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기타기리 가쓰모토, 중재에 실패하다
7월 21일,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건립한 교토 호코지 종명에 트집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호코지 종명사건) 이에 도요토미 측은 분노하지만, 아직 전투의 준비가 되지 않습니다. 많이 남아있는 히데요시의 유산으로 료닌들을 고용해 무기의 준비도 시작하고는 있었습니다만, 조금만 더 시간을 벌고 싶었지요. 이에 도쿠가와 가문의 파이프역이기도 한 이바라키성(茨木城) 성주 가타기리 가쓰모토(片桐且元)가 변명을 위해 슨푸로 향했습니다.
가타기리 가쓰모토의 초상화
가타기리 가쓰모토는 시즈가타케의 전투에서 그 이름을 달린 '시즈가타케 칠본창'(시즈가타케 전투)의 한 명입니다. 히데요시의 사후는 히데요리의 모리야꾸(傅役:스승역)를 맡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히데요리 산하였기에 서군에 섰습니다만 전투 후에는 서군은 어디까지나 이시다 미쓰나리가 인솔한 군이며, 서군이 곧 도요토미 가문은 아닌 것을 이에야스에 호소한 인물입니다. 스스로의 적남을 이에야스에게의 인질에게 내서 그 일을 증명해 세키가하라 이후에 순조롭게 오사카성을 개성시켰던 것도 그였습니다. 이에야스는 그의 이런 행동을 크게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슨푸에 도착한 그는 이에야스에 알현 하기는 커녕, 슨푸 들어가지 못하고 그 앞의 숙소 마을 마루코(丸子)에서 금족 되어 버립니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혼다 마사즈미와 곤치인 스우덴(金地院崇伝)의 질문의 폭풍우였습니다. 그것은, 호코지 종명과 오사카성에 잇달아 모이고 있는 료닌과 무기에 대한 힐문이었습니다. 게다가 변명의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게이쵸 19년(1614년) 8월 20일, 가쓰모토의 노력도 허무하게, 이에야스측은 최후 통고라고도 할 조건을 일방적으로 주었습니다.
1. 히데요리가 에도에 와서 이야에스를 알현할 것
2. 어머니 요도도노를 인질로 에도에 보낼 것
3. 히데요리가 오사카성을 나와 이에야스가 지시하는 곳으로 개역할 것
상기의 세 조건 가운데, 하나에 응하도록 고했습니다. 본래 이야에스의 주인인 도요토미 가문에게는 굴욕입니다. 어느 것도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 아닙니다. 이에야스측에서 보다면 순조롭게 말하는 일을 들어 주어서는 오히려 곤란합니다. 이번 기회에 도요토미 가문을 뿌리채 뽑아버려야 하니까요. 이에 오사카성의 도요토미 쪽의 무장들은 분노합니다. 심지어 가쓰모토가 도쿠가와와 내통했다 하여, 그를 죽이자는 의견까지 나옵니다. 결국 가쓰모토는 위협을 느껴 거성인 이바라키성으로 들어가 버려, 여기서 도요토미와 도쿠가와의 연결이 끊어져 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양자는 오사카의 진에 돌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키리히토바라는 작품으로 재탄생합니다
가쓰모토는 오사카의 진 때 도쿠가와 측에 군사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출병도 이에야스와 교섭을 위해서가 아닌가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오사카의 진에서도 가쓰모토는 히데요리의 목숨을 구할 것을 필사적으로 이에야스에 계속 호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그 조건을 받아들이려 했으나, 주위의 가신들의 폭주로 이렇게 된 것입니다.'라는 일을 절절히 호소하는 편지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도 허무하게 오사카 여름의 진에서, 오사카성의 함락과 함께 가쓰모토는 목숨을 잃습니다.
가쓰모토는 함락된 20일 후의 5월 28일에, 아무것도 말하지도, 남기지도 않고, 조용하게 할복 합니다. 히데요시에게서 맡겨진 히데요리를 구할 수 없었던 자신을 자책했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교섭 결렬때에 받은 오명을 풀기 위해서 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본의 아니게 이에야스 측에 붙어 버린 일에 대한 변명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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