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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신시대/역사편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일본 분큐유구 사절단 출항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일본 분큐유구 사절단 출항



 분큐 2년(1862년) 1월 22일, 타케우치 시모노카미 야스노리(竹内下野守保徳)을 정사(正史)로 하는 '분큐 유구(遣欧)사절단이, 영국 군함 오딘호를 타 시나가와항을 출항했습니다. 


 만엔(万延) 원년(1860년)에 예의 칸린마루(咸臨丸)으로 '견미 사절단'을 파견한 일본은 그 후 영국과 프랑스의 공사에게서 재촉을 받아 2년 후의 분큐 2년 (1862년) 1월 22일, 타케우치 시모노카미 야스노리를 장으로 하는 38명이 유럽을 향해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제일의 목적은 당시 유럽에서 요구되고 있던 에도, 오사카, 효고, 니가타의 개항의 연기를 직접 담판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지에서는 가라후토(樺太)의 국경 문제에 대한 러시아와의 회담도 예정되어 있어 꽤 중대 임무를 짊어진 유럽행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중대한 임무에도 불구하고 힘든 도정을 걷게 됩니다.





 이 멤버는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미국에 간 경험도 있고 네델란드어에도 정통한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 후에 저널리스트가 되는 후쿠치 겐이치로(福地源一郎)라고 하는 신진기예의 젊은이들로 외국의 사정에도 자세한 서포트역이었입니다. 하나 더는, 방금전의 중요 임무를 짊어진 이들로, 하타모토(旗本)급의 중진들이었습니다. 외국의 사정에 정통한 이들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대로 일을 진행시킵니다. 출발때부터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으려 했다고 합니다. 짐에도 된장과 쌀을 실어, 결국 된장이 심한 냄세가 나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많은 산해진미가 나와 쌀과 취사도구는 그냥 호텔에 주었다고 합니다.


 가장 기묘했던 것은 이 사절단이 화장실을 이용했을 때입니다. 일단 몇명의 보디가드역인 사무라이를 대동했습니다. 그리고 양변기에 앉지 않고 위에서 수세식을 이용하듯이 앉았다고 합니다. 또한, 이 자세가 매우 불안정 하기에 측근이 횃불을 들고 비추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문은 열고 이런것들을 행하였가에, 외국인들은 매우 당황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