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카모토 다이하치 화형해 쳐해지다,
이야에스의 기리시탄 금지령
게이쵸 17년(1612년) 3월 21일, 혼다 마사즈미(本多正純)의 가신 오카모토 다이하치(岡本大八)가 화형에 처해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기리시탄(크리스천)을 금지했습니다.
게이쵸 14년(1609년) 당시 포르투갈령이었던 마카오에 기항하고 있던 일본의 무역선에 승선하고 있던 뱃사람들이, 포르투갈선의 선원들과 술집에서 말다툼을 해 큰 싸움의 끝에, 50명 정도의 뱃사람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일본의 무역선은 히젠 히노에번(日野江藩)의 배였습니다. 하지만 소식이 빠르지 않아 일본인들은 아직 이 사건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나가사키에 입항하는 남만선
이윽고 수개월의 뒤, 1척의 포르투갈 배가 나가사키에 들어 옵니다. 정확히 그 무렵, 다른 서양 선박의 선원들로부터, 예의 사건의 이야기를 들은 히노에번 다이묘 아리마 하루노부(有馬晴信)는 조속히 관동에 사자를 보내고 막부에서 공식 보복 허가를 얻고, 포르투갈선을 포위합니다. 3일간에 걸쳐 맹공격을 해, 배를 침몰시켰습니다. 이 때 하루노부의 보복 작전의 감시역(目付け役)이었던 사람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토코로가타나(懐刀) 1로 알려진 혼다 마사즈미의 가신 오카모토 다이하치였습니다.
이에 이야에스가 기뻐하며 '지금은 나베시마씨의 영지가 된 곳을, 은상으로 다시 아리마에 되돌리겠다.'라고 했다고 다이하치가 하루노부에게 말합니다. 하루노부는 이에 기뻐하며 잘 말해달라고 다이하치에게 상당한 성의를 표시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 많은 돈을 본 다이하치는 정신이 나가, 주인인 혼다 마사즈미의 글씨를 위조해 증서를 만들어 주고, 또다시 금전을 요구합니다. 이에 하루노부가 금전 6,000량을 주자 다이하치는 그것도 자신의 재산에 넣어 버립니다.
아리마 하루노부오카모토 다이하치
당연하게도 영토가 회복될리가 없고, 결국 하루노부는 혼다 마사즈미에게 항의합니다. 일의 전말을 알게 된 마사즈미는 국가 기관에 맡겨 다이하치의 일을 심의하게 됩니다. 이 사건의 조사에 나선 것은 당시 ,슨푸 봉행이었던 히코사카미쯔마사(彦坂光正)였습니다. 체포되어 조사를 받은 다이하치는 최초에는 잡아 때었지만 결국 죄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는 물귀신 작전으로 하루노부를 끌고 들어갔습니다. '그는 남만선의 작전후 봉행을 살해할려고 했습니다.'라 합니다. 사실 히코사카 미쯔마사와 아리마 하루노부는 남만선 토벌 작전때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유죄가 되어 다이하치는 화형에, 하루노부는 개역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 게이쵸 17년(1612년) 3월 21일, 다이하치는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실은 다이하치와 하루보누 모두가 크리스찬이었습니다. 원래 이 두 명은 서로가 크리스찬인 일로, 평소부터 친하게 교제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크리스천을 금지하기에는 너무 빈약한 것 아닌가? 하는데요. 다이하치가 착복한 돈이 예수회에 흐르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예수회가 뒤에서 다이하치를 사주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로 인해 위기감을 느낀 이야에스가 급히 크리스천을 금지시키고, 다이하치의 관계자들을 체포한 것입니다. 조선에서 끌려간 비운의 여인 오타아 쥴리아(오타아 쥬리아)도 이때 유배당하고 있었습니다. 오카모토 다이하치 사건으로 인해 에도 막부 최초의 기리시탄 금지령이 탄생한 것입니다.
- 호신용 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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