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 유신시대/역사편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사가의 난(2) 사가의 난 발발, 에토 신페이의 최후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사가의 난(2) 사가의 난 발발, 에토 신페이의 최후



 메이지7년(1874년) 2월 16일, 메이지 유신 후의 첫 사족의 반란인 사가의 난으로, 불평 사족들이 사가성에의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목숨을 걸어 에도막부 말기의 보신 전쟁에 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정부의 방침은 무사의 특권을 빼앗는 '시민 평등'이었습니다. 실직한 사족들의 불만은 서서히 커져 갔습니다. 이윽고, 메이지7년(1874년) 1월 14일 도쿄에서 정부 고관인 이와쿠라 토모미가 토사의 사족에 습격당하는 아카사카 쿠이치가이의 변 발발해, 게다가 2월 3일에는 사가에서 역시 불만을 가진 사족 그룹이 정상 오노조에 밀어닥쳐 돈을 강탈하는 사건 발발해 중앙정부에서 쫓겨난 사가 출신 에토 신페이가 정확히 이 타이밍에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이에 위기감을 안은 오오쿠보 도시미치는 치안 유지를 위해 이와무라 타카토시를 사가 권령에 임명해 출병시켰습니다. 원래 사족들의 폭주를 막으려 했던 에토 신페이는 이로 격노해 적대하던 우국당의 시마 요시타케와 손잡고 사가를 지키기 위해 들고 일어납니다. 하지만 이들은 언제까지나 방어를 위해 결탁한 것, 만약 상대가 그럴 마음이 없다면 군을 일으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2월 15일 이와무라 타카토시가 구마모토의 친다이(鎮台)[각주:1] 640명을 인솔해 사가성에 들어 왔습니다. 곧바로 신페이 등은 정한당 소속 야마나카 이치로(山中一郎)를 대표로 해 사가성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군대를 인솔해 사가에 입성한 것은 설마 우리들 사족을 죽이기 위해서인가?'라 묻는 그에게 타카토시는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신페이의 마음은 정해졌습니다. 그들은 그날 밤 사가군에서 정찰하러 나온 친다이를 본 우국당의 병사 수십명이 부닥쳐 소규모 전툭가 일어납니다. 메이지7년(1874년) 2월 16일의 일이었습니다.


사가의 난 발발!



 근처의 하치만 신사에서 발사해 사가성에 박힌 대포로 인해, 포문이 열린 사가의 난은 3일간에 걸쳐 전개되었습니다. 친다이 병사는 수백명에 불과했지만, 사가군은 4,500명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이 사가성 공방전에서도 압도적으로 우세했습니다. 2월 18일까지 친다이의 3분의 1이 전사하기에 이르러 사가성이 함락되었습니다. 이와무라 타카토시는 어떻게든 성을 탈출해, 대신 신페이 등 사가군이 성을 점거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출진을 결의하고 있던 오오쿠보 도시미치는 정부의 군함 15척에 대량의 무기, 탄약을 쌓아 하카타만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사가에 상륙한 도시미치는 조속히 난에 참가하지 않은 사족들에게 향해, 칸조쿠타이(貫属隊)라는 명목으로 군사를 모집해 1만명 이상이 모입니다. 도쿄에서 데려온 도시미치의 군대 5,000을 더해 1만 5천이 되었습니다.


 이제 열세에 몰린 사가군은 사가로 향해 오는 정부군을 맞아 싸울 수 있도록 사가성의 북동에 위치하는 아사히야마에 선봉을 배치합니다. 이윽고 2월 22일의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아사히야마의 결전은 불과 수시간 뒤 수가 많은 정부군 의 승리가 되어, 사가군은 퇴각했습니다. 아를 본 에토 신페이는 타데가와에서 적을 요격하러 나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사가군은 다대한 피해자를 내 승산이 없음을 깨달은 신페이는 재기를 위해 군의 해산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우국당은 철저 항전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신페이의 정한군은 해산해 버렸습니다. 신페이가 향한 곳은 다름아닌 메이지 6년의 정변으로 실권을 잃은 사이고 다카모리가 있는 가고시마 였습니다.


에토 신페이의 최후



 2월 25일 사이고 다카모리를 방문한 에토 신페이는 자신들의 난의 정당성을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다카모리는 그를 돌려 보냈습니다. 다른 협력자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로 향합니다. 이 중 그는 체포당하고 맙니다. 사가를 나와 약 1개월이 지난 3월 29일의 일이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랄까요, 신페이가 메이지 정부에서 일익을 담당했을 때 정비해 놓은 경찰제도 때문에 붙잡혔던 것입니다. 이 사가의 난은 변화하는 일본에서 힘을 잃어가는 사족들의 항쟁의 시작이었습니다.

  1. 옛날 지방을 수비한 군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