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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신시대/역사편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기타고에 보신전쟁(6) 나가오카성 재함락으로 항복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기타고에 보신전쟁(6) 나가오카성 재함락으로 항복



 게이오 4년(메이지 원년, 1868년) 7월 29일 기타고에 보신 전쟁에서 '나가오카 두번째 괴멸(長岡二番崩れ)'이라고 불리는 전투 뒤 두번째로 나가오카성이 함락되어, 보신 전쟁의 무대는 한층 더 북쪽으로 향합니다. 


가와이 츠구노스케



 게이오 4(메이지 원년, 1868년) 7월 24일 늪지대인 핫쵸오키(八丁沖)를 넘어 신정부군에 빼앗긴 옛 터전 나가오카성을 탈환한 나가오카번 가로 가와이 츠구노스케는 승리의 축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수가 훨씬 많은 신정부군은 다음날인 25일 곧 바로 공격을 시작합니다. 우선 나가오카성 북측의 아라마치구치(新町口)로 밀려 드는 신정부군에 의해 전투가 발발했습니다. 장렬한 격전이 전개된 이 장소는 꼭 지켜야 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츠구노스케는 스스로 출진해 선두에서 지휘를 했습니다. 그러나, 최전선에 있던 그는 적의 총탄을 왼쪽 무릎에 맞아 중상을 입어버려 지휘를 할 수 없게됩니다. 한편, 신정부군은 2척의 군함과 5척의 수송함에 분승한 원군이 도착했습니다.


 니가타항의 북쪽의 다이부하마(大夫浜)에 상륙해, 2 부대로 나뉘어져 진군 합니다. 한 부대는 오오우에츠열번 동맹군의 해상 보급지인 니가타항에, 별동대는 시바타성으로 향했습니다. 시바타번은 원래 존왕양이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치 때문에 동맹에 참여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바로 배신했습니다. 이로인해 동맹군에는 많은 동요가 일어납니다. 나가오카번을 돕기 위해 진군 하고 있던 요네자와번의 군사가, 이 배신으로 진군을 멈추었기 때문에, 여기서 하루의 시간을 잃게 됩니다. 아이즈번의 지휘관 사가와 칸베에(佐川官兵衛)의 등장에 의해, 간신히 안심하고 진군을 재개해, 26일에 나가오카성에 도착하고 조속히 니가타항의 수비로 향합니다. 그러나 이미 니가타는 격전이 한창으로 2척의 군함에서 차례로 포격이 발사되며 상륙한 보병 부대도 가차 없이 돌진해, 이윽고 신정부군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나가오카성 공방전 그림



 게이오 4(메이지 원년, 1868년) 7월 29일 원군으로 더해진 사츠마, 조슈번, 마츠시로번의 군사를 중심으로 재편성 된 신정부군은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지휘 아래 세키하라 방면에서 나가오카에 총공격을 개시합니다. 츠구노스케를 대신해, 또 한사람의 가로 야마모토 다테와키(山本帯刀)가 지휘해, 신정부군을 맞아 싸우는 동맹군이었지만, 츠구노스케의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신정부군의 별동대가 시나노가와를 건너 서쪽에서 쳐들어갔습니다. 이에 나가오카성을 사수하는 것이 불가능이라고 판단한 나가오카번 수뇌부는 그 날의 정오에 성내의 화약고에 불을 지른 뒤에 토치오, 미츠케 방면으로 퇴각합니다. 남은 나가오카번 군사들은 저항을 계속했습니다만, 밀려 드는 신정부군에 견디지 못하고 오후 2 시경 역시 토치오 방면으로 도망쳐 갔습니다.


 환희의 탈환에서 불과 4일이 지난 뒤 나가오카성은 다시 점령되었습니다. 보급로를 끊어져 버린 동맹군이 남쪽에 진군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상처가 한층 더 심해진 츠구노스케는 아이즈로 망명하게 됩니다. 하지만 망명길의 도중에 자신의 최후를 직감한 그는 관을 준비시켜, 그 관을 만족스러운 듯 어루만진 뒤 최후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그 후도, 당분간 저항을 계속하고 있던 나가오카번이었지만 9월에 들어가 마침내 휴전을 맺었습니다. 10월 6일, 나가오카 지방 영주 마키노 타다노리(牧野忠訓)가 정식으로 항복, 사죄해 나가오카번의 보신 전쟁은 마지막을 고했습니다. 책임은 두 가로 츠구노스케와 야마모토 다테와키만 졌다고 합니다. 


 에도막부 말기, 막부측의 태도는 두 인물로 나타내 볼 수 있습니다.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와 같이 일본의 분열을 막기 위해서 항쟁을 포기하고 피해자를 최소화하려 한 이들이 있고, 나가오카번 가로 가오이 츠구노스케처럼 시대의 흐름을 막고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격렬히 저항한 이들이 있습니다. 역사는 승자인 신정부군에 의해 쓰여졌기에, 막부측은 한심해 보이는 측면이 없잖아 있지만,  모두들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 싸웠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