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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북조 시대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모리요시 친왕, 암살당하다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모리요시 친왕, 암살당하다 겐무2년(1335년) 7월 23일, 가마쿠라에 유폐중이던 모리요시 친왕을 아시카가 타카우지의 남동생 나오요시(直義)가 암살했습니다. 오오토우노미야 모리요시 친왕(大搭宮護良親王)은 겐무의 신정의 제 96대 고다이덴노의 황태자입니다. 처음은 히에이잔렌라쿠지에서 승려가 되어 출가한 뒤 소운법 친왕(尊雲法親王)이라 자칭하고 텐다이자스(天台座主)가 되어 있었습니다만, 아버지 고다이고덴노가 타도 가마쿠라 막부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자, 환속해 참전합니다. 그는 킨키 지방의 무사를 모아, 가마쿠라막부에 주목받아 자유로이 행동을 할 수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함께 싸우자!'라고 영지를 연발해, 각지에서 게릴라전을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고다이고덴노에게 협력..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나카센다이의 난 발발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나카센다이의 난 발발 겐무 2년(1335년) 7월 23일, 죽은 호조 다카토키의 아이 타카유키를 필두로 가마쿠라막부 부흥을 목표로 한 반란인 나카센다이의 란으로, 반란군이 가마쿠라를 점거했습니다. 막부군은 전면 항복했습니다만, 마음 속에 '막부 부활'의 뜻을 숨기는 사람이나, 간신히 소수로 탈출해 반란을 획책 하는 사람들은 남아있었습니다. 호조 다카토키에게는 3명의 남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다카토키의 유우시(猶子)로 종가에 들어가 있던 하루토키(治時)는 7월 9일에 처형됩니다 친자인 장남 쿠니토키(邦時)는, 아버지에게서 '호조 재흥'의 꿈을 맡아 백부인 고다이 이인노 무네시게(五大院宗繁)에 맡겨집니다만, 그가 스스로의 보신을 위해서 쿠니코키를 팔았기 때문에 포박 되어 5월 28일..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와카사국 타라노쇼우 잇키 발발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와카사국 타라노쇼우 잇키 발발 겐무 원년(1334년) 8월 21일, 와카사국 타라노쇼우(太良荘)에서, 백성 59명이, 지도우(地頭) 대관의 교대를 요구해 서약문을 제출하고, 잇키를 일으켰습니다. '우는 아니도 지도우에는 그친다'라고 할 정도로 가마쿠라 시대때부터 큰 권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답에 이런저런이유를 붙여 새로운 세금을 징수하거나 용수를 이용하려면 지불을 해야 한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럴때 농민들은 로쿠하라탄다이에 호소하고 있었습니다만, 로쿠하라탄다이가 멸망하고 나서는 더욱 치안이 나빠져 약탈행위가 공공연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와키부쿠로(脇袋)라는 지도우가 새로 부임했지만, 그는 장원내의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리며 자신의 집을 짓는 등의 학정을 거듭해 겐무원년..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막부군의 항복으로 아소 하루토키 등이 처형당하다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막부군의 항복으로 아소 하루토키 등이 처형당하다 겐코 3년(1333년) 7월 9일, 아소 하루토키(阿蘇治時), 오사라기 타카나오(大仏高直) 등 호조의 유명한 가신이나 중신들이 처형되었습니다. 겐코 3년(1333년) 6월 6일, 호조 다카토키 일족 멸망의 소식을 들은 고다이고덴노가 교토에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일련의 겐무의 신정이 개시됩니다. 가마쿠라막부 정권에서 그 세력을 자랑한 호조 다카토키(北条高時)의 일족은 이슬과 함께 사라졌습니다.이 소식을 들은 고다이고덴노는 즉시 호키 센죠우산(船上山)을 출발해,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겐코 3년(1333년) 6월 6일 그는 교토에 들어갔습니다. 이미, 로쿠하라탄다이가 함락된 시점에서, 코우곤덴노(光厳天皇)를 내쫓아, 사실상 정권을 탈취..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고다이고덴노의 겐무의 신정 시작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고다이고덴노의 겐무의 신정 시작 겐코 3년(1333년) 6월 6일, 호조 다카토키 일족 멸망의 소식을 들은 고다이고덴노가 교토에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일련의 겐무의 신정이 개시됩니다. 가마쿠라막부 정권에서 그 세력을 자랑한 호조 다카토키(北条高時)의 일족은 이슬과 함께 사라졌습니다.이 소식을 들은 고다이고덴노는 즉시 호키 센죠우산(船上山)을 출발해,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겐코 3년(1333년) 6월 6일 그는 교토에 들어갔습니다. 