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사가의 난(1) 사가의 난의 전초, 우국당 자금 강탈사건
메이지 7년(1874년) 2월 3일, 사가의 우국당이 오노조에게서 자금을 강탈했습니다.
정한론의 논쟁에 패배해 사이고 다카모리가 정계를 떠난 메이지6년의 정변은 뒤에 세이난 전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즉 가고시마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 입니다만, 동시에 사가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사이고 다카모리나 이타가키 타이스케와 함께 사가 출신인 에토 신페이(江藤新平)나 소에지마 다네오미(副島種臣)도 동시에 정계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의 사가는 메이지 신정부의 방침에 의해 막부에서 주던 녹도 없어지고, 폐도령에 의해 칼도 빼앗긴 사무라이들의 불평 불만이 모여 몇 개의 단체가 결성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우국당(憂国党)'입니다. 정한론에 반대하고, 도쿠가와 막부로의 복고를 꿈꾸던 이들이 결성한 단체였습니다. 이 단체와 궤를 달리하는 것이 '정한당(征韓党)'으로, 이 단체는 말 그대로 정한론을 주장했습니다. 한편, 메이지 정부를 지지하는 '중립당'(中立党)도 있었습니다.
에토 신페이
메이지 6년의 정변을 알게된 단체의 간부들은 각각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우국당은 도쿄에 사자를 보내, 사가 출신으로 지쥬(侍従)나 아키타현 권령(権令) 1등을 역임했던 시마 요시타케(島義勇)에게 '우국당의 지도자가 되어 주지 않는가?'며 설득을 시작합니다. 한편, 정한당의 사자는 에토 신페이를 지도자로 만드려 설득을 시작 했습니다. 이 에도 신페이가 후의 사가의 난의 주역이 되는 인물입니다. 하급 사무라이 출신으로 고학생으로 공부에 힘써 보신 전쟁에서는 관군이 되어 승진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가지 근대적 법제를 도입하는 등 선진적인 사고를 지녔던 사람으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정한당의 사자와 대면한 신페이는 고향 사가로 돌아올 결의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반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불평을 가진 사족들을 설득할 의도의 귀향이었습니다. 메이지7년(1874년) 1월 13일 그는 도쿄를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사건이 발발합니다. 아카사카 쿠이치가이의 변으로 이와쿠라 토모미가 토사의 불만을 가진 사족에 습격당해 버렸습니다. 생명은 건진 토모미였지만 이 사건에 의해 전국에 흩어진 사족의 위험성을 오오쿠보 도시미치가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 불평 분자의 중심 인물이 될 것 같은 신페이의 귀향을 놔 둘 수 없었습니다.
사가의 7현인
1월 18일 급히 이와무라 타카토시(岩村高俊)를 사가 권령에 임명해, 사가의 치안 유지를 위해 출병을 결의합니다. 한편 신페이는 우레시노 온천에 들르고 나서, 1월 25일에 사가에 도착했습니다만, 이미 사족들은 폭발 직전이고, 적대하는 단체에서는 신페이의 암살의 도모한다는 소문이 나와 있어, 다시 사가를 뒤로 해 나가사키에서 형세를 살피기로 했습니다. 메이지 7년(1874년) 2월 3일 우국당이 정상(政商) 오노조(小野組) 2에 밀어닥쳐 활동 자금을 강탈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시마 요시타케는 극단적인 상황을 막기 위해 사가에 갈 결의를 굳힙니다. 한편, 이 소식은 곧바로 정부에도 닿았습니다. 어째서인지 우국당이 아닌 정한당이 오노조를 공격했다는 형태로 전달되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도시미치는 에토 신페이가 정한당을 인솔해 반란을 도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날인 4일에는 구마모토 친다이(鎮台) 3에 출병을 명해 자신도 사가로 향합니다. 배로 사가로 향하던 신페이는 그 배에서 이와무라 타카토시를 만납니다. 그런데 타카토시가 직접 사가로 향하지 않고, 시모노세키에서 하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유가 '군사를 인솔해 사가로 진군하려 한다'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분노한 신페이는 대립하던 세력과 손을 잡아 고향을 지키려 들고 일어나니, 이것이 사가의 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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