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가문과 남편을 잃은 비극의 여인, 레이쇼우인
레이쇼우인(嶺松院)은 스루가국의 다이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딸로 키요스 삼국동맹의 일환으로 다케다 요시노부(武田義信)와 결혼하였습니다.
레이쇼우인(嶺松院) 일러스트
다케나 노부토라의 딸이자 신겐의 누나 죠우케이인 (定恵院)이 텐몬 19년(1550년)에 죽습니다. 사실 그녀는 키요스 삼국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결혼한 것이었지요. 키요스 동맹의 지속, 유지, 강화를 위해 이번에는 레이쇼우인과 다케다 신겐의 장남 다케다 요시노부의 결혼이 결정됩니다.
텐몬 21 년 (1552) 겨울 레이쇼우인은 슨푸을 떠나 가이을 향해갔습니다. 그리고 츠츠지가사키 관(躑躅ヶ崎館)에 두명을 위해 만든 건물로 들어가지요. 그리고 당시 15세이던 요시노부와 결혼합니다. 이후에 텐몬 22년에는 신겐의 딸 오우바이인(黄梅院)과 호조 우지야스의 장남 우지마사의 약혼이 성립하고, 텐몬 23년 (1554년)에는 우지야스의 딸 하야카와도노(早川殿)와 요시모토의 장남 우지자네가 결혼해 키요스 동맹은 매우 강해집니다.
에이로쿠 3 년 (1560 년)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오케하자마 전투 에서 패배해 전사하자 다케다 신겐은 이마가와의 영지로 진출하려 합니다. 그러자 이에 레이쇼우인의 남편인 요시노부를 필두로 하는 키요스 동맹 수호파가 크게 반발합니다. 이에 신겐은 토우코우지(東光寺)에 요시노부를 유폐하고, 레이쇼우인과 파양시켰다고 합니다. 하지만 레이쇼우인은 계속해서 가이에 머물렀습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 요시노부와 레이쇼우인의 사이는 매우 양호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고요군감」에야 요시노부가 아집이 강해 반발했다고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라고 보기는 힘들지요.
얼마전까지 신겐의 갑옷이라 알려졌던 한 신사에 봉납되어 있던 것이 사실은 요시노부의 것이라 밝혀졌습니다. 요시노부의 어머니가 둘의 사이가 개선되기를 바라며 바쳤다고 추측하는데요, 이런 노력도 허망하게 에이로쿠 10 년 (1567 년) 10 월 요시노부는 아버지에게 결코 의견을 굽히지 않고 결국 할복하고 맙니다. 같은 해 11 월 레이쇼우인은 오라버니인 우지자네의 요청으로 스루가에 송환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죽음의 충격을 이기지 못했는지 출가합니다. 에이로쿠 11년 12월 신겐의 스루가 침공으로 이마가와가는 거의 멸망해 버리지만, 그 이후로 그녀의 행적은 묘연합니다. 게이쵸 17년 (1612년) 사망해 이마가와의 반쇼인(万昌院)에 묻혔습니다.
그녀의 무덤이 있는 반쇼인(万昌院)
자신의 가문과 사랑하는 남편을 모두 잃고 출가한 레이쇼우인은 무엇을 생각하며 반생을 보냈을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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