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세키가하라 전투(7)
신출귀몰한 시나다, 우에다성 공방전
게이쵸5년(1600년) 9월 2일,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초전의 하나. 사나다 마사유키, 유키무라 부자가 항복을 권고하며 우에다성(上田城)을 포위한 도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에게서 끝까지 성을 지킨 우에다성 공방전이 있었습니다.
도쿠가와 히데타다 초상화
7월에 들어가 본격적인 세키가하라가 시작 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중진인 마에다 토시이에도 죽어 도요토미 가문 내의 균열(히데요시 유언)이 점차 심해집니다. 그런 가운데, 거두의 죽음으로 따라 오대로중에서도 필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종종의 상경 요청에 응하지 않는 우에스기 카게카츠에 모반의 혐의를 덮어 씌워 아이즈 정벌을 결행하게 됩니다.(카게카츠의 상경 거부) 이렇게 되어 부재중이 된 후시미성에 이시다 미쓰나리가 공격을 시작합니다.(후시미성 공방전) 이에 오야마에서 평정을 해, 회군을 결의한 이야에스는 말머리를 돌립니다.(오야마 평정) 하지만 여기서 서군에 붙은 극히 일부의 무장이 다름아닌 사나다 마사유키, 유키무라 부자였습니다.(이누부시의 이별)
사나다는 소국으로 이 전국의 세상을 지혜와 힘으로 살아 남아 온 일족입니다. 도요토미에도 토쿠가와에도, 그다지 도움을 받지 않고, 은혜도 느끼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국을 둘로 나눈 천하를 판가름 하는 전투입니다. 중립으로 있을 수는 없는 이상, 그들은 동서 어느 쪽이 이겨도 살아 남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이에야스의 중신 혼다 다다카쓰의 딸이고, 이에야스의 양녀인 코마츠도노(코마츠도노)와 결혼한 장남 노부유키는 동군에, 서군의 영웅 오오타니 요시쓰구의 딸을 아내로 하고 있던 차남 유키무라와 아버지 마사유키는 서군에 붙기로 합니다. 마사유키와 유키무라는 그 날에 군사를 되돌리고, 노부유키는 그 일련의 경위를 이에야스에 고합니다. 아버지와 동생과 언쟁을 하고, 끝에는 자신의 편이 된 노부유키에게 이야에스는 기뻐하며 '신슈를 주겠다'고 합니다. 도쿠가와가 이기면 현재의 영지는 장남의 것이 되고, 도요토미가 이기면 현상 유지이기에 전황이 어떻게 되어도 사나다 가문이 생존할 것은 확실입니다.
히데타다군의 이동로
이윽고 후쿠시마 마사노리등의 토카이도를 따라 올라가 기후성을 공격합니다.(기후성 공방전) 뒤이어, 이에야스의 아들 히데타다가 나카센도우를 타고 서쪽을 향합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서는 것이 마사유키가 있는시나노 우에다성이었습니다. 게이쵸5년(1600년) 9월 2일, 히데타다는 시나노 코모로성(小諸城)에 들어가 우에다성에 항복을 권고합니다. 당연하게도 마사유키는 그 권고를 거부해 곧 바로 소규모 전투가 개시됩니다. 여기서, 선봉이 된 것은 장남 노부유키가 인솔하는 군사 였습니다. 그는 동생 유키무라가 지키는 이세사키성채(伊勢崎砦)를 공격합니다. 그러자 유키무라는 재빨리 성채를 버리고 우에다성으로 후퇴합니다. 하지만 우에다성을 공격하기 시작한 히데타다 본대 쪽은 3만 5천이라고 하는 대군에도 불구하고, 불과 2천의 마사유키군의 게릴라전법으로 계속 골치를 썩입니다. 게다가 군의에서 의견이 둘로 갈려 혼란이 옵니다.
'우에다성의 공략은 보류해, 일각이라도 빨리 이에야스의 본대와 합류해야 합니다.'라는 의견과 '우에다성공략은 필수이기 때문에 공격을 계속해야 합니다.'라는 의견이 대립합니다. 이 혼란에 4일이나 소비했고 우에다성의 공략도 실패한 채로, 결국 히데타다는 우에다성 주변에 모리 타다마사(森忠政: 란마루의 남동생) 등을 남겨, 본대에의 합류를 서두르게 됩니다. 그러나, 히데타다가 세키가하라에 도착한 것은 9월 19일입니다. 전투는, 이미 끝나 버렸습니다. 물론, 아버지 이에야스에게 지독하게 꾸중을 듣게 되지요. 후에 우에다성에 있었던 사나다 마사유키, 유키무라를 비롯한 이들은 죽이려한 히데타다에게, 노부유키는 '저부터 죽여주십시오'라고 해, 사나다 일족은 코노야마로 추방되고 목숨은 보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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