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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신겐과 겐신의 격돌! 제 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본 전국시대 역사편;

신겐과 겐신의 격돌! 제 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엔로쿠4년(1561년)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의 대격돌, 전국시대 최고 전투 중 하나인 제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인 하치만바라의 전투(八幡原の戦い)가 있었습니다.



가와나카지마 전투 전개도





 북시나노의 사이(犀)강과 치쿠마(千曲)강의 합류하는 장소인 '가와나카지마' 신겐과 겐신은 이 가와나카지마에서 총 5 회의 전투를 했습니다. 그 중에서 본진으로 쳐 들어온 신겐에, 말을 탄 겐신이 손에 가진 군검으로 베고, 이를 부채로 막는 신겐의 모습이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전투가 이 4번째 전투입니다. 그냥 가와나카지마 전투라고 하면 이 전투를 말하는 것입니다. 겐신의 부대는 1만 3천의 군세를 이끌고 사이죠산(妻女山)에 진을 치고, 신겐은 2만의 군세를 카이츠성(海津城)근처에 진을 치고 서로 동향을 살핍니다.


야마모토 칸스케


 운명의 날의 전날 신겐은 부하들을 모아놓고 군의를 엽니다. 고요군감에서는 이 군의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센긴의 부하 야마모토 간스케는(이 무장의 진위여부는 불분명합니다만) 겐신과의 일전을 고민하는 신겐에게 다음과 같이 진언합니다.


'딱따구리가 벌레를 잡을 때는 구멍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지 않습니다. 딱따구리는 먼저 나무를 찧어, 그 소리에 놀란 벌레가 머리를 내밀면 손쉽게 잡아 먹습니다.'



 이 말을 들은 신겐은 부대를 두 개로 나누어, 한 부대가 사이죠산을 우회해 다음날 아침 겐신을 치고, 이에 놀란 겐신이 군세를 이끌고 가와나카지마로 이동하면, 그때 그곳에서 대기하던 부대가 겐신을 기습하겠다는 전략을 세웁니다. 하지만 군신 겐신, 전투의 준비를 하던 신겐군의 취사 연기를 보고 신겐군이 곧 습격할 것이라 간파합니다. 우에스기군은 다케다군에 눈치 채이지 않게, 조용히 사이죠산서 이동해 치쿠마강을 건너  다케다군의 본진의 코앞까지 옵니다.  일본의 시인 라이산요우(頼山陽)는 이 일을 시로 읊기도 했다고 합니다.



가와나카지마 전투 전개도



鞭声粛々、夜 河を渡る

채찍소리를 삼가고 밤 강을 건넜으나


 서서히 날이 밝아오자 신겐의 눈앞에는 믿기어려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본진의 코앞에 완전히 싸움의 준비를 갖춘 우에스기의 대군이 있었습니다.


暁に見る千兵の大牙を擁するを

대장기의 수천(千)병이 새벽녘 발각되니


 상황은 역전되어 우에스기군이 기습을 하는 형태로 전투가 시작됩니다. 이를 겐신의 '차륜전법(車懸りの戦法)'이라 불립니다. 먼저 싸운 부대가 뒤로 후퇴하면, 다른 부대가 연속해 공격해 마치 바퀴에 걸려 바퀴살이 계속해서 치는 것과 같은 전법이지요. 그러나 기습을 당해도 쉽게 패배하지 않는 다케다군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 전국시대 굴지의 일대일 대결이 성사됩니다. 


遺恨十年 一剣を磨き

번뜩인 검광 밑에서 큰 뱀을 놓치나니





 전장 중에 서로를 확인한 겐신과 신겐, 군신이라 이름 높았던 겐신은 질풍과도 같이 신겐에게 다가가 자신의 검을 들어 내리 칩니다. 절체 절명의 위기에 빠진 신겐, 그는 자신이 지휘용으로 사용하던 철부채(철선)을 들어 그 검을 막습니다. 신겐의 옆에 있던 병사가 겐신의 말에 창을 꽂아, 말이 겐신을 실은 채로 달려가 버려 결착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流星光底 長蛇を逸す

아깝게 큰 인물을 놓치니


 이윽고 산의 후방에 잠복 하고 있던 신겐의 기습 부대가 본진에 합류해 우에스기군이 단번에 불리하게 되자, 겐신은 군사를 퇴각시켰습니다. 결국 양쪽 모두 1만 전후의 사상자를 내, 승부의 결착이 없는 채로 4번째의 싸움은 무승부로 끝나 버렸습니다. 하지만, 신겐은 이 싸움으로 동생 노부시게(信繁) 명참모 야마모토 간스케를 잃었습니다. 이들의 다음 격돌은, 엔로쿠7년이었지만, 이 전투는 칼날을 섞는 일 없이대립만으로 끝났습니다. 이때까지는 장수끼리 이렇게 일기토를 벌이는 일도 있었지만, 전국에 총이 등장한 이후로, 일기토는 거의 없어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