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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전쟁편

일본 전국시대 성 편; 일본 전국시대 성의 구조(4) 쿠루와(曲輪) 일본 전국시대 성 편;일본 전국시대 성의 구조(4) 쿠루와(曲輪) 쿠루와(曲輪)는 군사의 주둔을 위한 혹은 식료, 탄약의 저장 시설이 되는 건조물을 지어 방어 시설에서 지킨 부지를 말합니다. 해자와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획으로 일본의 성은 이런 쿠루와가 몇겹으로 연결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구루와는 마루(郭,丸)라고도 하는데요, 방어의 중심이 되는 쿠루와는 혼마루(本丸: 제1성곽)라고 하고, 그 밖의 쿠루와를 니노마루(二の丸: 제2성곽), 산노마루(三の丸: 제3성곽)라고 합니다. 혼마루에는 천수각을 두기도 했습니다. 천수각 주변에는 해자를 또 파두기도 했습니다. 성에 따라서 성의 수원을 지키는 미즈노테(水の出) 쿠루와, 다이묘가 거주하는 곳을 지키는 니시노마루를 두기도 하였습니다. 전국 시대의 많은 성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전쟁편; 전국시대의 공성전은? 일본 전국시대 전쟁편;전국시대의 공성전은? 전국시대의 공성전이라 하면 불타오르는 천수각을 이미지하기가 쉽지만, 이렇게 성을 점령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그렇게 점령한 성을 쓰는 것은 다름아닌 공격측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성이 항복하게 하는 것으로, 조략(調略)이나 포위를 통해 병량을 떨어지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성을 완전하게 둘러싼 뒤 다른 성과의 보급로를 끝는 것 뿐만 아니라, 연락도 끊어야 했습니다. 실제로 나가시노성에서는 한 전령에 의해 전황이 완전히 바뀌기도 하였지요. 또한, 성에는 2~3개월분의 식량이 있고 그정도를 버티면 후힐(後詰)이 도착하기 때문에 포위또한 매우까다로왔습니다. 이런 것들을 막기 위해 다케다 신겐은 급수시설을 공격하였고, 히..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성 편; 일본 전국시대 성의 구조(3) 천수각 일본 전국시대 성 편;일본 전국시대 성의 구조(3) 천수각 저번까지 해자와 벽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천수각에 대해서 살펴보려 합니다. 천수각은 일반적으로 '일본성'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지요. 천수각이란 일반적으로는 성에서 가장 큰 망루를 가르키는 말이지만, 정확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고, 그냥 천수각으로 부르는 건물이 천수각이 됩니다. 사실 이 단어는 메이지 이후에 사용된 것으로 별로 역사도 오래되지도 않았습니다. 아무튼 천수각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천수각의 기원 천수각은 망루입니다. 망루의 역할은 쳐들어오는 적의 군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입니다. 산성에서는 전망이 좋은 곳, 히라죠오에서는 가능한 한 높은 세이루우(井楼)를 만들어 더 넓은 전망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건축 기술이 향상..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성 편; 일본 전국시대 성의 구조(2) 벽 일본 전국시대 성 편;일본 전국시대 성의 구조(2) 벽 전국시대의 성을 보호한 것은 해자(해자)와 벽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전국시대의 성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성벽 성을 둘러싸는 장벽이 바로 성벽입니다. 가마쿠라 시대 이후의 무가 저택은 주위에 담을 세우고, 전장에서는 목책을 만들어 적을 금족 했습니다. 성벽의 재질 헤이안 말기에서 가마쿠라 시대의 무가 저택은 널판지의 벽으로 저택을 방비했습니다. 이것을 '이타베(板塀)'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벽은 적의 파괴 공작이나 화살이나 철포, 화재에는 약했기 때문에 점차 공법이 변화되게 됩니다. 방탄을 위해 널판지를 겹치고 위에 지붕을 붙이고, 버팀목으로 기둥을 세웠습니다. 또, 이중의 판으로 담을 만들어, 판과 판 사이에 모래, 점토등을 넣는 '타이고..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성 편; 일본 전국시대 성의 구조(1) 해자 일본 전국시대 성 편;일본 전국시대 성의 구조(1) 해자 저번 편에서 일본 전국시대의 성의 종류(일본 전국시대의 성의 종류)에 대해서 알아보았다면, 이번에는 구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 해자의 구조 성곽 방위의 기본이 되는 것이 해자입니다. 선사시대 부터 지면에 구멍을 길게 파 외부의 침입을 방해하는 것은 가장 확실하고도 단순한 방어 방법이었습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굴착 기술도 향상해, 전국시대의 성곽에는 복잡하고 교묘한 해자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해자라고 하면 물을 가득 채운 수호(水濠)를 떠올리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성곽의 해자는 물이 없는 카라호리(空堀) 도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카라호리는 '적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중점으로 한 것으로 직접적인 낙사나 카라호리 안에서 꼼짝 못하는 적..