중재실패) 입니다. 이윽고, 결전을 각오한 오사카측의 요청에 따라 사나다 유키무라가 쿠도산을 탈출해(쿠도산을 탈출하다), 오사카성에서는 군의가 열립니다. 사나다 유키무라뿐만 아니라 교토에서 거지로 영락한 고토 모토츠구(後藤基次)나, 서당의 선생님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쵸소카베 모리치카(長宗我部盛親), 스스키다 하야토(薄田隼人), 반단 에몬(塙団右衛門)이라는 명장들이 잇달아 오사카성에 결집합니다.
한편, 이에야스는 10월 1일에 교토 죠시다이(所司代)인 이타쿠라 카츠시게(板倉勝重)에게서 오사카 성내의 움직임을 들어 에도성의 히데타다에 출진의 준비를 명하는 것과 동시에, 전국의 다이묘들에게 참전하도록 명령을 내려, 스스로는 10월 11일에 500의 수를 따르게 해 슨푸성을 출진합니다. 히데타다도 10월 23일에 에도를 출발해 교토로 향합니다. 이렇게 해서 다음달인 11월 15일, 니죠성을 출진한 이에야스는 다이와를 거쳐, 후시미성을 출진한 히데타다는 카와치를 거쳐 오사카로 향합니다. 이것으로 오사카 겨울의 진이 발발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의 시기노, 이마부쿠 전투에서는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입니다.
당시 전황도
그리고, 게이쵸 19년(1614년) 11월 29일에 발발한것이 바쿠로우가후치(伯労淵), 노다(野田), 후쿠시마(福島) 전투입니다. 노다, 후쿠시마는 이시야마혼간지 시대부터 성채가 있던 군사의 요충지였습니다. 도요토미 측에 있어서, 아무래도 지키고 싶은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도쿠가와 군에게 빼앗겨 버립니다. 이 날의 패배는 도요토미 측에게 있어서 큰 오산이었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오산은 이렇게 해서 전투가 시작되면, 서서히 모여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도요토미 은고의 무장들이 오사카 측으로서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노다, 후쿠시마의 성채를 강탈해, 점점 고립해 나가는 오오사카성을 응시하면서 이에야스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을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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