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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 오다와 아사쿠라가 사이토 도산과 맞서다, 이노쿠지 전투 일본 전국시대;오다와 아사쿠라가 사이토 도산과 맞서다, 이노쿠지 전투 텐몬 13년(1544년) 오다와 아사쿠라의 연합군이 이나바산성(稲葉山城) 아래에 불을 질러 사이토도산을 공격한 이노쿠치 전투가 있었습니다. 원래 남북조의 시대 미노(美濃)의 수호였던 것은, 키요카즈 겐지가 유파를 이어받는 토키(土岐) 가였습니다. 그 아래에 수호대의 사이토가가 있고, 그 아래에 소수호대의 나가이가가 잇었습니다. 하지만, 토키가의 후계자 분쟁으로 사이토가가 지지하는 형 요시타케(頼武)는 패배하고, 텐몬5년(1536년)에 제14대 수호가 된 것이 토키 요시나리(土岐頼芸)였습니다. 이 때, 요시나리를 강하게 지지해 승리로 이끈 것이, 요시나리를 시중들고 있던 나가이 나가히로(長井長弘)입니다. 나가히로와 함께 요시나리를 지지해..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전국시대의 로망, 총의 전래 일본 전국시대;전국시대의 로망, 총의 전래 텐몬 12년(1543년) 타네가시마에 중국선이 포류해 타고 있던 포르투갈에게서 총이 일본에 전해졌습니다. 불과 어제까지의 폭풍우가 거짓말과 같이, 그 날의 타네가시마는 태풍이었던 날씨가 어느덧 맑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오오쿠마국(隈国) 타네가시마(種子島) 니시무라항(西村浦)에 어제의 태풍으로 피해를 받은 한 척의 상선이 표류합니다. 처음은 보통 배라고 생각해 한가로이 보고 있던 마을사람들은 배가 가까워져 옴에 따라 본 적도 없는 듯한 구조에 깜짝 놀랍니다. 이윽고 그 배에서 이국의 사람들이 차례차례로 나오게 되는데요 이로 인해 마을 안이 큰소란이 되는 중에 상륙한 약 백명의 승무원 중에 본 적도 없는 기이한 사람들이 2~3명 섞여 있었습니다. 붉은 머리칼, 푸..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후쿠요성 공방전과 코마이 코우하쿠사이 일본 전국시대; 후쿠요성 공방전과 코마이 코우하쿠사이 텐몬 11년(1542년) 다케다 신겐 부하인 코마이 코우하쿠사이(駒井高白斎)가, 후지사와 요시사카(藤沢頼親)가 다스리는 후쿠요성(福与城)을 포위했습니다. 텐몬 10년(1541년) 아버지 노부토라를 추방한 다케다 신겐은 이웃나라의 시나노에 진공하고 있던 아버지를 계승해 신겐에 의한 시나노 진공이 본격적으로 개시됩니다. 그래서 스와를 점령하지요. 이번에는 강탈한 스와의 통치를 둘러싸 신겐과 타카토오 요시쯔구(高遠頼継)가 대립합니다. 여기서 신겐은 죽인 스와 요시시게의 아이 토라오우(호를 전면에 내세워 요시쯔구 토벌을 시작합니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요시시게의 부인은 신겐의 여동생으로 토라오우는 스와 종가의 후계자인 것과 동시에 타케다의 피도 계승하고 있었습..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오다, 미카와를 노리다 아즈키자카 전투 일본 전국시대;오다, 미카와를 노리다 아즈키자카 전투 텐몬11년(1542년) 이마가와의 지원을 받은 마쓰다이라 히로타다(松平広忠)와 오와리로부터 진공해 온 오다 노부히데(織田信秀)가 부딪친 아즈키자카(小豆坂)의 싸움이 있었습니다. 사실 아즈키자카 전투는 일본사에 두번 나옵니다. 그 중 하나가 오늘 소개할 텐몬 11년(1542년) 의 전투입니다. 아카자키 성(岡崎城)의 주인으로 서 미카와를 지배하고 있던 마쓰다이라 기요야스(松平清康;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조부)의 시대에 거의 미카와 전역을 평정 했지만, 기요야쓰가 텐몬 4년(1535년)에 가신에게 암살된 일로 집안에 내분이 일어나 아들 마쓰다이라 히로타다(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버지)가 뒤를 이었을 무렵에는 이미, 그 존속마저도 위험하다는 상태였습니다. 이곳..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다케다 신겐의 시나노 공략의 제일보 스와 전투 일본 전국시대;다케다 신겐의 시나노 공략의 제일보 스와 전투 텐몬 11년(1542년) 6월 24일, 다케다 신겐이 가이 쿄라이시(教来石)에서 군을 정비해 시나노에 침입을 개시했습니다. 아버지 노부토라를 쫓아 버린 뒤(노부토라를 추방) 가이국의 당주가 된 신겐은 그 일년 후의 텐몬 11년(1542년)에 드디어 영지 확대에 나섭니다. 아버지 노부토라가 국력을 쏟아부으면서도 달성할 수가 할 수 없었던 시나노를 목표로 정하지요. 게다가 신겐은 아버지가 동맹을 맺고 있던 스와(諏訪)를 제일의 타겟으로 선택합니다. 노부토라가 종종 침공하고 있던 곳은 시나노 사쿠군이나 치이사가군, 그러나 이 곳들은 산에 둘러싸여 공격이 어려운데다가, 가이로 통하는 길도 좁고, 야츠카타케를 우회 해 공략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신겐이 자신의 아버지 노부토라를 추방 일본 전국시대; 신겐이 자신의 아버지 노부토라를 추방 텐몬10년(1541년) 다케다 신겐이 아버지 노부토라를 추방했습니다. 