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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사나다 유키무라, 쿠도산을 탈출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사나다 유키무라, 쿠도산을 탈출하다



 게이쵸 19년(1614년) 10월 9일, 세키가하라 전투의 뒤, 쿠도산(九度山)에 추방되고 있던 사나다 유키무라(真田幸村)탈출해 오사카성으로 향했습니다.


사나다 유키무라 초상화



 게이쵸5년(1600년) 9월 15일의 세키가하라 전투는 반나절만에 결착납니다. 하지만 이때, 아이즈의 우에스기 정벌로 향한 사나다 마사유키, 노부유키, 유키무라 부자 3명입니다만, 시모우치 이누부시의 숙소에서 미쓰나리의 밀서를 받은  뒤에, 형인 노부유키는 동군으로 붙어 그대로 도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에 합류하고, 아버지 마사유키와 동생 유키무라는 서군에 붙어 거성인 시나노 우에다성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 오야마에서 회군한 이야에스의 동군 중, 히데타다는 나카센도우에서 서쪽으로 향해 진군 하다 우에다성을 공격하나, 결국 점령시키지 못하게 됩니다. 이로인해 시간을 지체시킨 그의 부대는 세키가하라에서 싸워보지도 못했습니다.


 그 분노로, 히데타다는 승리 뒤에 사나다 부자를 죽이려 하지만, 동군에서 분전했던 노부유키에 의해서 코노산에 근신처분을 받고, 사나다의 영지는 전부 노부유키의 것이 됩니다. 그 뒤로 14년에 걸치는 근신 생활을 보내는 그들은 이야에스에 대한 복수의 불길을 불태웠을까요? 마사유키는 '노후 마을에서 느긋하게 살고 싶다.'라고 하는 편지를 고향에 보내 세키가하라의 사면과 함께, '에도나 우에다에서 살고 싶다.'희망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인 유키무라도 사면을 요구했던 조금은 곤궁하고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게이쵸 3년 이야에스의 쇼군 취임에, 자신의 사면을 타진해 보는 마사유키의 서신



 게이쵸 16년(1611년) 6월 4일에, 마사유키가 병으로 죽고 나서는 마사유키의 가신들이 우에다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에 유키무라는 얼마안되는 가신과  함께, 산속에서 외로운 생활이 계속 보내게 됩니다. 이때 '도쿠가와들 두번이나 물리친 남자'라는 이명을 지닌 마사유키와 다르게 그는 무명 무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게이쵸 19년(1614년) 10월 유키무라에게 절호의 찬스가 옵니다. 황금 200매, 은30관을 지참하고, '오사카 입성'을 희망하는 히데요리의 사자가 쿠도산을 방문했습니다. 바로 오사카의 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이 대장군에 오르면서도 일단은 도요토미 가신의 입장을 취하고 있던 이에야스가 죽은 히데요시의 비원인 호코지의 대불 축조에 진력하고 있던 히데요리에게 종명에 트집을 걸어왔습니다. 중재하던 기타기리 가쓰모토의 노력도 허무하게 대화는 결렬해(교섭결렬) 드디어, 양자가 군사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유키무라는 이 기회를 잡으려 하나, 아직 근신하는 몸이었습니다. 이 때도, 키이의 아사노 나카아키라(浅野長晟)가 주변의 누메시(名主)[각주:1]에 명해 유키무라를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근신처분을 받았던 쿠도산



 게이쵸 19년(1614년) 10월 9일「아기나구사(翁草)」에 의하면 유키무라는 '가족에게 경사가 있다'라고 하고, 주변의 마을사람이나 마을의 관리(村役人)를 여럿 모으고, 크게 연회를 열고 그들을 형편없게 취하게 하고 나서, 심복 몇 명을 심어 넣고 쿠도산을 뒤로 했습니다. 


村中を 酔わせて真田 すっと抜け

마을 전부를 취하게 해 사나다를 쑥 뽑아라


 곧 마을사람들은 이 일을 눈치챕니다만, 아무도 뒤를 쫓자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후, 수도자 모습으로 변장해 경계를 뚫고 오사카에 들어간 유키무라는 오오노 하루나가(大野治長)[각주:2]의 저택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부재중이었고, 쇼샤번(奏者番)이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어디의 수도자 십니까?"


"다이와 쪽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만, 기도하러 왔습니다. 주군을 만나게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지금 성에 계시므로, 여기서, 조금 기다려 주십시오."


 그 방에는 10명 정도의 젊은 사무라이가 있었는데, 서로의 칼이나 와기자시(脇差)[각주:3]를 서로 보이면서 감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새로 방에 들어온 유키무라를 흘끝 보더니 말을 합니다. 이때 유키무라의 칼은 서슬푸른 명검으로 손질도 잘 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유키무라의 행색을 보고는 조금 무시하는 투로 말을 했습니다.


"그대의 검도 보여주시겠소?"


"수도자의 검은 개를 쫓을 때는 쓰는 검으로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만..."


"아니! 이런 검이라니, 그대는 대체 누구요?"


 이러는 중, 성에서 돌아온 하루나가가 도착해, 유키무라의 손을 잡으면서, 윗자리로 불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후 유키무라는 성으로 가서 히데요리를 알현했습니다. 성내에서 종종 위의 사무라이들과 마주치면 유키무라는 농담으로 '검의 감정은 능숙해졌는가?'라며 농담을 던졌다고 합니다.

  1. 에도시대 町나 村의 장 [본문으로]
  2. 요도도노의 유모의 아들로 도요토미 가문의 중신 [본문으로]
  3. 큰 칼에 곁들여 허리에 차는 작은 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