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시나가와에 오다이바 포대 건설
카에이 6년(1853년) 8월 28일, 외국 함선으로부터의 방위를 위해 시나가와(品川) 바다에 오다이바(御台場)의 축성을 시작했습니다.
카에이 6년(1853년) 6월 3일, 사령장관 페리가 인솔하는 동인도 함대, 기함 사스케하나호 등 4척의 증기선이 우라가항에 모습을 보였습니다.(흑선등장) 구경 금지령이 나온 것만을 봐도 당시의 막부가 얼마나 충격을 받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조속히 당시 에도막부의 칸죠우봉행(勘定奉行)의 하나였던 카와지토시아키라(川路聖謨),이즈 니라산(韮山) 대관인 히데타츠(江川英龍) 등을 중심으로 에도를 직접적인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시나가와의 해상에, 돌담에 둘러싸인 4 각형, 5 각형 양식의 포대를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카에이 6년(1853년) 8월 28일, 그 공사가 개시되었습니다. 우선은, 제1기 부터 제 3기 까지 완성되었습니다. 당초의 예정에서는 12기의 건설을 할 계획으로 제5기, 제 6기 까지는 완성했지만, 당연하게도 이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것으로 결국, 제4 다이바(台場)는 70% 정도 완성 한데서 기초 부분인 바다 속 부분까지만 만든 채 정지되었습니다.
포대인 오다이바 모습
다음 해인 카에이 7년(1854년)에 미일 화친 조약이 맺어 졌습니다. 시나가와 포대로 불리고 있던 이 건축물들은 쓰이는 일은 없었습니다. 타이쇼(大正) 무렵에는, 다이바로 불리게 되어, 거기에 경칭을 있어 붙여 '오다이바'라고 불렸습니다. 사실 페리가 상륙하려 했을 때, 이 시나가와 포대의 일부는 완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에도 만에 들어가지 못하고 되돌려 요코하마에 상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교섭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면 포대와 함대간의 전투가 있을 수도 있었겠지요.
몬쿠(文久) 3년(1863년) 3월에 이 포대가 쓰일뻔 한 적이 있었습니다. 상경해 조정과 양이의 약속을 한 제 14대 에도 막부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徳川家茂)의 뜻을 받아, 5월에 양이를 결행한 조슈와 7월에 사츠에이센소(薩英戦争) 전쟁에 돌입한 사츠마를 보고, 이 8월에는 '외국과 전쟁이 되어도 어쩔 수 없다'라 생각해 일단 개항한 요코하마항을 다시 폐쇄하는 것을 결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직후에, 교토에서 8월 18일의 정변이 발발해 조정 내의 양이파가 일소 되어, 막부에 의한 외국과의 전쟁은 회피되었습니다.
현재 오다이바는 관광과 젊은 커플의 데이트코스로 유명합니다. 한때, 외국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어졌던 포대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역사의 유물로 남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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