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세이난 전쟁(2) 사츠마군 가고시마에서 출진!
메이지10년(1877년) 2월 22일 사츠마군이 정부군의 지키는 구마모토성을 포위했습니다.
시민 평등, 부국 강병 등 메이지 정부의 개혁에 의해 권력을 잃어 불만을 가진 사족들은 사츠마의 사립학교 학생들의 봉기로 인해 세이난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총대장이 된 사이고 다카모리가 처음으로 향한 곳은 구마모토, 이곳을 수호하는 것은 친다이(鎮台)의 사령관 타니 타테키(谷干城)였습니다. 이들이 농성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된 사츠마군은 전군을 구마모토성 공격으로 향하게 해, 포위를 완료합니다. 메이지 10년(1877년) 2월 22일 이른 아침 사츠마군의 이케가미 시로우(池上四郎) 부대가 성의 동쪽을 흐르는 시라카와의 하류에 도착했는데, 성내에서 갑작스레 포격이 시작되어 전투의 포문이 열렸습니다.
구마모토성을 공격하는 사츠마군
이케가미대와 함께, 정면에서 공격하는 키리노 토시아키(桐野利秋) 부대도 성의 동남측에서 돌진합니다만 친다이 병사들이 돌담 뒤에서 맹사격을 가해 좀처럼 앞으로 진군할 수 없었습니다. 동시에 구마모토성의 서쪽의 성의 뒤쪽 문에서 온 공격대 시노하라 구니모토(篠原国幹) 대와 무라타 신파치(村田新八)도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결국 이 날의 사츠마군은 성곽의 일각조차 부수지 못하고 전투를 끝마쳤습니다. 농민들이 모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친다이들에게 의외로 고전해 버린 사츠마군, 밤이 되자 이대로 구마모토성 공격을 속행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장기전을 시야에 두고 포위를 할 것인지를 정하는 군의를 하는 중, 사이고 다카모리가 군사를 일으킨 것을 알고, 새롭게 큐슈의 각 번의 사족들이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그들은 사츠마 군의 무리(党)에 참가했다 해서 토우사츠타이(党薩隊)라 불립니다. 하지만 이것은 편의를 위해 한꺼번에 부르는 것으로, 실제로는 구마모토번의 구마모토타이, 타츠구치타이(竜口隊), 쿄우도우타이(協同隊) 등과 히토요시번 출신의 히토요시타이(人吉隊), 노베오카번 출신의 노베오카타이 등 12개의 부대로 이루어져 있었는 데다가 별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토우사츠타이는 총 1만여명 정도로, 최대 부대인 구마모토타이는 약 2,300명 정도의 인원이었습니다. 이런 대군을 손에 넣었기에 계속 공격을 속행하자는 의견이 힘을 얻었습니다. 이러던 중 후속 부대를 이끌고 온 사이고 코헤에(西郷小兵衛)와 노무라 오시스케(野村忍介)의 주장에 따라 일부가 구마모토성을 포위하고 나머지 군사들은 남하해 올 정부군과 맞아 싸우기로 했습니다.
사츠마군의 군의
사츠마군이 구마모토성을 포위하고 있었을 무렵에는 이미 정부군은 해운 수송에 의해 잇달아 하카타에 상륙하고 있었습니다.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가 인솔하는 오구라 제 14 연대의 500명은 사츠마군의 눈앞까지 오고 있었습니다. 한발 앞서 구마모토를 출발해 북상한 사츠마군의 선봉대 400명은 이미 이 날, 제14 연대와 우에키(植木)에서 마주쳐 총격전이 일어났습니다. 탄약이 다했을 무렵 사츠마군은 검을 뽑아들고 근접전을 시도합니다. 그렇게 되자, 메이지 정부의 정책으로 징병한지 얼마 안된 정부군의 군사는 사기가 완전히 떨어져 버립니다. 총포술을 배웠다고는 해도 이쪽은 원 일반인 상대는 원 사무라이이기 때문입니다. 이 우에키에서의 결전은 완전히 사츠마군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정부군은 연대기를 빼앗길 만큼의 굴욕적인 패배를 겪었습니다.
연대를 인솔하고 있던 마레스케는 생애에 걸쳐 이 일을 자신의 과오로 후회했다고 합니다. 한편, 포위를 하기로는 했지만 다음날도 계속해 구마모토성의 공격을 시도해 본 사츠마군이었지만, 구마모토성의 단단한 방위를 뚫지 못하고 3,000여명의 군사를 남긴 뒤에 주력을 겨우 북족으로 향합니다. 한편, 점차 상륙해 병력이 증강된 정부군은 분고 가도로는 케이시타이(警視隊)가 구마모토성의 구원으로 향해, 정면으로 남하한 본대는 그 운명의 다바루자카에서 북상하는 사이고군과 부닥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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