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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난 전쟁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세이난 전쟁(5) 시로야마의 결전! 사이고 다카모리 사망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세이난 전쟁(5) 시로야마의 결전! 사이고 다카모리 사망 메이지10년(1877년) 9월 24일, 시로야마로의 최종 결전으로 총지휘관인 사이고 다카모리가 사망해 7개월 남짓에 걸친 세이난 전쟁이 종결했습니다. 패배한 사츠마군은 구마모토성을 방폐하고 일단 히토요시에서 반격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히토요시도 6월 1일에 정부군에게 점령되어 미야자키로 도주했습니다만 7월 24일에 미야코노죠도 함락 되어, 7월 30일에는 미야자키도 함락 됩니다. 그 다음 타카나베도 점령되어 사츠마군은 계속해 북쪽으로 쫓겨 납니다. 이윽고 8월 14일에는, 본영을 두고 있던 노베오카도 정부군에게 점령되어, 그 다음날에는 노베오카를 탈환하기 위해 사이고 다카모리 스스로 선두지휘하며 기세를 올립니다만, 유감스럽..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세이난 전쟁(4) 구마모토성 공방전 종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세이난 전쟁(4) 구마모토성 공방전 종결 메이지 10년(1877년) 4월 15일, 세이난 전쟁으로 인해 사츠마군에 포위되고 있던 구마모토성에 정부군이 입성해 52일간에 걸친 구마모토성 공방전이 종결했습니다. 메이지10년(1877년) 1월 30일, 가고시마의 사립학교의 학생에 의한 정부 화약고 습격 사건으로 발발한 세이난 전쟁에서 정정당당히 육로로의 북상을 결정한 사츠마군은 2월 15일에 가고시마를 출진해, 2월 22일에는 큐슈의 방비의 요점인 구마모토성을 공격합니다. 하지만 견고하기로 유명한 성에 고전하는 중, 정부의 원군이 해로에서 큐슈로 향해 잇달아 하카타로 상륙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어, 일부의 군사를 구마모토성의 포위에 남기고 본대는 남하하는 정부군을 요격할 수 있도록 한층 더..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세이난 전쟁(3) 일본의 운명을 정한 다바루자카 전투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세이난 전쟁(3) 일본의 운명을 정한 다바루자카 전투 메이지10년(1877년) 3월 20일, 세이난 전쟁에서 가장 격전이었던 다바루자카 전투에서 정부군이 승리했습니다. 사이고 다카모리의 설립한 사립학교의 학생들의 폭동을 계기로 메이지 정부에 불만을 가지는 사족의 반란으로 발전한 세이난 전쟁, 우선 구마모토성을 점령하는 것을 목표로 가고시마를 출진한 사츠마군이었지만, 그 견고한 성곽과 친다이 병사의 분전으로 쉽게 점령하지 못했습니다. 차례로 상륙하는 정부의 원군을 요격하기 위해, 구마모토성에는 포위하는 군사를 남겨, 본대는 북상했습니다. 그리고 북상한 사츠마군 선봉대가 우에키(植木)의 결전에 승리했습니다. 이 승전보와 함께 '현재, 정부군이 타카세(高瀬)에 집결 중'이라는 소식이 들..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세이난 전쟁(2) 사츠마군 가고시마에서 출진!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세이난 전쟁(2) 사츠마군 가고시마에서 출진! 메이지10년(1877년) 2월 22일 사츠마군이 정부군의 지키는 구마모토성을 포위했습니다. 시민 평등, 부국 강병 등 메이지 정부의 개혁에 의해 권력을 잃어 불만을 가진 사족들은 사츠마의 사립학교 학생들의 봉기로 인해 세이난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총대장이 된 사이고 다카모리가 처음으로 향한 곳은 구마모토, 이곳을 수호하는 것은 친다이(鎮台)의 사령관 타니 타테키(谷干城)였습니다. 이들이 농성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된 사츠마군은 전군을 구마모토성 공격으로 향하게 해, 포위를 완료합니다. 메이지 10년(1877년) 2월 22일 이른 아침 사츠마군의 이케가미 시로우(池上四郎) 부대가 성의 동쪽을 흐르는 시라카와의 하류에 도착했는데, 성내에서 ..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세이난 전쟁(1) 사츠마군 가고시마에서 출진!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세이난 전쟁(1) 사츠마군 가고시마에서 출진! 메이지10년(1877년) 2월 15일, 사이고 다카모리가 인솔하는 1만 3천의 사츠마군이 가고시마를 출발해 세이난 전쟁이 개시되었습니다. 메이지10년(1877년) 1월 30일에 가고시마 사립학교의 젊은이들에 의해 정부의 화약고가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발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메이지 신정부의 방침에 불만에 불만을 더해가는사족들을 규합한 사이고 다카모리는 2월 5일에 열린 회의에서 스스로 총대장이 되어 군사를 일으킬 결의를 했습니다. 다음날인 2월 6일에 사립학교의 이름을 '사츠마군 본영'이라 고쳐 구체적인 작전 회의에 들어갑니다. 여기서 해로를 통해 도쿄에 상륙하는 작전이나, 본대와 별동대로 나누는 작전 등에 대해 논의를 합니다. 하지만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