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 요절
안세이 5년(1858년) 7월 6일, 제13대 에도 막부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徳川家定)가 35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사다
분세 7년년(1824년)에, 제12 대장군 도쿠가와 이에요시(徳川家慶)의 4남으로서 에도성에서 태어난 도쿠가와 이에사다는 매우 병약했습니다. 게다가 기행도 일삼아서, 일설에는 장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보통 쇼군으로 능력이 부족하고 있었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독을 이용한 암살을 무서워해 스스로 요리를 해, 특히 과자 만들기는 능숙했다고 하기도 합니다. 메이지 유신 뒤의 신하의 증언에서도 '우수하지는 않지만, 우둔하지도 않았다.'라고 했고, 미국 공사 하리스도 '이상한 행동은 했지만, 말한 일은 확실히 하고 있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가 13 대 쇼군으로 취임한 것은 페리 내항의 반년 뒤 입니다. 안세이 원년(1854년)과 그 다음 해에 연속한 대지진이 있었습니다. 관동 근교를 포함해 이가, 히다 등지에서 불과 2년간에 6회의 대지진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 때에 활약한 것이 다름아닌 로쥬(老中) 1들이었습니다. 지진의 발발 이후에는 대책 기구를 세워 영민들을 구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욱 쇼군인 이에사다의 무능함이 강조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오히려 로쥬들이 대책을 신속하게 세울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더욱 도움을 주는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단 하나 스스로의 의사로 한 일은 자신의 후계자의 지명이었습니다. 선천적으로 몸의 약하고, 그 자질이 부족하고 있었다고 여겨지는 이에사다이기에, 그 후계자 결정의 문제가 부상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없었던 이에사다의 후계자로 이름이 오른 것은, 고산케(御三家) 2인 기슈 번주인 도쿠가와 요시토미(徳川慶福), 고산케 히토츠바시(一橋) 가문의 양자가 되고 있던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였습니다. 밧카쿠(幕閣) 3나 유력 번들이 두 파로 나뉘어 싸우는 중에
안세이 5년(1858년) 6월 25일, 이에사다는 갑자기 번주들을 소집해 '요시토미를 쇼군 후계자로 한다'는 것을 결정해, 7월 5일에는 이치하시파의 제 번주의 처분을 발표하는 이례적인 태도를 나타냈습니다. 그 다음날인 안세이 5년(1858년) 7월 6일, 이에사다는 35세의 젊은 나이로 죽어 버렸습니다. 사인은 각기의 악화나, 유행하는 콜레라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묘한 타이밍에다 막부도 그 죽음을 1개월간 숨기고 있어, 사인에 의혹을 안아 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의혹은 죽은 직후부터 있던 것 같아, 후지나미(藤波)라고 하는 시녀가 이에사다의 죽음의 다음날에 친가에 보낸 편지에는 '미토, 오와리, 이치하시, 에츠젠 마츠다이라가등의 공모에 의해 쇼군이 독살되었다'고 하는 내용의 일문이 있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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