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남북조 동란의 종결, 남북조의 합일
겐추9년 메이토쿠 3년(1392년) 10월 5일,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満)의 시대에, 남조 고가메야마덴노가 북조 고코마츠덴노에게 양위 하는 형태로, 간신히 남북조가 합일 했습니다.
처음에야 사이 좋게, 집권한 호조의 가마쿠라막부를 멸망시킨(가마쿠라막부 멸망) 고다이고덴노와 아시카가 다카우지였지만, 고다이고덴노의 겐무의 신정의 실패(겐무의 신정)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에 균열이 들어가, 타카우지는 교토에서 북조를, 고다이고덴노는 요시노에서 남조를(남조 시작) 열었습니다. 하나의 나라에 두 사람의 덴노가 있는 남북조의 동란은 57년간에 걸쳐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초에는 호각으로 싸우고 있었지만, 그 대부분은 압도적으로 북조 무로마치 막부의 우세여서, 정치의 중심은 교토에 있었습니다.
일본의 삼신기
그런데 왜, 57년간이나 북조는 남조를 넘어뜨릴 수 없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일본의 삼신기를 남조의 고가메야마덴노측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입니다. 일본의 삼신기란 일본의 신화 시대부터 덴노 가문에 전해지는 일본 황실의 세 가지 보물인 쿠사나기의 검(草雉劍)과 야타의 거울(八咫鏡) 그리고 야사카니의 곡옥(八坂璟玉)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정통인 증거입니다. 즉, 이것이 없는 북조는 힘은 있어도 정통성에서 남조에 밀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57년이 지나자 압도적인 힘을 가진 북조에, 남조는 강화 조건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겐추9년 메이토쿠 3년(1392년) 10월 5일에 남조의 고가메야마 덴노가 북조의 고코마츠덴노에게, 삼신기와 황위를 양보한다는 조건으로 합일을 이루었습니다. 덴노직은 남조와 북조에서 교대로 맡고, 상당한 권위를 인정해 주는 척 했으나 정작 삼신기를 받고 나서는 모르는 일이 되어, 남조는 큰 타격을 입고 맙니다. 그 이후에 남조를 지지하는 무사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나, 이미 댜새는 기운 이후였습니다. 이로서 60여년에 걸친 남북조의 동란이 종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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