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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가와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숨통을 뚫다, 가타다 전투와 사와산성 함락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노부나가 숨통을 뚫다, 가타다 전투와 사와산성 함락 겐키 원년(1570년) 오다 노부나가와 아자이 나가마사, 아사쿠라 요시카게 연합군이 격돌한 '가타타 전투(堅田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아네가와 전투(아네가와 전투)로 오미의 아자이 나가마사와 에츠젠의 아사쿠라 요시카게의 연합군에 승리한 오다 노부나가는, 이대로 나가마사의 본거지 오타다성을 공격하자는 가신의 진언을 뿌리쳐, 오타다성 근처의 토라고젠산(虎御前山)에 쌓아 올린 성채와 요코야마성(横山城)을 키노시타 히데요시에 지키게 한 것으로 끝을 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교토로 돌아오는 길에 아네가와의 전장으로부터 도망간 아자이의 가신, 이소노 가즈마사(磯野員昌) 등이 지키는 사와산성(佐和山城)을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 등에 포위하게 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모리 요시나리 전사, 우사야마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모리 요시나리 전사, 우사야마성 공방전 겐키 원년(1570년) 오미의 우사야마성에 쳐들어간 아자이, 아사쿠라군이 오다군과 격전을 벌여, 성주였던 모리 요시나리가 전사 했습니다. 텐분 22년(1553년)에 노부나가의 모리야꾸(傅役;전국시대 무장의 스승)인 중신 히라테 마사히데(平手政秀)가 죽은 뒤에(히라테 마사히데의 할복) 생긴 구멍을 매운것이 바로 모리 요시나리(森可成)입니다. 전국시대를 잘 아시는 분이라면 그 모리 란마루(森蘭丸)의 아버지라고 하는 편이 알기 쉬울지도 모르겠네요. 코우지 3년(1557년)에는, 오다와 적대하는 스루가의 이마가와 에게 '가신 토바 나오마사(戸部政直)가 오다에 배신을 획책하고 있다'하는 내용의 가짜의 편지를 보내려, 스스로가 상인으로 변장해 이마가와의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네가와 전투(4) 나오츠네, 노부나가의 목을 취하려 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아네가와 전투(4) 나오츠네, 노부나가의 목을 취하려 하다 아자이 나가마사의 부인이 노부나가의 여동생이라는 사실은 말씀드렸었습니다. 잠시 나가마사와 노부나가가 만날때로 시간을 돌려보면, 이 때 노부나가의 접대를 맡은 것이 나가마사의 가신 엔도 키에몬 나오츠네(遠藤喜右衛門直経)였습니다. 키에몬은 나가마사가 어릴 적부터 모리야꾸(傅役; 전국시대 장수의 선생역)로서 가장 신뢰받는 측극이었지요. 그는 실력을 십분 발휘했고, 접대를 받은 노부나가도 매우 기뻐해 11세 연하의 나가마사와 진짜 형제와 같이 이야기를 주고 받아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윽고 날이 저문뒤, 나가마사는 거성의 오타다성(小谷城)으로 돌아와, 가신의 들은 숙소에 들어가고 노부나가의 곁에는 오직 시동이 14명 정도만 남..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네가와의 전투(3) 아네가와의 칠본창과 하타사시모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네가와의 전투(3) 아네가와의 칠본창과 하타사시모노 겐키 원년(1570년) 6월 28일은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과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이 부딪친 '아네가와의 전투'가 있었습니다. 전투의 이야기는 저번에 했으니, 이번 포스팅에서는 전쟁의 비화들을 해 볼까 합니다. '아네가와의 칠본창(姉川の七本槍)'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칠본창이라면, '시즈가타케의 칠본창(賤ヶ岳の七本槍)'으로 불리는 무장들이 유명합니다만, 아네가와의 전투에서도 '아네가와의 칠본창'이라고 칭해지는 무장들이 있습니다. 연대도 이때가 앞서고, 수도 사실은 시즈가타케 쪽은 9명으로, 사실은 이 '아네가와의 칠본창'이 원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아네가와 전투에서 오다군이 고전해, 몇 안 되는 수로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네가와 전투(2) 노부나가, 도쿠가와 연합군이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을 무찌르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네가와 전투(2) 노부나가, 도쿠가와 연합군이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을 무찌르다 겐키 원년(1570년)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이, 오미의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과 싸운 전투가 있었으니, 바로 아네가와 전투입니다. 오다니성(小谷城)은 험한 산 위에 있어 포위가 힘든데다 아사쿠라 요시아키의 명령을 받은 아사쿠라의 중신 아사쿠라 카게아키라(朝倉景鏡)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성을 공격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노부나가는 어떻게든 오다니 성내의 군사를 꾀어내 평지에서 전투를 벌이려 합니다. 우선은 노부나가는 오다니성의 남쪽에 있는 요코타성(横田城)을 포위합니다. 오다니성은 험준한 산위에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물자의 운반이 쉽지 않다는 것이기 때문에, 교통의 요소에 있는 요코타성을 잃을..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네가와 전투(1) 노부나가, 이야에쓰와 나가마사가 대치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아네가와 전투(1) 노부나가, 이야에쓰와 나가마사가 대치하다 겐키 원년(157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가세를 요구한 오다 노부나가가 아자이 나가마사 토벌을 위해 기후를 출진했습니다. 어떻게든 무사히 기후로 돌아온 노부나가지만(가네가사키 퇴각), 그가 성격상 당하고 가만히 있을 리는 없었습니다. 물론 나가마사도 노부나가의 이런 성격을 잘 알고 있었지요. 그는 노부나가의 오미 진공을 경계하기 위해, 기후와의 국경에 있는 타케쿠라베(長比)와 카리야쓰오(刈安尾)등의 장소에 성채를 구축하고 전투의 준비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노부나가의 행동은 생각보다 재빨랐습니다. 불과 1달이 지나기전 들어가자마자, 나가하라성(永原城)을 맡긴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信), 쵸우코지성(長光寺城)을 맡긴 시바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