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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카가 요시아키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전국시대의 쇼군, 아시카가 가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전국시대의 쇼군, 아시카가 가문 일본 전국시대에 태어나고 지는 수많은 가문 중에서 가장 크게 몰락한 것은 다름아닌 이 아시카가 가문일 것입니다. 아시카가 가문은 전국시대의 쇼군 가문으로, 결국 도쿠가와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만 비극의 가문이기도 합니다. 아시카가 막부의 성립 가마쿠라 시대의 아시카가 가문은 당시 실권을 잡고 있던 호조 가문과 인척관계를 지닌 유력 가문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의 아시카가 가문은 미카와 수호, 카즈사 수호를 맡을 정도 였습니다. 그러나, 호조 가문이 전제정치 강화로 힘을 잃어, 가마쿠라 말기에는 평민과 다를 바 없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난태평기(難太平記)」에 따르면, 아시카가 가문에는 '미나모토노 요시이에(源義家)의 7대손이 천하를 취할것이다.' 라고..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시카가 요시아키, 쇼군이 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아시카가 요시아키, 쇼군이 되다 에이로쿠 11년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오다 노부나가의 조력으로 종4위에 제수되고, 결국 제 15대 쇼군이 되었습니다. 13대 쇼군 요시테루가 히사히데와 미요시 삼인중에게 암살 당한 후에, 요시아키는 환속해 쇼군이 되려 합니다. 한편, 미노의 사이토 세력을 몰아낸 오다 또한 천하를 쥐기 위해 상경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양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해 노부나가는 요시아키의 상경을 도왔습니다. 그의 앞길을 막는 롯카쿠가를 단 3일로 격파하고 수도로 들어간 그는 미요시 3인중 마저 내쫓아 버립니다. 재밌는 것은 이 일련의 전투에서 전에 미노의 세력 즉, 도산의 가신이었던 이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최전선에 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시카가 요시아키, 노부나가에게 쫓겨나 쇼군직 복위를 도모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시카가 요시아키, 노부나가에게 쫓겨나 쇼군직 복위를 도모하다 덴쇼 원년(1573년) 무로마치 막부 제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있는 우지 마키지마성(槇島城)을 오다 노부나가가 공격했습니다. 어린 시절 쇼군직 계승과는 거리가 멀어 절에 들어가 생활을 하던 중, 미요시 삼인중과 히사히데의 손으로 쇼군이 죽고, 허수아비 쇼군이 세워지자, 이에 분노한 요시아키는 여러 세력을 끌여들여 자신이 쇼군이 되려 합니다.( 요시아키, 코호쿠지를 탈출하다) 그러나 상대는 그 미요시가, 많은 전국 다이묘들은 그에게 답장을 해 주지 않지요. 그러던 그를 구해준 것이 오다 노부나가, 노부나가는 파죽지세로 상경해 요시아키를 쇼군으로 만듧니다.(수도에 입성한 노부나가) 그런 노부나가를 '아버지'라고 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 노부나가, 요시아키의 니죠고쇼를 태우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다 노부나가, 요시아키의 니죠고쇼를 태우다 겐키4년(덴쇼 원년 1573년) 오다 노부나가가 니죠고쇼(二条御所)에 불을 지른 '상경 방화 사건(上京焼き討ち)'이 있었습니다. 상경후, 계속해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요시아키와 갈등을 겪던 노부나가는, 요시아키가 깃들이는 니죠고쇼가 있는 상경일대를 불질러 버립니다.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본사」에 의하면 그 땅에 있던 모든 사원이 소실해, 주변의 2~3리에 있는 50개의 마을이 태워져 마치 마지막 심판의 날같았다 하지만 「신초코기」에는 '상경에 방화했다'고 밖에 써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진위가 의심스런 히에이잔 토벌(히에이잔 렌라쿠지를 토벌했다?)때도 '모든 것을 다 태워 , 눈도 뜰 수 없는 모양이었다' 라고 되어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이..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요시아키에게 5개조 정서를 보내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노부나가, 요시아키에게 5개조 정서를 보내다 겐키 원년(1570년) 초, 오다 노부나가가 제15 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에게 5개조 정서(五ヵ条の掟書)를 보냈습니다. 상경이후(수도에 입성한 노부나가) 오다 노부나가와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관계는 당분간 양호했습니다. 요시아키는 연하의 노부나가의 일을 '아버지'라고 불러, 노부나가가 오와리로 돌아갈 때에는 일부러 교토의 동쪽의 끝까지 전송에 나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노부나가의 마음속은 요시아키는 단지 상경의 도구일 뿐으로 최초부터 스스로 천하를 장악하려고 했지요. 후쿠쇼군이나 관령의 직위도 거절해, 사카이, 오츠, 쿠사츠의 지배만을 요구한 노부나가를 요시아키를 비롯한 조정에서는 '욕구가 없다'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직위를 거절하고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직위를 거절하고 실리를 취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노부나가, 직위를 거절하고 실리를 취하다 에이로쿠 12년(1569년)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도모해 오오기마치덴노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칙사를 보내 부쇼군(副将軍)에 임명하려 했습니다. 요시아키를 받들어 상경한 노부나가는 무력으로 미요시삼인중을 교토에서 내쫓아 요시아키를 기쁘게 하고 덴노에 대해서도 대궐의 수복등을 도와 조정의 지지도 얻게 됩니다. 요시아키는 3살 어린 노부나가의 일을 '아버지'라고 불러 그 공헌에 보답으로 관령직에 임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이것을 거절합니다. 그것을 노부나가가 관령직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요시아키가 제106대 오오기마치덴노에 제의해 '노부나가를 부쇼군에 임명하려 한다'는 사자를 노부나가에게 보냅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확답을 피하고 후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상경을 시작하다(2) 수도에 입성한 노부나가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노부나가, 상경을 시작하다(2) 수도에 입성한 노부나가 에이로쿠 11년(1568년) 9월 26일, 오다 노부나가가,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받들어 상경했습니다. 에이로쿠10년(1567년)의 여름 사이토가의 내부 분열을 오다 노부나가가 놓칠 리가 없었습니다. 단번에 이나바야마성을 점령하고 비원이었던 10년간의 미노 제패를 완수한(이나바야마 공방전) 그는 요시아키를 받들어 상경할 준비를 합니다. 이때 고나라덴노의 화장 비용마저 없을 만큼 궁핍했던 제106대 오오기마치덴노는 이미 노부나가에 의지해 미노, 오와리의 귀인들이 쓰는 의료, 식료, 나 아들의 성인식의 비용등을 부탁 하고 있습니다. 노부나가도 '천하포무(天下布武)' 즉, 천하에 무를 편다 라는 도장을 만들어 중요 서류에 사용하는 등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아시카가 요시아키, 코호쿠지를 탈출하다 일본 전국시대; 아시카가 요시아키, 코호쿠지를 탈출하다 에이로쿠8년(1565년) 나라의 코후쿠지에 유폐 되고 있던 가쿠게이(覚慶)가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등의 안내로 오미로 탈출했습니다. 이 가쿠게이라고 하는 스님은 누구일까요? 어릴 적에 나라의 코후쿠지에 들어가 29세까지 불문 외곬의 길을 걸을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무로마치 막부 제 12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 형은 제13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바로 무로마치 막부 15 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입니다. 요시테루를 살해한 히사히데와 미요시 삼인중은 차기 쇼군에 요시테루의 아버지 요시하루의 남동생의 아들 아시카가 요시히데를 옹립하려합니다. 원래 아시카가 막부는 대대로 쇼군직을 이어야 할 적자 이외는 절에 들어가 승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