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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가문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에치젠의 패자, 아사쿠라 가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에치젠의 패자, 아사쿠라 가문


미츠모리못코三つ盛木瓜


아사쿠라 가문의 성립


아사쿠라 가문은 카이카, 코토쿠덴노의 핏줄을 지니고 있습니다. 헤이안 말기에 아사쿠라 마을로 이주해, 스스로를 '아사쿠라'라 칭하게 된 것입니다. 아사쿠라 가문은 에치젠에 기반을 쌓아 세력을 서서히 확대해 나갑니다. 남북조의 동란에서는 아사쿠라 가문은 둘로 나뉘어져 싸우게 됩니다. 이 사이에 급격히 힘을 기른 아사쿠라 가문은 쇼군의 집사 가문을 역임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전공을 쌓아 에츠젠 7개 지역의 지도우(地頭)로 제수받게 됩니다. 


 얼마 뒤 에치젠 수호인 시바 가문의 권위가 약화되게 됩니다. 이에 아사쿠라 가문은 수호대 가문인 가이 가문과 힘을 합쳐 에치젠에서 실권을 잡으려 합니다. 막부의 개입에도 하루 하루 변화하는 전황은 양 가문에게 큰 부담을 주게 되었습니다. 이런 에치젠의 혼란은 이윽고 쵸로쿠 전투(長禄合戦)로 진화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아사쿠라 타카카게(孝景)가 등장하게 됩니다.


 타카카게는 쵸로쿠 전투에서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일소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는 아사쿠라 가문을 다진 뒤에, 시바 가문을 보좌하며 발전해 나갔습니다. 쵸로쿠 3년(1459년) 시바 요시토시(斯波義敏)가 은퇴하고, 막부시부카와 요시카도(渋川義廉)를 수호에 취임시켰습니다. 이것이 후에 시바 가문을 분열시켜, 오닌의 란에서 시바 가문이 분열하는 계기를 낳게 됩니다. 그 이후에도 타카카게는 활발히 세력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의 세력 확대는 굉장히 난폭해서, 백성들이 그를 저주했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 오닌의 란이 발발하고, 동군은 그에게 권유를 걸칩니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그였지만, 에치젠 수호에 준하는 권한을 주장해 그것이 받아 들여져 동군에서 활약하게 됩니다. 에치젠 지배를 공고히 해 나가던 그는 '아사쿠라 토시카게 17개조'를 제정하는 등 정치에서도 모자르지 않은 활약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아사쿠라 가문의 기틀을 닦아 놓은 아사쿠라 다카카게는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전국시대의 아사쿠라 가문의 행보


 그의 뒤를 이은 것은 적남 우지카게(氏景)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대업을 이어 반대 세력을 완전히 정리해 버립니다. 그후 시바 가문을 다시 불러들여 국주로 옹립하고, 에치젠 지배를 정치적으로도 공고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는 젊은 나이로 죽고, 어린 적남 마고지로 사다카게(孫次郎貞景)가 그 뒤를 이어 숙부가 그를 지지하게 됩니다. 쇼군 아시카가 가문이 오미의 롯카쿠 가문을 공겨할 때 아사쿠라 가문 역시 출병을 하는데, 여기서 시바 가문이 에치젠에서 자신의 권세를 회복시켜 달라고 주장합니다.(쇼군의 오미 공격) 사다카게는 이후에 주변에 출병하며 세력을 길러 나갑니다. 



아사쿠라 다카카게 초상화



 사다카게의 뒤를 이은 것은 타카카게(孝景)입니다. 그의 대에 아사쿠라 가문은 쇼군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강성한 센고쿠 다이묘였습니다. 그는 신흥 발호한 아자이 가문을 비호하는 동시에, 카가에서 일어난 잇코우 잇키와의 항쟁도 계속되게 됩니다. 아사쿠라 소테키는 쿠즈류가와 전투(쿠즈류가와 전투)등에서 잇키세력을 일소하며 명장으로서의 이름을 에치젠에서 떨치게 됩니다. 그 뒤로도 30여년간 유지된 타카카게의 치세는 그의 급사로 막을 내립니다.


 이에 그의 뒤를 이은 것이 요시카게(義景)입니다. 그는 교토의 문화를 받아들여 에치젠의 문화를 발전시킵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사치로 이어져 아사쿠라 가문의 쇠퇴로 이어집니다. 게다가 정실이 죽은 뒤 받아들인 고쇼쇼(고쇼쇼)의 미색에 반해, 국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秋)가 도망쳐 오자, 그는 이치죠다니(一乗谷)에서 비호했지만, 상경군을 일으키지는 않았고 결국 요시아키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의탁하게 됩니다. 



아사쿠라 가문의 몰락과 멸망



아사쿠라 요시카게 초상화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옹립해 상경한 노부나가는 이윽고 아사쿠라 가문을 공격하기에 이릅니다. 그러자 아사쿠라 가문과 깊은 은고가 있는 아자이 가문의 아자이 나가마사가 참전해, 오다 노부나가를 압박합니다. 한때는 노부나가를 궁지에 몰아 패퇴시키지만(가네가사키 퇴각), 아네가와 전투에서 크게 패하게 됩니다.(아네가와 전투) 이로 인해 아사쿠라 가문은 거진 멸망하고, 토네사다 전투(토네사다 전투)에서 마저 패배한 뒤, 아사쿠라 가문은 멸망하게 됩니다.(아사쿠라 가문 멸망) 아자이 나가마사와 아사쿠라 요시카게의 두개골은 노부나가의 술잔이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