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는 백성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2) 전쟁 뒤의 백성의 삶
약탈과 제부전
전투에 승리한 영주는 적지에서의 약탈을 용인했습니다. 부하들에게의 전쟁의 포상을 내리는 것이지요. 식료나 금전, 가구등 여러가지 물건이 약탈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전장에는 인신매매를 하는 상인이 있었기에, 잡은 포로들을 매도하기도 했습니다.
약탈은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새로운 영지를 손에 넣은 영주는, 마을에 대한 지배권을 강하게 하기 위해, 자군의 약탈에 대해 금제를 내, 마을의 안전을 보장했습니다. 하지만, 금제가 없는 마을에서 약탈을 하는 것은 적대 영주의 영지에의 공격이기에 용인되고 있었습니다. 또 비사문천의 화신, 우에스기 겐신 이야기를 하자면, 그가 자주하던 짓이었다고 합니다.
만약 약탈하는 아시가루(足軽)를 토벌한다면, 그것은 영주에게 적의를 보이는 것이 되어, 마을은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금제가 있으면 약탈한 아시가루를 토벌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마을이 영주에게 금전, 병량을 지불하고 약탈에 대한 금제를 받는 것을 '제부전(制札銭)'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중개인, 문서를 써 주는 사람, 영주에게 주는 비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 큰 경제적 부담이 되었습니다.
제부(制札)
아무튼 제부전을 내는 마을은 영주의 영지가 되므로, 철저히 보호하고 약탈에 대한 금제역시 엄격히 행했습니다. 만약 영주가 아시가루들을 통솔하지 못하면 마을은 적대 영주에게 제부전을 바치고 보호를 요청했습니다.
절과 신사로 도망치는 사람들
신사는 신을, 절은 부처를 모시는 성역이기에, 속세와는 떼어내진 '무연'의 영역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영주라 해도 불법으로 경내에 들어가는 것은 용서되지 않고, 하물며 경내에 있는 사람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것은 용서되지 않는 행위였습니다. 그러한 행위는 신불에 대한 불경이라고 여겨져 이윽고 천벌이 내릴 것이라 두려워 했습니다.
다이에이 5년에 다케다 노부토라는 가이 코우타케안(向嶽庵)에 금제를 냈는데, 거기에는 '당 암자에 대해 속세의 무리가 해서는 안 될일', '당 암자의 부지는 살생이 금지된다'등이 이런 절과 신사의 위상을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전투시에 패잔병이나 백성들은 절과 신사에 몸을 숨겼습니다.
도망치자!
하지만 이를 무시한 이가 있었으니, 오다 노부나가, 노부타다 부자입니다. 그들은 적군이 숨어 있는 경내에 들어가 적을 처단해 버렸는데, 이는 후에 '절을 태웠다느니'라 과장 되어 소문이 흐르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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