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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쇼카베 모토치카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시고쿠의 패자, 쵸쇼카베 가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시고쿠의 패자, 쵸쇼카베 가문 전국시대의 초첨은 언제까지나 교토를 비롯한 기나이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큐슈나 시고쿠의 전국시대는 주목을 덜 받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국시대 시고쿠에서도 큰 혼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고쿠의 패자가 되었던 것이 다름아닌 쵸쇼카베 가문입니다. 쵸쇼카베 가문의 성립 쵸소카베 가문은 하타(泰) 가문의 후예를 자칭하고 있었습니다. 하타 가문은 고대의 유력 가문으로, 진시황제의 자손인 유즈키노키미(弓月君)가 일본에 도착해 세운 가문입니다. 하타 가문은 야마시로 국의 카도노군 일대를 영유했고, 우즈마사(太秦)를 본거지로 세력을 쌓아 나갔습니다. 후에 쇼토쿠 태자를 모시며, 세력을 한 층 더 강하게 만들어 나갑니다. 가마쿠라 시대 초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나가사키 26명 성인의 순교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나가사키 26명 성인의 순교 1597년 2월 5일, 나가사키 니시자카(西坂) 언덕에서 26명의 크리스트교도가 처형된 일에 의해, 오늘 2월 5일은“나가사키 26 성인 순교의 날”로 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일본의 달력으로 이 날은 게이쵸 원년 12월 19일 입니다. 하지만 그레고리력에 의거해 로마 교황청이 제정한 나가사키 순교일은 1597년 2월 5일이기에, 이 날짜로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게이쵸 원년의 6월에 혜성이 나타나고, 7월에 아사마산에서 대분화가 일어나 그 재가 교토와 히데요시가 있는 후시미까지 이릅니다. 게다가 윤 7월(당시 일본의 역법으로는 7월이 두번이었습니다)에는 킨키지방에 대지진이 일어나고 여진이 2주간이나 지속됩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8월에는 큰 태풍이 상륙..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쵸쇼카베 모토치카의 아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쵸쇼카베 모토치카의 아키성 공방전 에이로쿠 12년(1569년) 토사의 통일을 노리는 쵸쇼카베 모토치카가 토사 동부를 지배하던 아키 쿠니토라(安芸国虎)를 공격해 아키성이 점령당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기어이 이나바야마성을 손에 넣었을 때(이나바야마 공방전), 서쪽에서는 모리와 오오토모가 영지를 빼앗고 있었습니다.(모지성 공방전) 이 군웅할거의 엔로쿠(1558~69년)의 후반무렵 시코쿠 토사에서는 맹장 쵸쇼카베 모토치카(長宗我部元親)가 파죽지세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습니다. 토사의 중앙부를 거의 수중에 넣은 모토치카는 다음으로 동부의 아키를 목적으로 정합니다. 에이로쿠 12년(1569년) 무렵 모토치카는 토사 아키성(安芸城)을 본거지로 하는 아키 쿠니토라에게 은근히 항복을 재촉 하는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쵸쇼카베 모토치카, 모토야마가를 멸망시키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쵸쇼카베 모토치카, 모토야마가를 멸망시키다 에이로쿠 7년(1564년) 쵸쇼카베 모토치카(長宗我部元親)가 모토야마성(本山城)의 모토야마 치카시게(本山親茂)를 공격해서 우리우노(瓜生野)로 쫓아 냈습니다. 에이로쿠 3년(1560년), 토사(土佐)를 둘러싼 나가하마오모테(長浜表) 전투로 첫 출진을 장식한 쵸쇼카베 모토치카. 그는 잘생겼지만 살이 희고 언행이 부드러운데다 사람을 만나도 거의 말하지 않고, 하루종일 방에서 시간을 보내 가신에게서는 '젊은 공주님(姫若子)'이라는 별명이 붙고, 아버지 마저 후계를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첫 출진으로 훌륭한 활약을 합니다. '공주님'이라는 별명은 이 이후로 '토사의 걸물'로 바뀌고, 아버지도 모토치카를 인정하고, 모토야마를 무찌르라는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쵸쇼카베 모토치카, 토사를 통일하다 시만토가와 전투 일본 전국시대; 쵸쇼카베 모토치카, 토사를 통일하다 시만토가와 전투 덴쇼 3년(1575년), '토사의 걸물'이라는 이명을 가지는 쵸쇼카베 모토치카가, 칸노우라성을 공략해, 토사 통일을 완수했습니다. 토사 서부에 있는 하타군은 가마쿠라 시대부터 문신 이치죠가 소유의 장원이었습니다. 오닌 원년(1467년)에 발발한 오닌의 난에 교토가 불태워져 시가전에 진저리가 난 이치죠 노리후사(一条教房)는 교토를 탈출해, 이곳으로 이주했습니다. 이윽고 이치죠가는 하타군의 나카무라성(中村城)을 거성으로 삼는 전국 다이묘가 됩니다. 