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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이마가와 요시모토 등장 하나구라의 란

일본 전국시대;

이마가와 요시모토 등장 하나구라의 란 



 텐몬(文)5년(1536년) 이마가와가의 집안의 다툼인 하나구라의 란(花倉の乱)으로, 오카베 치카쯔나(岡部親綱)가 스루가 카타노카미성(方ノ上城)을 공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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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텐몬 5년 이마가와가의 당주 이마가와 우지테루(今川氏親)가 급사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우지치카)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앞서 나간 「이마가와 가명 목록(今川仮名目録)」이라고 하는 법률을 발포한 일로도 알려진 명군으로, 제대로 영토를 지배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뒤를 이은 정실의 아들 우지테루가 갑자기 죽고, 같은 날에 남동생의 히고고로우도 급사한 비극이 발생합니다. 우지테루에는 아이가 없었던 것으로부터 이 후계를 차지하기 위해, 이마가와가의 집안의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지테루에는 같은 날에 죽은 히고고로우 이외에도 아직 두 명의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어릴 적에 출가해, 승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두 명은 각각 정실의 아들 히이카쿠 쇼우호우(梅岳承芳)와 측실의 아들 겐코우 운단(玄広恵探)입니다.


 우지테루의 죽음 직후, 겐코우 운단은 외가의 후쿠시마가를 등에 업고 이마가와 이에노우시로 계승자로서 경합에 나섭니다. 당연히 정실 쥬케이니(寿桂尼)가 입다물고 있을 리 없습니다. 쥬케이니는 '여자 영주'라는 이명이 붙여질 정도로 우지테루가 살아 있었을 때부터 정치에 참여하는 수완가인 어머니였습니다. 그녀는 즉시 자신의 아들 히이카쿠 쇼우호우를 후계자로 추천합니다. 당시 히이카쿠 쇼우호우는 스루가 세코(瀬古)의 센도쿠지(善得寺)에서 수행을 하던 몸이었지만, 같은 절의 승려로 겐코우 운단의 교육계이기도 한 타이켄 스우후(太原崇孚)가 그 추천을 받고, 곧 바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하나구라의 란



 수면 아래에서, 이마가와의 오래된 중신들을 안아 넣고, 그들을 히이카쿠 쇼우호우의 지지자로 끌어들입니다. 서서히 고립해 나가는 겐코우 운단은 불안을 느껴 하나구라관에 칩거 해 대항하려 합니다. 텐몬5년(1536년) 6월 히이카쿠 쇼우호우에 속하는 오카베 치카쯔나가 겐코우 운단측에 붙는 분 노성, 카타노카미성을 공격합니다. 금세 성을 정복한 그는 패주 하는 군사를 쫓아 하나구라관에 가까워집니다. 겐코우 운단은 결국 하나구라관을 버리고 이번은 세토다니로 피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외가의 후쿠시마가 이외의 무장이 죄다 히이카쿠 쇼우호우의 밑에 집결해 있는 일을 깨달은 그는 승기가 없음을 깨달고 할복합니다.


 후계분쟁에서 승리한 히이카쿠 쇼우호우는 이 때부터, 이마가와 요시모토로 불리게 됩니다. 그는 영지의 안정을 위해 원래 적이였던 가이의 다케다 노부토라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전부터 동맹을 맺고 있던 호조가가 입다물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요시모토는 오카베 치카쯔나의 보좌 아래 이 호조씨가의 공격을 격퇴하면서, 오다의 영지 미카와도 공략해 스루가, 토노에, 소우고의 삼국을 억제하는 '동해도제일궁(海道一の弓)'으로 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