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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전쟁편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를 이끈 사상과 신앙 (3)전국무장들과 주술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를 이끈 사상과 신앙

(3)전국무장들과 주술




 이번 포스팅에서는 무장들이 전투에서 행했던 여러 점, 기도 들을 알아 보려고 합니다.


서약문(起請文)



서약문(起請文)



 스스로의 행동을 신불에 맹세해, 언동에 거짓이 없을 것을 문서에 쓰는 것으로 이것을 어길 경우에는 신불의 벌을 받는 일도 맹세했습니다. 맹세를 적은 것을 전서(前書), 신의 이름을 기록한 것을 신문(神文)이라고 합니다. 



점상(占上)


 전법을 점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거북이 등껍질을 구워, 균열로 신의 뜻을 점친 것에서 유래 했습니다. 이 균열을 형상화 해 '복(福)'의 글자가 만들어 졌고, 운세의 결과를 구두로 전하는 것에서 '점(占)'의 글자가 생겨났지요. 이윽고 대나무로 점치게 되어 '서(筮)'라는 글자가 태어났습니다. 전국시대도 이런 점을 보았습니다.



제비(籤)



제비(籤)



신의 앞에서 제비를 당겨서 나온 결과는 신의 의지로 존중되었습니다.



전국무장들과 주술


 에이로쿠4년, 모리 모토나리는 아마고가에 조복(調伏)의 주술을 사용했습니다. 이쓰쿠시마 다이묘진(大明神: 신의 이름 앞에 붙이는 칭호) 바로니천(叱祇尼天), 대쇼텐(大聖天)의 힘으로 아마고를  물리 칠 수 있도록 승려에게 기도하게 했습니다. 승려는 단상에 아마고 요시히사의 짚으로 만든 인형을 만들어, 공물을 올리고 7일 밤낮으로 단식한 채로 기원을 바쳤습니다. 7일째의 아침 승려는 짚으로 만든 인형의 목이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에 모토나리는 승리를 확신했다고 합니다.


 어느 해, 모리 모토나리는 가보인 도가 세 개로 갈라지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것을 비와호우시(琵琶法師)에게 상담했는데, 그는 이것이 몹시 좋은 꿈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도가 세개면 '벨 이(刕)'자가 되는데, 이것은 '고을 주(州)'와 같은 글자로, 모리 모토나리가 새로운 땅을 얻는다는 길몽이라는 것입니다.


 덴쇼 3년, 쵸쇼카베 모토치카는 꿈 속에서 화살을 쏘았 습니다. 그러자 활의 현이 끊어지고 화살도 망가져 버렸지요. 불길하게 생각한 모토치카는 하치만궁(八幡宮)의 신주인 사콘(左近)에게 상담했습니다. 사콘은 매우 좋은 꿈이라고 모토치카에게 고했습니다. 활이 강하기 때문에 현이 끊어지는 것으로, 금년은 출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모토치카는 하치만대보살이 사콘의 입을 빌려 전투의 승리를 약속했다고 기뼈하며, 사콘에게 아끼던 장도를 주었습니다. 사콘은 답례에 하치만신궁의 신세이(真盛)의 도를 헌상했습니다. 모토치카는 이것을 '하치만의 이검(八幡の利剣)'이라 붙이고 지휘할 때 사용했습니다.


「우와이 가쿠켄 일기(上井覚兼日記)」에 의하면 덴쇼 4년 9월 6일, 시마즈 가문은 이토 가문과의 전투 즈음에 키리시마사(霧島社)에서 제비를 뽑았습니다. 덴쇼 11년 10월 17일에는 카타시다구를 공격하기 전에 코오리야마지(郡堅志)에서 제비를 뽑았습니다. 이 때, 1, 2를 쓴 종이와 백지를 준비해. 1을 뽑으면 포위를 계속하고, 2는 총공격, 백지는 상태를 관망하는 것으로 했었다고 합니다.


 덴쇼 5년 12월, 코우즈키성 공격 전에 다카야마 우콘, 후쿠토미 히로시 사에몬이 하시바 히데요시의 원군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이때 전투의 선봉을 누가 하느냐를 가지고 말다툼이 일어났는데, 이때 히데요시는 제비를 준비시켜 선봉을 정했다고도 합니다.


 사태를 잘 파악한다 하더라도 불확정 요소가 많은 전장에서 무장들은 더욱 점과 주술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