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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신시대/역사편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하코다테 전쟁(1)전쟁의 서막, 미야코만 해전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하코다테 전쟁(1)전쟁의 서막, 미야코만 해전 



 메이지 2년(1869년) 3월 25일, 에조 공화국 탄생 직후 에노모토 다케아키 등이 신정부군의 군함 코우테츠(甲鉄)를 빼앗으려고 해 발발한 미야코만 해전이 있었습니다.


 작년 4월 신정부는 막부측에 에도성의 명도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근신 그리고 군함의 인도를 요구했습니다. 다키아키는 카츠 가이슈의 설득에 따라 일단 군함을 인도했지만, 아직 이길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는 최신예의 군함 카이요우마루 이하 8척의 군함과 함께 에도를 탈출해 막부측 인사들과 함께 북쪽을 목표로 했던 것입니다. 불과 1, 2개의 번에 의해서 일이 결정되는 것은 이상하기 때문에 막부 세력을 위해서라도 에조지를 개척한다는 뜻을 가슴에 품고 연료 보급, 병량의 조달, 아직 항전중인 토호쿠의 여러 번과의 연락을 마친 에노모토는 8월 19일 카이요우마루를 기함으로, 카이텐(回天), 한료우(蟠龍), 치요다가타(千代田形)라고 하는 3척의 군함과 수송선 5척을 가지고 시나가와를 탈출했습니다. 


코우테츠카이요우마루


 카이요우마루는 네델란드제의 선체에 독일제의 대포를 갖춘 세계에도 통용되는 최신예의 군함이었고, 따르는 카이텐도 거기에 뒤잇는 크기였습니다.  게다가 한료우, 치요다가타도 더하면, 동양에서는 최강의 함대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도중에 폭풍우에 휩쓸리면서도 9월 3일에 센다이에 도착합니다만, 아이즈 와카마츠성이 이미 함락 직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여기서의 싸움은 피해 아직 혈기 왕성한 아이즈의 정예들을 승선시키고, 한층 더 북쪽의 에조지를 목표로 했습니다. 에조지에 도착한 에노모토 등은 신정부군에 인도되고 있던 하코다테를 빼앗아, 고료카쿠를 탈취해 메이지 원년으로 바뀐 1868년의 12월, 에조 공화국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시대에는 아직 항공기의 폭격은 없기 때문에, 홋카이도를 공격하려면 바다를 건너야 합니다. 신정부에 비해 우수한 해군을 가지고 있는 에조 공화국은 적은 인원이면서도 일본을 상대로 어떻게든 될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 때 첫번째의 오산이 있었습니다. 육상에서는 고료카쿠나 마츠마에성을 공략해 공화국 수립을 향한 준비로 다난하던 11월 15일 에사시 바다에 정박중이었던 카이요우마루가 폭풍우때문에 좌초해 침몰해 버렸습니다. 공화국이 탄생한 13일 뒤의 12월 28일 두번째의 오산이 생깁니다. 중립의 입장을 나타내고 있던 구미 각국이 신정부의 요청에 응해 중립의 해제를 공포했습니다. 그 때문에 막부의 돈으로 미국에서 구입하고 있던 군함 코우테츠가 신정부로 건네져 버렸습니다. 카이요우마루를 대신할 군함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신정부군은 코우테츠를 중심으로, 에조 공화국에 대항할 수 있는 해군의 준비에 착수합니다. 쵸우요우(朝陽), 카스가(春日)를 시작으로 하는 5척의 군함에 수송선에다 외국함을 빌린 8척의 함대는 메이지 2년(1869년) 3월 이와테현의 미야코만에 도착합니다. 이 소식을 우연히 들은 에노모토는 최신예의 코우테츠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우선, 한료우와 타카오(高尾)[각주:1]의 2척으로, 코우테츠를 좌우에서 둘러싸 그대로 코우테츠를 빼앗는다는 중세의 해적과 같은 작전이었습니다만, 이 급습의 총지휘는 하지가타 토시로이고 그 외에도 원래 신선조였던 검술에 능한 이들이 다수였습니다. 게다가 신보쿠타이(神木隊)나 쇼우기타이(彰義隊), 유격대(遊撃隊) 등 실력이 능한 정예 부대 들도 참가했습니다. 게다가 이 때 신정부군은 미야코에서 공격받는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세번째의 오산이 생깁니다.


에조 공화국의 미래는 한 차례의 해전으로 정해졌습니다



  3월 21일에 하코다테를 출항한 3척을, 폭풍우와 안개가 직격해 버린 것입니다. 쇼우기타이나 유격대가 승선한 한료는 어디로 간지도 모르게 표류했고, 신보쿠타이가 승선한 타카오는 엔진 문제로 속력이 반감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메이지 2년(1869년) 3월 25일 이른 아침 미야코만에 모습을 보인 것은 카이텐 1척뿐이라는 비참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순순이 물러갈 수는 할 수 없습니다. 성조기를 내걸어 미국선과 같이 위장해 코우테츠에 가까워지긴 했습니다만, 두 배의 높낮이 차이는 약 3 m입니다. 필사의 노력으로 7명이 올라 탔지만, 어쨌든 근접전의 맹자들이기에 신정부군의 7명을 베어 버립니다. 하지만, 함장 코우가 겐고(甲賀源吾)를 시작으로 24명의 사망자를 시작으로 불과 30분 정도에 기습 작전은 실패로 끝나 버립니다. 이로 인해 혼슈와 홋카이도 사이의 해상권을 잃어버린 에조 공화국의 미래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1. 하코다테에서 손에 넣은 아키타번의 군함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