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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쵸쇼카베 모토치카, 히데요시에게 항복하다

일본 전국시대;

쵸쇼카베 모토치카, 히데요시에게 항복하다



 덴쇼 13년(1585년) 7월 25일, 하시바 히데요시의 시코쿠 정벌로 아와 이치노미야성(一宮城)의 공방중에 가신의 설득을 듣고 쵸쇼카베 모토치카가 항복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사후 장손인 산포시를 후계로 세워 그 후견인이 되고 실권을 잡는 하시바 히데요시는 이에 반대하는 시바타 가쓰이에(시즈가타케 전투), 도쿠가와 이야에스(고마키나가쿠테 전투) 등과 항쟁을 하나 결국 승리합니다. 그런데 고마키 나가쿠테 전투에서 도쿠가와는 시고쿠의 쵸쇼카베 모토치카와 동맹을 맺었었습니다. 모토치카 역시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처럼 시고쿠를 스스로 정복하려 할 것이라 생각해 동조하지요. 하지만 노부오의 급작스런 강화로 인해 문제가 생기지요. 


 전투가 끝난 뒤, 히데요시는 이야에스와 동조했던 세력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덴쇼 13년의 4월에 기슈를 평정(기슈 정벌)한 히데요시는 다음으로 시코쿠를 막 통일한(이요 평정) 쵸소카베의 토벌을 개시합니다. 6월 히데요시의 명령을 받은 남동생 하시바 히데나가(羽柴秀長)를 총대장으로한 3만의 군세가 시코쿠에 상륙하고, 조카인 하시바 히데츠구(羽柴秀次)가 인솔하는 3만이 아와지를 거쳐 아와로 진군합니다. 게다가 우키다 히데이에 (宇喜多秀家), 쿠로다 요시타카(黒田孝高), 하치스카 마사카쓰(蜂須賀正勝) 부자가 이끄는 2만 3천은 야시마에서 사누키 방면에 진군합니다. 그리고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깃카와 모토나가(吉川元長)의 모리군 3만은, 이요로 진군해 차례차례로 성을 함락 시키며 진군해 갑니다.


히데요시의 정벌군, 어마어마 합니다



 7월상순에는 남는 중요 거점을 이와쿠라성(岩倉城)과 이치노미야성(一宮城)의 두 성으로 좁힌 히데츠구는 이 2성의 공격에 전군을 이용합니다. 이 때, 하쿠치성(白地城)에 8천의 군사와 함께 있던 모토치카는 구원군을 파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군에 둘러싸인 이와쿠라성은 점령 당해, 남는 것은 이치노미야성만이었습니다. 이치노미야성은 남쪽에서 아쿠이카와(鮎喰川)가 흐르는 천연의 요충지고, 북쪽은 다니 타다스미(谷忠澄), 남쪽은 에무라 치카토시(江村親俊)라고 하는 명장이 5천의 군사와 함께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격하는 히데츠구군은 5만입니다. 처음에는 땅굴을 파고 성을 공격하려고 합니다만, 좀처럼 잘 되지 않아 수로를 끊은 장기전으로 바꾸어 히데츠구도 아쿠이카와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 기슭에 있는 진노산에 본진을 두어 장기전을 하려 합니다.



다니 타다스미 일러스트



 게다가 그 사이에 타다스미에게 항복을 권유합니다. 맹장 타다스미는 병농일치인 자신의 군대와 비교했을 때 하시바군의 병농분리가 진행된 군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윽고 모토치카에게 항복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를 모토치카는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직접 하쿠치성으로 향해 모토치카에게 직접 말합니다. 


"쵸쇼카베가가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는 것은 분명 분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미 일본 전국을 대부분 지배하는 군과 싸워봐야 승산은 없습니다. 한층 더, 우리가 패배한다면 '쵸쇼카베가 시고쿠를 통일한 것은 쵸쇼카베가 대단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머지 세력이 나약했을 뿐'이라고 비웃음을 살 것입니다."



쵸쇼카베 모토치카 통일한지 얼마나 됐다고 ㅠㅠ



 이 말을 들은 여러 중신들은 모토치카에게 항복을 권유합니다. 결국 인내심이 끊어진 모토치카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대장인 나 혼자서라도 싸우다가 죽겠다. 너희들이 이런 겁장인 줄 모르고 있었구나!"


 처음에야 주군에 '겁장이'라고까지 말해져 분노해 싸우다 함께 전사하자고 주장한 가신들이었지만, 냉정을 되찾고, 주군을 설득하기로 합니다. 결국에 가신들의 주도로 항복의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결국 모토치카도 후에 이에 동의해 덴쇼 13년(1585년) 7월 25일, 타다스미는 히데츠구에게 항복의 조건을 쓴 조문을 건네줍니다. '아와, 사누키, 이요는 몰수하지만 토사 일국의 지배는 허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면에서 싸운 적인데도 비교적 관대한 조치, 아마 얼마전 관백이 되었기에 자비를 베푼것이겠지요. 하지만 모토치카 정말로 히데요시에게 항복했을까요? 얼마 뒤 그의 충성심을 시험할 기회가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