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성 편; 일본 전국시대의 성의 종류 일본 전국시대 성 편;일본 전국시대의 성의 종류 예전부터 성곽은 마을이나 거기에 사는 사람, 재산, 주변의 경작지,항만 시설 등을 외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방위 거점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인간이 정주 생활을 영위하게 된 죠몽 후기에서 야요이 시대에 취락 전체를 환호(環濠:구덩이)로 둘러싸 신분제의 발달과 함께 영주의 관을 보다 엄중하게 방어하는 것으로 발전했습다. 무가 사회의 성립기가 되고 나서는, 타 세력과의 항쟁을 중점으로 해 영주 저택은 한층 더 거대화, 요새화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 입니다. 당연히, 성을 만드는 장소는 지키기 쉽고 공격하기 어려운 곳이 선택되어 그 풍토나 성주 마다 독자적인 개량을 더해져 건설되었습니다. 특히 일본 성의 입지에 관해서 주된 유형은 아래의 3 형식으로 분류됩니..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무기는 어땠을까? 전국시대의 무기 개괄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전국시대의 무기는 어땠을까? 전국시대의 무기 개괄 전국시대 전투에서 주로 사용된 무기는 철포, 활, 쯔부테(礫:투석)입니다. 실제로 적을 사상시킨 무기의 비율은, 원거리용의 무기(활, 철포, 쯔부테)가 약 70%이고, 근거리용의 무기가 약 30%(칼, 창)라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사료를 조사 해, 통계로서 얻은 숫자입니다. 이와 같이 전투에서 주로 사용된 무기는, 원거리용의 무기였던 것이지요. 게이쵸 5년 8월 24일, 킷카와 히로이에(吉川広家)는 이세 쯔성(津城)을 공격했습니다. 26일 킷카와 가문에서는 공성전의 사상자를 서류에 정리했습니다. 그것에 따르면 전사자는 145명, 부상자는 173명에 이었으며, 철포로 인한 부상자 93명, 창에 의해 58명, 화살에 22명..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 (12) 전후처리 '쿠비짓켄'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12) 전후처리 '쿠비짓켄' 공양 전투의 승패는 운으로 정해집니다. 적을 토벌할 때도 있고 자신이 토벌해 질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무장은 적의 목에 예의를 다했습니다. 「고에쓰군기(甲越軍記)」에 의하면, 우에스기가에서는 대장이 적 대장의 목을 보는 것을 '목대면(首対面)'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투구와 갑옷을 지닌 무사의 목이면 '쿠비짓켄(首実検)', 아시가루의 목이면 '미시리(見知り)'라고 불렀습니다. 「중원고충군진문서(中原高忠軍陣聞書)」는 적의 대장의 목을 취했을 경우, 대장은 말의 궤짝의 좌측에 목을 걸어서 옮겼다고 적고 있습니다. 목을 물로 씻어, 부패 방지를 위해 절단면에 소금을 바릅니다. 이것을 '소금절이기(塩漬け)'라고 말합니다. 목을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 (11) 승패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11) 승패 승리 전쟁에 있어서 승리는 전투로 적군에게 다대한 손해를 주어 전투 의욕을 상실시켜, 항복에 몰아넣는 것입니다. 적이 항복하면 정치적 요구 예를 들어 영지의 할양등을 강요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투에서 적의 영주를 토벌할 수 있으면 결정적인 승리가 됩니다. 전투로 적군에게 준 피해가 작으면, 적은 전투 의욕을 잃지 않습니다. 항복을 했다고 해도, 과도한 요구를 들이대면 다시 전쟁이 일어 납니다. 반대로 적군에게 준 피해가 크면, 상당한 요구가 가능하게 되지요. 적은 전력과 전의를 상실하고 있어, 요구를 거절할 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투에 승리하면, 영주는 약탈의 허가를 냈습니다. 그리고 전투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축하연을 열었습니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 (10) 성과 공성전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 (10) 성과 공성전 성 성은 고대 일본에서는 '키(き)'라고 불렸습니다. 그 후, '죠(じょ)'라고 불리다가, 전국시대 중반에 '시로(しろ)'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성에는 방어를 위해서 해자(堀), 쯔키지(築地: 흙담), 토루(土塁: 흙 보루), 목책(尺木), 담(塀) 등이 건설되었습니다. 해자는 단순히 흙을 파는 것이 아니라, 기둥으로 보강해, 흙을 굳히고 무너지지 않게 했습니다. 해자를 팠을 때에 나오는 흙을 쌓아 올이면 그것을 토루라 부릅니다. 목책은 재목을 우물 정(井)자의 무늬로 짜 올리기 때문에, 사이에 틈새가 생깁니다. 공방 시에 그 틈새로 공격을 하거나 적을 보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 있었습니다. 쯔키지에는 돌이나 욱새를을 혼합한 적토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