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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 카가에서 분메이 잇키 발발하다 일본 전국시대; 카가에서 분메이 잇키 발발하다 분메이 6년(1474), 카가(加賀)에 분메이 잇키가 발발합니다. 잇키가 무엇인지 모르시는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해 주세요.(잇키란 무엇인가?) 역시 오닌의 난(오닌의 난)에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카가의 수호인 토가시 마사치카(富樫政親)는 이 난에 동군으로 참여하나, 그의 동생 토가시 코우치요(富樫幸千代)는 서군으로 참가합니다. 그런데 난이 진행되는 와중에 동군의 하리마(播磨)지역 영주 아카마츠 마사노리(赤松政則)의 원조를 받은 마사치카는 카가의 북부를 차지하고 있던 코우치요 일파를 축출해 버립니다. 대신, 카가의 북부 일부를 아카마츠에게 양도하지요. 마사노리는 승리를 거두고 본거지로 귀환합니다. 이 때, 코우치요가 군세를 이끌고 자신의 본거지였던 북카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노부나가의 딸, 도쿠히메의 기구한 인생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노부나가의 딸, 도쿠히메의 기구한 인생 에이로쿠10년(1567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장남 노부야스(信康)와 오다 노부나가의 딸 토쿠히메(徳姫)가 결혼했습니다. 이들은 고작 9살로, 어린 신랑 신부는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정략 결혼을 한 것입니다. 이 다케치요는 이에야스의 정실 쯔키야마도노(築山殿)와의 사이에 태어난 장남 노부야스(信康)입니다. 토쿠히메는, 고도쿠(五徳)라고도 불렸다는데요 우리나라의 발음으로는 '오덕'이 되어버리네요. 그 후 두 사람 모두 18세가 되는 무렵에 장녀가 탄생해 다음 해에는 차녀도 탄생합니다만, 남자 아이가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부부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설에는 토쿠히메와의 사이에 남자아이가 태어..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오닌의 란의 종결과 그 영향 일본 전국시대;오닌의 란의 종결과 그 영향 오닌의 란은 무신뿐만 아니라 문신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문신은 명목상 장원을 가지고 있어 그 수입으로 먹고 살았는데, 전란에는 장원에서의 수입을 기대하기 힘들었고, 따라서 문신의 생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치죠 노리후사(一条教房)는 전 관백이였지만, 문신이었기에 오닌의 란이 발발한 이듬해 영지인 토사(土佐)로 떠납니다. 그의 저택은 타버렸고, 방대한 장원은 소실되었지요. 목숨만을 간신히 건져 나라로 피신했었습니다. 이런 그의 귀농(?)은 당시 사회에서는 매우 충격이었습니다. 관백까지 오른 사람이 지방으로 돌아가다니요. 조정에서도 반대한 귀족이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토사는 경제적으로 곤궁하지는 않으나, 지나치게 시골이였습니다. 그런데 전 관백인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