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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신시대/역사편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프랑스 병사 살인 사건 발발, 해결은 창녀가?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프랑스 병사 살인 사건 발발, 해결은 창녀가?



 게이오 2(1866년)에 일본인에 의한 프랑스 병사 살인 사건이 발발했습니다.


 게이오 2년(1866년)이라면 1월에 견원지간이었던 사츠마번와 조슈번이 동맹을 맺어(삿쵸동맹), 일본의 운명이 움직인 해입니다. 다음 해에는 대정봉환(大政奉還)과 왕정 복고의 대호령(王政復古の大号令)이 있었습니다. 이런 혼란의 사이, 요코하마에서 하나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당시 요코하마에 정박하고 있던 프랑스 함대의 승무원 수 명과 요코하마 시내의 노동자 수명이 대낮에 노상에서 싸움을 시작해 버립니다. 거기에 순회공연에 와있던 역사 (力士)시카게야마(鹿毛山)가 개입합니다. 물론 시카게야마도 처음은 말릴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이때는 아직 에도의 색이 사라지지 않은 시대입니다. 정부가 어떤 조약을 맺었다 한들 서민에게는 알 수 없는 것으로, 개국이 된 뒤 의기양양하게 거리를 활보 하는 외국인에게 저항하는 사람도 많은 시대입니다. 게다가, 아직 4년전의 사츠마와 영국의 전투의 흔적도 생생하게 남아있었습니다.


 역사는 그 체격과 힘을 사용해, 휙 휙 프랑스병을 던져 그 기세로 노동자들도 싸웠습니다. 그러던 중 한 명이 근처에 있던 프랑스병에게 달려들어, 그 목을 가지고 있던 낫으로 베어 버립니다. 프랑스병은 즉사하고 국제 문제가 발생해 버렸습니다. 확실히 4년전의 나마무기 사건이 다시 발생한 것입니다.(나마무기사건) 프랑스 공사 레옹 롯슈는 '역사와 살인자 본인의 참형 그리고 위문금 70만량'을 요구합니다. 막부는 곤혹해 하고, 세상은 큰소란에 빠졌습니다. 방금전도 쓴 것처럼, 아직도 외국인에게의 저항이 큰 시대입니다. 당연히 일본 백성은 이 요구를 받아들이는 일을 반대합니다. 



랴샤멘의 모습



 이때, 일어난 것이 미나토, 요코하마에서 활동하고 있던 라샤멘들이었습니다. 라샤멘은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창녀를 말했습니다. 그 무렵 요코하마에는 150명 정도의 라샤멘이 있었다고 합니다만, 그녀들은 평소부터 정기적으로 외국인의 거주지에 다니며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외국인들은 거류지 밖으로 나올 수 없었기에 그녀들은 소중한 성욕 해소의 배출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라샤멘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일제히 파업해 출장을 거부해 버립니다. 이에 거류지의 남성들은 크게 당황해 스스로 프랑스 공사 레옹 롯슈를 설득해 '살인자 본인만의 사형'으로 조건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요코하마의 라샤멘들은 사형이 처해지던 날에, 노래하며 전송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