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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신시대/역사편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이이 나오스케의 각오, 사쿠라다몬의 변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이이 나오스케의 각오, 사쿠라다몬의 변




 안세이 7년(1860년) 3월 3일, 다이로우(大老) 이 나오스케(井伊直弼)가 미토번을 벗어나 떠돌이가 된 뒤에, 료닌에 습격당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것이 '사쿠라다문의 변(桜田門外の変)'입니다. 



이이 나오스케



 안세이 7년(1860년) 3월 3일은 전날 밤부터 내린 폭설로, 일본은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3월 3일은 죠우시(上巳)의 셋쿠(節句)의 날로, 이 날 에도 성내에서는 명절을 축하하는 성대한 축연이 열렸습니다. 성의 망루(櫓)에서는 일정 간격으로 북이 울려 영주들은 그 신호에 따라, 차례로 토쇼우(登城)[각주:1] 중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구경하듯이 바라보고 있던 집단이 있어습니다. 니시노마루로 통하는 사쿠라다몬에 진을 친 그들은, 미토번을 벗어난 료닌 17명과 사츠마번을 벗어난 료닌 1명이었습니다. 오전 9 시경 그들의 앞을, 다이로우 이이 나오스케를 태운 가마와, 호위의 사무라이 수십명의 행렬이 우연히 지나갔을 때, 그들 중 한 명 모리 고로쿠로우(森五六郎)이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직소장을 바칩니다. 이를 호위대가 막으려 하자, 발도해 선두의 사람을 베려 합니다. 호위가 이쪽에 눈이 집중된 사이에, 총성음이 울립니다. 


 동시에 그것이 신호였는것과 같이, 다른 료닌들이 가마에 달려 들어 밖에서 몇번이나 가마를 찔렀습니다. 물론 호위의 사무라이들도 곧바로 응전합니다만, 공교롭게도의 눈이 왔었기에, 칼에는 츠카부쿠로(柄袋)[각주:2] 가 씌워져 있어, 시간이 걸렸습니다. 행렬의 여기저기에서 전투가 전개되는 중, 사츠마의 료닌 아리무라 자에몬 카네쿄(有村次左衛門兼清)가 가마의 문을 부숴, 안에서 이미 녹초가 되어 있는 나오스케를 끌어내고, 단칼로 목을 떨어뜨렸습니다. 시현류(示現流) 유명한 그였지만, 베어 쓰러졌던 나오스케의 가신 코가와라 히데노죠우 무네치카(小河原秀之丞宗親)의 필사의 검술로 등을 베어져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일어나 나오스케의 목을 가지고 도주를 도모하는 카네쿄를 추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2~3명의 료닌에게 공격받아 쓰려져 버렸습니다. 


 사쿠라다이몬의 사건은 습격자 18명이대부분이 죽고, 이이 나오스케가 죽은 뒤로 끝나 버렸습니다. 사쿠라다몬까지 나오스케가 가는 불과 400m만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나오스케의 목이 없는 일에 충격을 받은 이이 가문은 온갖 방법을 썼습니다. 결국 목을 찾아 봉합한 뒤, 1달 간 그 죽음을 숨겼습니다. 이 암살극의 원인은 다름아닌 안세이의 대 옥사에 있습니다.(안세이의 대 옥사) 이 사건으로 인해 큰 벌을 받은 것은 대부분 미토번의 관계자들이었습니다. 게다가 도쿠가와 나리아키, 이치하시 요시노부, 케이 아츠시 등도 근신 처분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에 주군을 잃은 료닌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이 사건을 일으킨 것입니다.



사쿠라다이몬의 변



 왜 미토번이 타킷이이었을까요? 간단하게 말하면, 페리의 외국 함선 래항 이래, 쇄국을 계속하는지, 개국하는지의  양극단이 미토번과 이이 나오스케입니다. 미토와 덴노 가문은 특별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이 당시의 덴노 제 121대코우메이덴노(孝明天皇)는 개국을 싫어해 양이를 표명하고 있었습니다. 혼란으로 인해 명령을 쉬이 내리지 못하는 막부 대신 이이 나오스케가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막부의 톱이 이렇게 쉽게 암살 당할 수 있었을 것일까요? 그 날 아침에 에도성에서 '암살의 주의를 촉구하는 서신'이 와 있었고, 가신들도 이 위험을 알고 있었습니다. 움직임을 늦출 수 있는 비옷이나 츠카부쿠로를 일부러 입힌 것도 이이 나오스케였습니다. 


 게다가 습격된 다음에도, 가마에서 나와 응전하지 않고, 한 걸음도 나오지 않는 채 살해당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최초의 총탄이 그의 대퇴에서 허리를 관통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은 아닌가라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등정하는 도중에 가마에서 나오는 것은 규칙에 어긋난 것이었습니다. 그는 규칙을 중시해, 공격 받을 때도 나오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요? 아마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1. 무사 등이 근무하기 위하여, 또는 성주의 부름을 받거나 하여 성으로 들어가는 일 [본문으로]
  2. 칼자루에 씌우는 주머니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