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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제 5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시오자키 대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제 5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시오자키 대진



 에이로쿠7년(1564년) 가이의 다케다 신겐과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의 사이에 제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시오자키 대진(塩崎の対陣)이 발발했습니다. 



가와나카지마 전투 개요도



 제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하치만바라 전투) 이전에 관동관령이 된 겐신은 호조가와도 적대해야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에이로쿠7년(1564년) 신겐은 무츠 남부의 모리우지(芦名盛)에게 겐신의 배후를 찌르기를 요청하고 그 사이에 시나노와 에치고의 국경 부근에 있는 우에스기측의 성채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겐신은 관동의 호조와의 전투를 중단하고 에치고로 돌아갑니다. 번번이 자신의 천도를 막는 신겐에 분노한 겐신은 '다케다 하루노부 악행지사' 라는 원문(願文)을 각지의 절에 봉납하고, 신겐 토벌의 의지를 천명했습니다. 그해 7월 태세를 정비한 겐신은 시나노의 젠코우지 다이라(善光寺平)에 진격하고 이에 신겐도 시나노의 시오자키에 진을 쳤습니다. 



젠코우지 다이라(善光寺)



 에이로쿠7년(1564년) 겐신은 한층 더 나아가 가와나카지마로 향해 다케다측의 카이츠성(海津城)의 근처로 향합니다. 물론 신겐은 이에 응해 가와나카지마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상황이 3년 전과 비슷해 집니다. 그러나 신겐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겐신 측도 적극적으로 공격 하지는 않고 양자는 4 km정도의 거리를 두고, 60일 동안 대립을 계속합니다. 사실 제5차 가와나카지마 전투가 시오자키 대진으로 불리는 것은 대립만하고 이렇다 할만한 전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겐신이 먼저 에치고에 돌아가고 신겐도 군사를 물려, 이 전투는 끝났습니다. 이 5번째 전투로 12년에 이른 가와나카지마 전투가 종결됩니다.


 물론 이후로도 겐신은 관동의 호조와 대치할 때 호쿠리쿠 잇코우 잇키의 배후에는 신겐의 그림자가 보였다고는 하지만 직접 대결은 이것이 끝입니다. 이 일련의 전투가 무승부에 끝났던 것은 겐신과 신겐의 군사력이 거의 동등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투가 종결된 것은 모두 큰 라이벌이 출현했기 때문입니다. 오케하자마 전투로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무너뜨린 오다 노부나가, 겐신과 신겐이 일진일퇴를 반복하고 있는 사이에, 새 시대가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후, 겐신은 호쿠리쿠에서 노부나가 부하의 시바타 가쓰이에와, 신겐은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마주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