원래 덕망이 자자했던 이치죠가는 이곳에서도「문신 영주」라고 불리며 계속 존경 받고 있었습니다. 5대째의 이치죠 카네사다(一条兼定)의 무렵, 이 이치죠가도 전국의 물결에 삼켜지게 됩니다. 이 즈음에..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기타편; 전국시대의 미남, 미녀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1) 미남의 기준 일본 전국시대 기타편;전국시대의 미남, 미녀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1) 미남의 기준 전국시대에는 다양한 무장들이 난립하는 전란의 시대였지만, 그래도 현재와 비슷하게 미남, 미녀가 선호되었었습니다. 먼저 미남의 기준을 살펴보겠습니다. 미남의 기준은 키가 크고, 살쪘으며, 머리카락이 풍성할 것 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조건을 가진 미남들은 누가 있을까요? 유명 무장들 중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미녀를 보고 싶으면 옆의 링크를 눌러 주세요.(전국시대의 미녀) 오다 노부나가 청년의 무렵에 여자로 잘못 보았을 정도로 미남이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상당히 잔혹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는 노부나가가 꽃미남이었다니 충격적입니다. 특별히 젊었을 때 초상화를 준비해 봤습니다. 여자 같나요? 오다 히데타카(織田秀孝) 노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히데요시의 큐슈정벌(2) 시마즈의 선방, 토츠기가와 전투 일본 전국시대;히데요시의 큐슈정벌(2)시마즈의 선방, 토츠기가와 전투 덴쇼 14년(1586년) 11월 25일, 드디어 큐슈를 제압하려고 움직이기 시작한 하시바 히데요시의 군과 그것을 저지하려고 하는 시마즈 이에히사가 츠루가성(鶴賀城) 근처의 토츠기가와(戸次川)에서 맞닥드려 토츠키가와 전투가 발발했습니다. 미미가와 전투(미미가와 전투)의 승리 후에그 세력을 큐슈 전 국토에 넓힐 기세로 분고의 오오토모를 압박하는 사츠마의 시마즈, 이 압박에 의해 오오토모 소린은 덴쇼14년(1586년) 시코쿠를 평정 하고, 천하 통일을 눈 앞에 둔 하시바 히데요시에게 원군을 부탁합니다. 한편 시마즈는 다테나와데 전투(다테나와테 전투)에서 류조지가를 무찌르며 세력을 불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덴쇼 14년 7월에는 시마즈가 이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실패로 끝난 히데요시의 첫 큐슈 정벌 일본 전국시대;실패로 끝난 히데요시의 첫 큐슈 정벌 덴쇼 14년(1586년) 9월 센고쿠 히데히사(仙石秀久)를 하시바 히데요시의 시마즈 토벌군의 선봉의 군감(軍監)으로 분고, 후나이에 진을 쳤습니다. 미미가와 전투(미미가와 전투)의 승리 후에그 세력을 큐슈 전 국토에 넓힐 기세로 분고의 오오토모를 압박하는 사츠마의 시마즈, 이 압박에 의해 오오토모 소린은 덴쇼14년(1586년) 시코쿠를 평정 하고, 천하 통일을 눈 앞에 둔 하시바 히데요시에게 원군을 부탁합니다. 이 때 히데요시의 명령을 받아 선봉으로 큐슈에 달려든 이가 사누키의 타카마츠성(高松城)의 센고쿠 히데히사였습니다. 히데요시에게서 선봉을 명령받은 히데히사는 덴쇼 14년(1586년) 9월 18일 군감으로 분고, 후나이에 진을 쳤습니다. 군감은 '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쵸쇼카베 모토치카, 히데요시에게 항복하다 일본 전국시대;쵸쇼카베 모토치카, 히데요시에게 항복하다 덴쇼 13년(1585년) 7월 25일, 하시바 히데요시의 시코쿠 정벌로 아와 이치노미야성(一宮城)의 공방중에 가신의 설득을 듣고 쵸쇼카베 모토치카가 항복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사후 장손인 산포시를 후계로 세워 그 후견인이 되고 실권을 잡는 하시바 히데요시는 이에 반대하는 시바타 가쓰이에(시즈가타케 전투), 도쿠가와 이야에스(고마키나가쿠테 전투) 등과 항쟁을 하나 결국 승리합니다. 그런데 고마키 나가쿠테 전투에서 도쿠가와는 시고쿠의 쵸쇼카베 모토치카와 동맹을 맺었었습니다. 모토치카 역시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처럼 시고쿠를 스스로 정복하려 할 것이라 생각해 동조하지요. 하지만 노부오의 급작스런 강화로 인해 문제가 생기지요. 전투가 끝난 뒤, 히데요시는 .. 더보기
쵸쇼카베 모토치카 시고쿠를 통일하다 이요 평정 일본 전국시대;쵸쇼카베 모토치카 시고쿠를 통일하다이요 평정 덴쇼 12년(1584년) 쵸쇼카 베모토치카의 부하 히사타케 치카나오(久武親直)가 사이온지 긴히로(西園寺公広)의 쿠로세성(黒瀬城)을 점령해 모토치카가 남 이요를 평정 했습니다. 피부가 희고 전투에도 잘 나오지 않아, 공주님이라고 까지 불렸던 쵸소카베 모토치카, 그는 에이로쿠 3년(1560년), 첫 출진을 장식한 나가하마효우 전투에서 단번에 '토사의 걸물'로 불립니다. 에이로쿠 11년(1568년)에 라이벌이었던 모토야마를 넘어 토사 중앙부를 평정, 토사 동부를 지배하는 아키 쿠니토라(安芸国虎)를 넘어뜨려 결국 시만토가와 전투에도 승리해 토사를 통일합니다. 그 뒤에도 모토치카는 아와를 평정해 냅니다.(쇼우즈이성 공방전) 이즈음 모토치카는 아와와 사누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