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전국시대에는 왜 항상 전란의 중심에 있었는가?
전국시대는 '전'국이라는 말처럼 항상 전쟁과 함께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요? 전쟁은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벌어지는데다, 전쟁 후에도 뒷 수습할 것들이 정말 많지요.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는 그에 상응하는 원인이 있거나, 사건이 있기 마련입니다.
전국시대의 전쟁의 가장 큰 이유는 토지의 부족입니다. 일본은 가마쿠시대부터 '고온(御恩)'과 '봉공(奉公)'에 의한 주종관계가 이루어져 왔습니다. 가신(家来)이 주군을 위해 일을 하고, 주군은 그 보답으로 토지를 하사하는 유럽의 중세시대의 영주와 기사의 관계와 비슷한 쌍무적 계약관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어디까지나 토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지요. 이 시대에는 이미 이 주종관계가 포화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고온들에게는 불안감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시선을 외부로 돌리는 일입니다. 즉, 외부를 침략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영주가 무능해 가신들의 불만을 잘 처리하지 못할 경우에는 가신들은 주저없이 주군을 배신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전국시대의 가장 큰 특징인 '하극상'이 일어났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런 전국시대의 패러다임은 오다 노부나가라는 한 남자에 의해 크게 바뀝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총의 '삼단격발'이나 내정측면의 '시로와리'등을 통해 병농분리를 이루어 근린국을 차례차례로 쳐 부수고, 쇼군 아시카가 요시히사의 노부나가 포위망조차 파괴하며 전국을 통일해 갑니다. 그러나 아케치 미쓰히데에 의해 노부나가가 쓰러지게 되고, 그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게 되지요. 그리고 이 임진왜란에서 많은 수의 무장이 목숨을 잃고 말아 분란을 조장할 세력이 제거되어 버립니다.
결국 이렇게 안정되어가는 일본 열도를 도쿠가와 이야에스가 집어삼키게 됩니다. 그리고 도쿠가와 막부를 만들지요. 여기서 일본 전국시대는 종결을 맞이합니다. 이를 '오다가 쌀을 찧고, 하시바가 반죽한 천하라는 떡. 앉은 채로 먹은 건 도쿠가와'라고 우타가와 요시토라(歌川芳虎)는 자신의 작품으로 말했다고 합니다.
織田がつき羽柴がこねし天下餅すわりしままに食うは徳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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