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성에 대해(1) 전국시대 성의 역사
일본 전국시대에 대해 보기전에 알고 넘어가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일본의 성의 구조입니다. 전국시대의 성은 가마쿠라 시대 말기부터 남북조에 들어와 벌어진 요시노산 주변을 무대에 행해진 공방전에서 태어난 산성, 아카사카성(赤坂城)이나 치하야성(千早城)이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아카사카성(赤坂城)의 모습입니다
평지가 아니고 게릴라전에 유리한 산 위에 성채와 같은 성을 쌓아 천연의 지형을 이용해 위에서 돌이나 통나무를 떨어뜨려 공격해 오는 적을 막는 방식의 성 이지요. 하지만 무로마치 시대 전기에는 정권이 안정되어, 성이 전투용이라기보다는 수호나 다이묘의 저택이라고 하는 의미가 커져, 방어보다는 화려함과 편리함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여러 무사들은 시골에서 각자 저택을 쌓고 살게 되었지요. 하지만 오닌의 란이후 본격적으로 전국시대가 시작되며 성의 모습은 변화하게 됩니다.
다시 전투용 성이 중요하게 되자, 원래 저택이 본성으로, 시골에 있는 무사들의 저택을 지성으로 한 뒤에 전략적 요충지들에는 성채를 쌓아 올려 네트워크를 구축해 방어하게 됩니다. 이러한 성들의 거리는 대략 나각이나 북 등으로 연락이 가능한 정도였습니다. 당시는 병농분리가 되어있지 않았기에, 이런 연락이 없으면 순식간에 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의 성공격이 다름아닌 본성과 지성들의 연락을 끊는 일로부터 시작하는 것 입니다.
갓산토다성(月山富田城) 모형
본성은 주로 산에 지어졌는데, 예전보다 축조기술이 발달해 해자나 망루 등 방어 건물들이 한층 더 많아졌습니다. 일반적으로 해발 100m이상에 지어진 성을 산성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갓산토다성(月山富田城)같은 경우는 해발 300m나 되는 곳에 지어졌다고 하니 그 견고함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 입니다.
이러한 성의 패러다임은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서 깨어지게 됩니다. '시로와리' 포스팅 때도 썼습니다만, 노부나가는 점령한 지역에는 본성만을 남겨놓고 나머지 지성들을 파괴해 무사들을 본성으로 모아, 병농분리를 어느정도 이뤄냈습니다. 이즈음의 전투도 야전에서 공성전으로 포커스가 옮겨지기에, 성의 방어도 중요해지게 되지요. 이런 시대의 변화를 찰지해 노부나가는 해발 100m이하의 작은 언덕에 성을 지으니, 이를 '히라야마성(平山城)'이라 부릅니다.
대표적인 히라야마성, 노부나가의 아즈치성
히라야마성은 에도시대까지 계속 된 축조방식이었습니다. 발달한 축조기술로 해자와 망루를 건설하고, 성벽을 지어 산성과는 다르게 물자가 오고가기도 쉽고, 백성들에 눈에도 띄기 때문에 영주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유명한 '오사카성'이나 '히로시마성' 등도 모두 이 히라야마성에 속합니다.
그런데 일본의 성은 유럽 중세시대의 성과 다르게 엄청나게 높은 성벽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 전국시대의 전투는 기본적으로 영주끼리의 징세권의 쟁탈입니다. 백성을 살륙 해서는 토지를 손에 넣어도, 수입이 없어져 버리니까의미가 없지요. 오히려 적국의 백성을 보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시대 후반에는 백성들은 전쟁에 관심이 없어 무사끼리 전투를 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은 정말로 무사들만이 있는 통치기구, 방어시설의 의미만 있었기에 높은 성벽이 있을 의미가 적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일본 성의 구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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