이미, 로쿠하라탄다이가 함락된 시점에서, 코우곤덴노(光厳天皇)를 내쫓아, 사실상 정권을 탈취하고 있던 고다이고덴노는 조속히 논공행상을 함과 동시에, 원정(院政)도, 섭관 정치(摂関政治)도, 막부도 부정한 '겐무의 신정'을 개시합니다. 우선은, 개점휴업..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호조 다카토키 할복, 가마쿠라막부 멸망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호조 다카토키 할복, 가마쿠라막부 멸망 겐코 3년(1333년) 5월 22일, 닛타군의 공격에 의해 카마쿠라가 불타 호조 다카토키(北条高時)등이 할복해 호조 가문이 멸망했습니다. 고다이고덴노가 아쿠도우(悪党)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의 조력을 얻어 가사기산에서 군사를 일으켜 겐코의 변을 발발시키는 것도 실패에 끝나(겐코의 변), 겐코 원년(1331년) 아카사카성(赤坂城)에서 분전 하고 있던 마사시게가 성을 탈출하고, 고다이고덴노가 오키로 도망친 것이 겐코2년(1332년)의 일입니다. 8개월 후 겐코의 변 때 가사기산에서 탈출하고 있던 고다이고덴노의 황태자 모리요시 친왕(護良親王)이 재기를 도모하고 요시노산에 들어가, 전국을 향해 막부 토벌의 영지를 발하자, 행방을 감추고 있던 ..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요시타다, 이네무라가사키 간석지에서 기습을 결행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요시타다, 이네무라가사키 간석지에서 기습을 결행 겐코 3년(1333년) 5월 21일, 닛타 요시사다군이 이네무라가사키 간석지에서 가마쿠라에 기습을 걸었습니다. 고다이고덴노가 아쿠도우(悪党)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의 조력을 얻어 가사기산에서 군사를 일으켜 겐코의 변을 발발시키는 것도 실패에 끝나(겐코의 변), 겐코 원년(1331년) 아카사카성(赤坂城)에서 분전 하고 있던 마사시게가 성을 탈출하고, 고다이고덴노가 오키로 도망친 것이 겐코2년(1332년)의 일입니다. 8개월 후 겐코의 변 때 가사기산에서 탈출하고 있던 고다이고덴노의 황태자 모리요시 친왕(護良親王)이 재기를 도모하고 요시노산에 들어가, 전국을 향해 막부 토벌의 영지를 발하자, 행방을 감추고 있던 마사시게가 아카사카..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요시타다 패배, 코테사시가하라 전투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요시타다 패배, 코테사시가하라 전투 겐코 3년(1333년) 5월 11일, 가마쿠라 막부군에서 고다이고덴노 측에 붙은 닛타 요시사다(新田義貞)가 코테사시가하라(小手指原)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고다이고덴노가 아쿠도우(悪党)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의 조력을 얻어 가사기산에서 군사를 일으켜 겐코의 변을 발발시키는 것도 실패에 끝나(겐코의 변), 겐코 원년(1331년) 아카사카성(赤坂城)에서 분전 하고 있던 마사시게가 성을 탈출하고, 고다이고덴노가 오키로 도망친 것이 겐코2년(1332년)의 일입니다. 8개월 후 겐코의 변 때 가사기산에서 탈출하고 있던 고다이고덴노의 황태자 모리요시 친왕(護良親王)이 재기를 도모하고 요시노산에 들어가, 전국을 향해 막부 토벌의 영지를 발하자, 행방을..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로쿠하라탄다이 멸망, 432명 할복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로쿠하라탄다이 멸망, 432명 할복 겐코 3년(1333년) 5월 9일, 로쿠하라탄다이의 북방을 맞는 호조 나카토키가, 일행 432명과 함께 할복했습니다. 제14대로 집권한 호조 다카토키(北条高時)가 사실상의 실권을 잡은 가마쿠라 막부에 대해,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와 함께 막부 토벌의 봉화를 든 제 96대 고다이고덴노(後醍醐天皇)에게 막부군은 아시카가 타카우지(足利高氏)를 불러 견제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덴노측에 서기로 마음을 정한 뒤였습니다. 교토로 들어가 사면에서 공격을 시작하는 군세에, 로쿠하라 탄다이는 별 저항도 하지 못하고 패퇴합니다. 결국 로쿠하라 탄다이의 북방을 맡던 나카토키는 관동을 향하기로 합니다.(타카우지 입경) 로쿠하라를 뒤로 한 나카토키 일행..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타카우지, 로쿠하라탄다이를 공격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타카우지, 로쿠하라탄다이를 공격 겐코 3년(1333년) 5월 7일, 시노무라에 포진하고있던 아시카가 타카우지가 교토를 목표로 해 출발 했습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가 가마쿠라에서 연 일본 최초의 무사 정권도, 합의제 아래 요리토모 계열의 쇼군은 불과 3대로 끊어져, 그 다음은 이름뿐인 쇼군을 공가들이 임명해, 실질적으로는 요리토모의 아내 호조 마사코(北条政子)의 친가인 호조 가문이 집권해 실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쇼와(正和) 5년(1316년), 제14대 쇼군으로 호조 다카토키(北条高時)가 취임합니다. 그런데, 그 2년 뒤에 제96대 덴노로 즉위 한 고다이고덴노는 현 정권에 불만을 가져, 덴노의 친정을 목표로 해 은밀하게 획책합니다. 이에 막부와 덴노의 싸움이 벌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