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 암살당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 암살당하다 


 에이로쿠8년(1565년) 무로마치 막부 제 13 대장군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마츠나가 히사시데를 비롯한 미요시의 세력에 의해 암살되었습니다.



검호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



 오닌의 난(오닌의 란) 이후 오다 노부나가가 허울만 남은 막부를 파괴하기까지 무로마치 막부는 껍데기만 남아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수도에서 쫓겨나기까지한 쇼군의 위상을 찾으려는 아시카가 요시하루의 유지를 이어 당시 최고의 권세를 가진 미요시 나가요시를 상대에 분투한 제13 대장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여러번의 교전 끝에 나가요시와 화해해 에이로쿠 원년(1558년) 겨우 교토로 돌아와 쇼군 직무를 해 나가게 됩니다.


 유능하고 무용이 뛰어난 쇼군이 직무를 잘 해나가는 것을 모두가 반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쇼군의 권위는 작은 것이 아니어서 쉽게 반목하진 못했지만, 나가요시의 죽음으로 일변하게 됩니다. 전국 다이묘들과 교분을 쌓고 있던 요시테루는 이때를 기회라고 판단합니다. 미요시가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교토를 제압하고 막부의 권위를 되찾기로 했지요. 이때 미요시가의 실권을 잡은 것은 마츠나가 히사시데와 미요시 삼인중, 걸물인 그들이 이런 쇼군의 존재를 허락할 리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시카가 요시히로(足利義栄)를 쇼군에 옹립 하려고 하고, 요시테루의 암살 계획을 세웁니다. 


 당시에는 5월 중순에 시미즈지(清水寺)를 참배하는 풍습이 유행하고 있어서 히사히데는 이를 이용해 '시미즈지에 참배'할 사람들을 모읍니다. 엔로쿠 8년 5월 중순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서 '쇼군에 진언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소장을 건네고 그것을 요시테루가 읽고 있는 사이에 미요시의 군사가 니죠고쇼(二条御所)를 둘러쌉니다. 


니죠고쇼(二条御所)


 요시테루가 사는 니죠고쇼는 해자를 파고, 높은 망루에 둘러싸인 철벽의 성이었습니다만 이 날은 문을 수리한다며 뗴어놓아 어린아이도 들어갈 수 있는 상태에다가 고용인들에게 휴가를 주어, 방비도 허술했습니다. 포위를 완료한 군사는, 일제히 함성 소리를 내고 총을 쏘며 난입했습니다. 쇼군의 부하 수십명이 성을 방어하려고 하는 중, 요시테루의 곁에 있던 호소카와 타카요시(細川隆是)는 부인의 소우데(小袖)를 빌려 쇼군의 앞에서 최후의 춤을 춘 뒤 수십명의 병사와 함께 히사히데, 미요시군의 한가운데에 삼켜졌습니다.


 요시테루의 곁에 남은 것은 몇 안 되는 신하뿐, 그들과 최후의 술을 주고 받는 아들에게 어머니 케이쥬인(慶寿院)은 아들을 포옹 하며 도망치라고 합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요시테루는 '비록 상대가 누구더라로, 나라를 지배하는 기량도 없는 녀석이라고 해도 나는 도망치고 숨어서 죽는 것은 싫습니다. 모두의 앞에서 쇼군답게 같게 전사합니다.'라고 단언합니다. 그리고나서 그는 근처에 있던 궁녀의 기모노의 소매에 사세구를 씁니다. 


五月雨は 露か涙か ほととぎすわが名をあげよ 雲の上まで 

5월의 비는 이슬인가 눈물인가, 두견새여 내 이름을 구름 위까지 전해다오


 그리고 저택에 있던 가보인 명검을 모두 꺼내고 칼집으로부터 뽑아내 하나 하나 다다미에 찔러 넣습니다. 이러는 사이에 코밑까지 붐벼든 적의 군사들을 검성 쯔카하라 보쿠덴(塚原卜伝) 비전의 검술이 날카롭고 확실하게 덤벼 드는 적병을 넘어뜨립니다. 칼이 잘 들지 않게되면, 다다미에 찔러 놓았던 칼을 꺼내 분전하자 그 기백에 압도된 적병은 한 걸음도 접근하지 않게 됩니다. 그때 히사히데의 가신 이케다 단고노카미(池田丹後守)의 아들이, 은밀하게 문의 뒤로 숨어 요시테루의 사각에 들어가 때를 가늠해 창으로 다리를 후려쳤습니다. 이 공격에 휘청이는 요시테루를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창으로 찌릅니다. 



그의 전설적인 검기



아시카가 요시테루 향년 30세, 쇼군의 권위를 찾으려던 야망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 때 미요시군에 의해 나라의 코후쿠지에 감금되있던 요시테루의 남동생은 2개월 후에, 호소카와 후지타카등이 구조해 냅니다. 그 남동생의 이름은 아시카가 요시아키로 3년 뒤, 노부나가와 함께 이곳으로 돌아오기 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