가이를 지배한 다케다가는, 키요카즈 겐지의 피를 계승하는 가이 겐지 본가의 혈통으로 무로마치 막부로부터 수호직을 제수 받았던 유서 깊은 집안입니다. 전국이라고 하는 시대가 되고, 무로마치로부터의 수호가 차례차례로 이름만이 남게되는 중에 다케다가가 영지를 지켜, 전국 다이묘로서 살아 남은 것은 신겐의 아버지 다케다 노부토라의 힘에 덕분이었습니다. 에이쇼4년(1507년), 불과 14세에, 친척끼리의 후계자를 둘러싼 분쟁에 이겨, 다케다가의 상속자를 이은 노부토라는, 가이 국내의 고쿠진들을 차례차례로 물리쳐 불과 일년만에 가이 일국의 통일에 성공했습니다. 노부토라가 얼마나 대단한 무장이었..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아마고가 쇠락의 시작 코오리야마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아마고가 쇠락의 시작 코오리야마성 공방전 텐몬10년(1541년) 모리가가 점거한 코오리야마성에 아마고가가 총공격을 개시해 코오리야마 공방전(郡山城 攻防戦)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닌의 대란으로부터 약 80년 전국은 군웅할거 시대의 한 중간이었습니다. 후에, 츄고쿠 지방 일대를 수중에 넣는 대영주가 되는 모리 모토나리도 이때는 아직 아키의 유력 쿠니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모리 모토나리 등장 아리타성 공방전) 게다가, 근처에는 이츠모를 지배하는 아마고가나, 스오우를 수습하는 오오우치가라고 하는 헤이안, 카마쿠라 부터의 명가들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모리는 그들에게 종사하는 소영주였습니다. 처음에는 아마고가의 산하에 들어가고 있던 모토나리는 텐몬6년(1537년)에 선대의 아마코 쓰네히..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쇼군분가와 호조가의 싸움, 제1차 코우노다이 전투 일본 전국시대;쇼군분가와 호조가의 싸움, 제1차 코우노다이 전투 텐몬7년(1538년) 10월 7일, 무로마치 장군의 분가인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明)와 안보(安房)의 전국 다이묘 사토미 도리타카시가,사가미의 전국 다이묘 호조 우지쓰나(里見義堯)와 코우노다이에서 싸운 '제1차 코우노다이 전투(国府台合戦)'가 있었습니다. 가마쿠라쿠보가 설치된 이후 차츰 관동은 가마쿠라 구보 중심의 독립국가와 같이 변모합니다. 그 가마쿠라쿠보를 대대로 계승하고 있던 것이 아시카가 모토우지(足利基氏)의 자손들 입니다. 에이쿄10년(1439년)에 관동의 독립성에 위기감을 느낀 쇼군 아시카가 요시노리(足利義教)에 의해 가마쿠라쿠보는 는 아시카가 모치우지(足利持氏)의 대에 멸망합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아시카가 사게우지(足利成氏)..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다케다 신켄의 등장 오미노구치성 기습전 일본 전국시대;다케다 신켄의 등장 오미노구치성 기습전 텐몬 5년(1536년) 첫 출진을 한 다케다 신겐이, 시나노의 우미노구치성을 기습해, 점령했습니다. 가이의 수호 다케다 노부토라가 자국에 진공해 온 후쿠시마 마사나리를 격퇴했다고 하는 이이다 강변의 싸움의 중간에 태어났다고 여겨지는 다케다 신겐은, 텐몬5년(1536년), 단 16세에 성인식을 거치고 제12대 무로마치 막부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에게 이름을 받아, 하루노부(晴信)라고 자칭했습니다(그냥 신겐으로 통일해 쓰겠습니다). 당시의 가이는 동쪽은 호조가의 사가미, 남쪽은 이마가와가의 스루가라고 하는 대국과 접하고 서쪽은 아카이시산맥이라고 하는 거대한 벽에 막혀, 타국과의 왕래 자체가 곤란했습니다. 게다가 이 가이는 일설에는 그 어원이 산골짜기라고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텐분호케의 란 일본 전국시대;텐분호케의 란 텐몬 5년(1536년), 렌라쿠지 사중도가 오미의 롯카쿠 사다요리의 가세를 얻어 법화종도를 교토에서 공격해, 도성 안의 법화사원 21개소에 방화했으니, 이것이 바로 텐분호케(天文法華)의 란입니다. 니치렌(日蓮) 법화종(니치렌종이라고도 합니다)은, 포교 활동을 통해 종종 각 종파를 비판하거나 정권에 대해서 간언 하거나 했기 때문에 많은 박해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니치렌 사후는, 그 수제자들에게 포교 활동이 계승해져 각 유파가 형성되는 것과 동시에 교토의 자치구민을 중심으로 점차 교세를 불려 갑니다. 그러나 법화종에 한정하지 않고, 이러한 종교 세력이 커지면 정치에 말려 들어가는 것이 이시대의 순리였지요. 당시 큰 세력을 자랑하고 있던 혼간지 문도들의 잇코우잇키의 세력을 무서워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