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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북조 시대/역사편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와카사국 타라노쇼우 잇키 발발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와카사국 타라노쇼우 잇키 발발



 겐무 원년(1334년) 8월 21일, 와카사국 타라노쇼우(太良荘)에서, 백성 59명이, 지도우(地頭) 대관의 교대를 요구해 서약문을 제출하고, 잇키를 일으켰습니다.



잇키 발발!



 '우는 아니도 지도우에는 그친다'라고 할 정도로 가마쿠라 시대때부터 큰 권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답에 이런저런이유를 붙여 새로운 세금을 징수하거나 용수를 이용하려면 지불을 해야 한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럴때 농민들은 로쿠하라탄다이에 호소하고 있었습니다만, 로쿠하라탄다이가 멸망하고 나서는 더욱 치안이 나빠져 약탈행위가 공공연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와키부쿠로(脇袋)라는 지도우가 새로 부임했지만, 그는 장원내의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리며 자신의 집을 짓는 등의 학정을 거듭해 겐무원년 (1334년) 8월 21일 겐무의 신정에 실망한 사람들이 '니죠가하라 낙서'가 한 그 달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농민 59명이 들고 일어나서 지도우의 교체를 요구하는 서약문을 제출했습니다. 이 잇키는 와카사국 전역에 넓혀져 지도우의 영향력은 약화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