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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나가 히사히데

일본 전국시대; 히사히데, 노부나가에게 첫 번째 반란을 일으키다 일본 전국시대; 히사히데, 노부나가에게 첫 번째 반란을 일으키다 덴쇼 원년(겐키4년 1573년) 말,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요청에 따라 오다 노부나가 포위망에 참여하고 있던 마츠나가 히사시데가 항복해 다몬성(多聞城)을 노부나가에 양도했습니다. 이 마츠나가 히사시데(松永久秀)는 그 생애에 2번 노부나가에 항복하고, 2번 칼을 섞었습니다. 처음은 오다 노부나가가 제15대 무로마치 막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받들어 상경했을 때 바로 항복해 츠구모카스(作物茄子)를 바쳐 오히려 노부나가에 마음에 들어 요시아키의 가신이 되었습니다.(마츠나가 하사히데) 그 후, 노부나가에 2번 반기를 들어, 그 2번째 반란에서는 장렬히 폭사합니다만, 이 때도 노부나가는 히라구모(平蜘蛛)를 주면 모반을 용서한다고, 마왕이라고 칭해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전국 3효웅 마츠나가 하사히데, 대불전을 불태우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전국 3효웅 마츠나가 하사히데, 대불전을 불태우다 에이로쿠10년(1567년) 사이토 도산, 호조 소운과 함께 전국 3효웅으로 불리는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미요시 삼인중과의 싸움으로 도다이사의 대불전을 불태웠습니다. 이녀석은, 보통 인간이라면 무서워서 할 수 없는 것을 세 가지나 했다. 첫번째는 주인을 죽인것, 두번째는, 쇼군을 암살한 것, 그리고 마지막은 대불을 태워버린 것이다. 어느 정월의 주연 때, 노부나가는 가신 마츠나가 히사시수를 이런 말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소개했습니다. 그 '신불도 무서워하지 않는 마왕'이라 불리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이러한 평을 받았습니다. 한편 루이스 프로이스에게는 '천하의 지배자' 라고 평 되고 후세에는 전국 3효웅 이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이 마츠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 암살당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 암살당하다 에이로쿠8년(1565년) 무로마치 막부 제 13 대장군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마츠나가 히사시데를 비롯한 미요시의 세력에 의해 암살되었습니다. 오닌의 난(오닌의 란) 이후 오다 노부나가가 허울만 남은 막부를 파괴하기까지 무로마치 막부는 껍데기만 남아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수도에서 쫓겨나기까지한 쇼군의 위상을 찾으려는 아시카가 요시하루의 유지를 이어 당시 최고의 권세를 가진 미요시 나가요시를 상대에 분투한 제13 대장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여러번의 교전 끝에 나가요시와 화해해 에이로쿠 원년(1558년) 겨우 교토로 돌아와 쇼군 직무를 해 나가게 됩니다. 유능하고 무용이 뛰어난 쇼군이 직무를 잘 해나가는 것을 모두가 반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히사히데와 미요시가의 몰락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히사히데와 미요시가의 몰락 미요시 형제에게는 한 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상자안에 들어 있는 풀벌레의 소리를 들은 후유야쓰가 형인 나가요시에게 '풀벌레조차 이렇게 소중히 기르면 장수하는데, 형은 사람의 목숨을 너무 허술하게 해.'라고 하자, 상냥한 동생을 귀여워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가요시도 결코 잔악한 이는 아니었습니다. 전국시대였기에 적의를 나타내는 이에게는 가차없었지만, 그는 그를 암살하려고까지 했던 쇼군이 화해를 요청하자 바로 인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도에 돌아간 쇼군 요시테루는 불과 1년후에 스미모토와 결탁해 나가요시를 배제하려 합니다. 나가요시는 요시테루를 도운 아쿠타가와 쥬우로우(芥川孫十郎)를 항복시켜 빼앗은 아쿠타가와성(芥川城)을 거성으로 하고 가신 마츠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전국의 첫 패자, 미요시 나가요시의 등장과 몰락 일본 전국시대; 전국의 첫 패자, 미요시 나가요시의 등장과 몰락 에이로쿠7년(1564년) 5월 9일, 미요시 나가요시가 남동생의 아타키 후유야쓰(安宅冬康)를 이이모리성(飯盛城)에서 죽였습니다. 군웅할거 하던 전국시대에 최초로 천하를 잡은 사람은 보통 오다 노부나가의 이름을 떠올릴테지만, 실은 오늘의 주역 미요시 나가요시(三好長慶)가 첫 번째로 천하를 호령했었습니다. 원래는 가아의 오가사와라(小笠原)가의 후예로 전국시대에는 아와(阿波)의 호족이었던 미요시가는 나가요시의 증조부 오키나가(之長)의 시대에, 호소카와 스미모토(細川澄元)의 옹립에 성공해 셋츠(摂津)의 수호대가 되어 교토와 오사카에서 활약했습니다. 오닌의 난, 동군의 장이었던 호소카와 가쓰모토의 아들 호소카와 마사모토는 친자식이 없어 스미모토, 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히사히데, 시기산성에서 장렬히 폭사하다 시기산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히사히데, 시기산성에서 장렬히 폭사하다시기산성 공방전 덴쇼 5년(1577년), 오다 노부나가의 장남 오다 노부타다(織田信忠)가 아즈치(安土)에 진을 쳐,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농성하는 야마토(大和) 시기산성(信貴山城)을 포위해 성벽아래에 불을 질렀습니다. 난세의 효웅이라는 이명을 가지는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산뜻할 정도로 사악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오히려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미요시가에 들어가 미요시가를 몰락시키고(히사히데와 미요시가의 몰락), 대불전에 불을 지른 뒤(마츠나가 하사히데, 대불전을 불태우다) 쇼군 요시테루를 죽이는(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 암살당하다) 등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짓들을 저지른 히사히데(물론 그 진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 그의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문화편; 무장의 취미, 다도 일본 전국시대 문화편; 무장의 취미, 다도 전국시대 무장들에게 다도는 엄청난 유행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의 엄청난 수 의 도공을 끌고 가기도 해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부릅니다. 또 오다 노부나가가 어째서 혼노지에간 이유 중 하나가 다름아닌 '다기'를 구하기위해서 였다는 설도 있지요. 일본에 차가 전래된 것은 가마쿠라시대 이에사이(栄西)라는 스님이 중국을 방문해 일본에 돌아오면서 반입했다는 설이 일반적입니다. 한편으로는 나라시대의 스님, 교우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도 합니다. 시즈오카에 있는 호우메이사의 본존불상을 조각하다 피로로 눈이 감기려는 교우키(行基)에게 한 할머니가 무언가를 내밀었습니다. 이것을 마시자, 피로는 씻은듯이 사라지고 눈이 번뜩 뜨여 조각을 마무리 했다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