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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신시대/역사편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아이즈 전투(2) 쥬로쿠바시, 도노쿠치가하라 전투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아이즈 전투(2) 쥬로쿠바시, 도노쿠치가하라 전투

 


 게이오 4(1868년) 8월 22일, 아이즈 와카마츠성에 진군하는 신정부군과 이를 막으려는 아이즈군이 쥬로쿠바시(十六橋) 도노쿠치가하라(戸ノ口原)에서 맞닥뜨려 전투가 전개되었습니다.




 막부군의 패배로 끝난 토바 후시미 전투 후, 관군이 된 삿쵸군은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나 아이즈번주 마츠다이라 가타모리(松平容保), 쿠와나번주 마츠다이라 사다아키(松平定敬) 등을 역적으로 하고 토벌령을 내, 동쪽으로 나아갑니다. 요시노부는 에도성을 명도해 스스로 근신하기로 했습니다. 한편, 가타모리는 요시노부에게서 토쇼금지령의 선고를 받습니다. 이에 가타모리는 아이즈로 돌아가 군제를 정비하며 싸움의 준비에 들어갑니다. 그 사이에, 신정부 측에 붙은 센다이, 요네자와의 양번은 '아이즈번 구제의 탄원서'를 제출합니다만, 허무하게 각하 되어 싸움을 결의한 나가오카번등과 함께 아이즈번은 토호쿠의 번들에 의한 오오우에츠열번 동맹을 결성해 보신 전쟁은 토호쿠로 무대를 옮깁니다. 관동의 전투, 기타고에의 전투와 동시에 진행된 아이즈 전투가 드디어 시작된 것입니다. 아이즈번과 연합군은 보나리토우케에서 신정부군에게 대패하고 맙니다.


 이 패전의 소식이 아이즈 와카마츠성에 도착된 것은 다음날인 게이오 4(1868년) 8월 22일의 이른 아침의 일이었습니다. 조속히, 가로들이 모여 성에서 회의가 열립니다. 타나카 토사(田中土佐)와 진보 쿠라노스케(神保内蔵助) 두 명은 연속의 패전에 의기 소침해 우왕좌앙할 온전히 싸울 수 없었습니다. 앞의 시라카와구치 전투의 뒤에 의견의 불일치에 의해 칩거하고 있던 사이고 다노모(西郷頼母)를 불러왔지만 그는 이 혼란에서 고립되어 버립니다. 정무 담당인 카지와라 헤이마(梶原平馬)는 전투의 소양조차 없었습니다. 온전히 지휘를 취할 수 있는 가로는 사가와 칸베에(佐川官兵衛)와 카야노 콘베에(萱野権兵衛)정도 였습니다.


귀관 사가와 칸베에



 어제 보나리토우케에서 승리한 신정부군은 그 기세를 몰아 패주 하는 아이즈번 군사를 쫓아, 이나와시로성(猪苗代城) 아래로 진군해 옵니다. 보나리토우케에서 주력을 담당하고 있던 오오토리 케이스케(大鳥圭介)의 덴슈타이(伝習隊)는 산속에 도망쳐 연락이 되지 않고, 지휘 명령또한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습니다. 이나와시로성 성주 타카하시 콘다유(高橋権太)는 아이즈 와카마츠에서의 결전을 결의해 부득이 성에 불을 지르고  성을 뒤로 했습니다. 결국, 이 날의 지휘를 맡은 것은 토바 후시미에서 대활약해 '귀관 칸베에(鬼官兵衛)'라는 이명을 얻은 사가와 칸베에였습니다. 이나와시로 호수에서 흐르는 닛파시가와에 가설된 쥬로쿠바시는 


이 다리는 에도 가도상에 있습니다. 여기가 돌파되면, 아이즈 와카마츠성까지의 길이 뚫려버리기 때문에 어떻게든 여기서 다리를 부수고 신정부군의 침입을 저지해야만 했습니다. 칸베에는 키쇼타이(奇勝隊), 칸시타이(敢死隊), 카이텐타이(回天隊), 세이츄타이(誠忠隊)를 인솔하고, 쥬로쿠바시와 엎드리면 코 닿을 데에 있는 도노쿠치가하라로 출진했습니다. 이 때 방위의 최전선이 되는 도노쿠치가하라의 병사를 격려하기 위해 전 번주[각주:1] 마츠다이라 가타모리도 출마합니다.이 가타뫼의 호위의 역할을 맡은 것이 그 햣코타이(白虎隊)의 2번대였습니다. 


백호대 첫 출진!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어제의 패전보를 고 나서 회의한 뒤의 출발이기 때문에, 칸베에가 출진한 것은 점심이 지난 뒤였습니다. 이미 신정부군은 근처에 다가와 있었습니다. 도착 후 곧바로 쥬로쿠바시의 교판을 제거하기 시작했지만, 신정부군의 선두 카와무라 스미요시(川村純義)가 인솔하는 사츠마번 군사들이 도착해 버렸습니다. 갑작스런 총격전에 어떻게든 응전하는 칸베에였지만, 후속 신정부군이 잇달아 도착했습니다. 어느덧 신정부군은 3,000 정도의 병력에 부풀어 오릅니다. 칸베에가 이끄는 부대 중 키쇼타이는 전투 경험이 적은 승려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던 부대였기 때문에 이 상황에 공포를 안아 도주해 버립니다. 그러자 도미노처럼 다른 부대들도 전선을 이탈해 버립니다.


  그 무렵, 도노쿠치가하라로 향하고 있던 마츠다이라 가타모리도 쥬로쿠바시에도 고전의 소식이 전해져 여기서 서둘러, 호위역이었던 햣코타이에 출진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미 패배한 전황을 아직 어린 그들이 뒤집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이즈의 부대들이 퇴각한 뒤, 다리의 보수를 끝낸 신정부군은 이 날의 밤에 도노쿠치가하라로 진군해 아이즈와카마츠성으로 향합니다.

  1. 아들에게 번주직을 물려준 상태였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