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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우사미 사다미츠가 나가오 마사카게를 껴안고 노지리에 뛰어들다

일본 전국시대;

우사미 사다미츠가 나가오 마사카게를 

껴안고 노지리에 뛰어들다



 에이로쿠7년(1564년) 우에스기 사천왕의 한 명으로서 우에스기 겐신을 시중든 우사미 사다미츠(宇佐美定満)가 나가오 마사카게(長尾政景)와 함께 노지리못(野尻池)에서 익사했습니다. 



우사미 사다미츠



 원래 이즈국 우사미에서 나온 우사미 일족, 우사미 스루가노카미 사다미츠(宇佐美駿河守定満)는 에치고의 수호인 우에스기가의 부하로서 비와지마성(琵琶島城)의 성주를 맡고 있던 우사미 후사다타(宇佐美房忠)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사다미츠의 30세 전후 수호의 우에스기가에 대해 수호대인 나가오 다메카게가 수호의 우에스기 후사요시의 양자인 우에스기 사다자네를 수중에 넣어 반란을 일으키고, 사다자네를 주로 삼습니다. 후에 사다자네는 다시 힘을 되찾기 위해 다메카게와 싸워 그를 은거하게 합니다. 텐분 11년(1543년) 다메카게가 죽고 그 아들인 나가오 하루카게(長尾晴景)가 뒤를 잇지만, 후에 겐신이 되는 가게토라와의 후계자 분쟁 뒤, 가게토라가 나가오가를 잇게 됩니다.  이 사이에 우에스기 겐신을 모시게 된 사다미츠는 우에스기25장의 한 사람으로 우에스기 사천왕, 에치고17장에 이름을 올리는 명참모가 됩니다. 



나가오 마사카게



 겐신을 모신 뒤에,  에치고 평정의 최대의 장해 나가오 마사카게을 굴복 시키는 일을 돕습니다. 그의 책으로 겐신의 누이와 마사카게가 결혼한뒤에 양자의 관계는 양호해 집니다. 게다가 에이로쿠4년(1561년) 3월의 오다와라성 공방전에서는 이른 아침 철퇴를 진언 하거나 같은 해 9월의 제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에서도 다케다측의 별동대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별동대가 안쇼우산에 도착하기 전에 하치만바라에 전군을 이동시키게 진언 해 야마모토 간스케의 '딱다구리 전법'을 찢고 신겐의 남동생 다케다 노부시게를 죽였다고 합니다. 이런 그의 활약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점들이 있지만, 아무튼 대단한 참모였다는 것은 확실한 일이지요.



노지리(野尻池)



 텐분 18년(1549년) 6월 20일부로 혼죠 사네요리(本庄実乃)가 히라코 앞으로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이 편지에는 사다미츠의 거점 성인 비와지마성의 방화 사건의 배후에 마사카게의 관여가 의심된다는 것이지요.아무튼 시간이 흘러 에이로쿠 7년(1564년) 사다미츠는 마사카게를 노지리못의 주연으로 이끕니다. 둘이서 작은 배를 타 수상에서 잔을 주고 받는 중 돌연, 사다마츠가 마사카게를 감싸안고 연못으로 뛰어 내립니다. 이를 단순히 취기로 인한 사고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사카게의 죽음 뒤에 그의 부하들이 겐신의 손 안에 들어가, 겐신의 에치고 지배가 보다 강화된 것은 확실합니다. 후에 하세도우 전투에서 후미를 맡게된 그의 아들은 겐신의 사후에 당주가 된 양자 우에스기 가게카쯔(上杉景勝)를  알현하는 것이 허가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게가쯔는 마사카게의 아들이기 때문이지요. 아마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의 원인을 사다미츠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만약 사실이라면 자신의 목숨까지 이용해 주군의 적을 모살한, 명참모 였던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