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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신시대/역사편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아이즈 전투(3) 격렬한 와카마츠성 공방전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아이즈 전투(3) 격렬한 와카마츠성 공방전



 게이오 4년(1868년) 8월 23일 아이즈 전투 중 도노쿠치가하라에서 아이즈 와카마츠성으로 진군하는 신정부군이 코우가(甲賀)마을 구치가쿠몬(口郭門)을 돌파해 성벽에서 장렬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와카마츠성의 모습



막부군의 패배로 끝난 토바 후시미 전투 후, 관군이 된 삿쵸군은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나 아이즈번주 마츠다이라 가타모리(松平容保), 쿠와나번주 마츠다이라 사다아키(松平定敬) 등을 역적으로 하고 토벌령을 내, 동쪽으로 나아갑니다. 요시노부는 에도성을 명도해 스스로 근신하기로 했습니다. 한편, 가타모리는 요시노부에게서 토쇼금지령의 선고를 받습니다. 이에 가타모리는 아이즈로 돌아가 군제를 정비하며 싸움의 준비에 들어갑니다. 그 사이에, 신정부 측에 붙은 센다이, 요네자와의 양번은 '아이즈번 구제의 탄원서'를 제출합니다만, 허무하게 각하 되어 싸움을 결의한 나가오카번등과 함께 아이즈번은 토호쿠의 번들에 의한 오오우에츠열번 동맹을 결성해 보신 전쟁은 토호쿠로 무대를 옮깁니다. 관동의 전투, 기타고에의 전투와 동시에 진행된 아이즈 전투가 드디어 시작된 것입니다. 아이즈번과 연합군은 보나리토우케에서 신정부군에게 대패하고 맙니다. 와카마츠로 진군하는 신정부군을 막으려한 사가와 칸베에와 마츠다이라 기타모리도 쥬로쿠바시, 도노쿠치가하라에서 대패했습니다.


  아이즈 와카마츠성에서는 적이 근처에 다가왔음을 알리는 종이 울려, 번사들의 가족이 잇달아 성 내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도노쿠치가하라의 최전선에 격려하기위해 향했던 전 번주 마츠다이라 가타모리역시 타키사와에 두었던 본영을 퇴거해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와 동행하고 있던 쿠와나 번주인 남동생 사다아키(定敬)에 재기를 맡겨 요네자와번으로 보내고 스스로는 서둘러 성의 북쪽에 위치하는 코우가마을 구치가쿠몬에서 성 내로 들어옵니다. 이 때, 이미 신정부군의 선두 집단은 가까이 다가와 있었습니다. 적의 공격에 말을 총격당한 가타모리는 부득이 도보로 입성하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코우가마을을 지키는 가로의 타나카 토사의 지휘 아래, 백호대의 제 1대가 총으로 응전하지만, 그 이외는 창 밖에 가지지 않는 노병뿐인 아이즈군에 희망은 없었습니다.


마츠다이라 가타모리



 이윽고, 오전 10 시경 코우가 마을의 동쪽 진보 쿠라노스케가 지키는 무이카마치구치(六日町口)가 점령당하자 관념한 타나카 진보와 서로 찔러 죽었습니다. 이렇게 신정부군의 진공이 빠르다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농성의 준비가 채 되지 않은 와카마츠성, 잇달아 번사의 가족이 성내로 향했지만, 입성 할 수 없었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 여자들은 지금부터 시작될 농성전의 방해가 되지 않거나, 적에게 잡혀 수치를 받지 않게, 할복 하거나 서로 찔러 죽이거나 해서 생명을 끊어 갔습니다. 가로의 사이고 다노모의 일족, 나이토 스케우에몬(内藤介右衛門)의 일족, 타키자와 이즈모(滝沢出雲) 일족 등 그 수는 약 230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한편, 코우가쵸구치를 점령해 성내에 침입한 신정부군은 이 앞의 침입 경로를 북 데마루(北出丸)에 좁혀, 코우가쵸구치 근처의 대로에 대포를 자리세우고, 집중포화를 퍼부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토호쿠 제1로 칭해질 정도의 견고한 성인 와카마츠성, 그 크고 튼튼한 성곽은 쉽게 점령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정부군도 여기서는 무리를 하지 않고 저녁때에는 성을 포위하면서 포격하기로 작전을 변경합니다. 이 때, 이 신정부군의 공격으로 성벽아래에 솟아오르는 연기를 보고, 성이 함락되었다고 믿어 버려 버린 것이 어젯밤의 도노쿠치가하라의 격전을 벗어나, 이이모리산에 가까스로 도착한 백호대 2번대 중 19명의 대사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돌아갈 곳이 없다고 생각해 죽음을 선택합니다. 이 안타까운 죽음은 종종 창작물로 그려지곤합니다. 그 중 한 명, 살아 남은 소년이 있었습니다.


목숨을 건진 백호대, 이누마 사다키치



 15세인 이누마 사다키치(飯沼貞吉)는 와키자시(脇差)[각주:1]로 목을 찔러 자살합니다만, 급소를 어긋나 정신을 잃은 채로 넘어져 있던 것을 아들을 걱정해 찾으러 온 다른 대사의 모친에 발견되어 목숨을 건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혼자서 살아 남은 일을 기뻐할 수 있는 심경은 아니어서 괴로운 생활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메이지유신 이후 그도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한편, 마츠다이라 가타모리와 헤어진 남동생 사다아키는 요네자와번의 우에스기에게 향했습니다만, 신정부측으로 붙을 생각을 하던 요네자와번에 거절되어버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센다이번으로 향했습니다만, 여기에서도 같아 하릴 없이 발길을 거뒀습니다. 이때 막부 군함 카이요우마루를 몰고 에노모토 다케아키 등이, 한층 더 북쪽을 향한다고 고, 사다아키도 에노모토와 행동을 함께 하게됩니다. 아이즈 와카마츠에 남은 형 가타모리와 북쪽의 다이치, 하코다테로 향한 남동생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또 다른이들 역시 이곳에서 헤어지게 됩니다. 신선조의 사이토 하지메와 하지가타 토시로, 토시로는 북쪽으로 향하고 하지메는 이곳에서 계속 싸우려 합니다. 

  1. 호신용 단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